우산 없는 날의 유일한 대책

속수무책으로 비가 내릴 때

by 이용현

대책 없이 비를 맞는 일이 좋다.

항상 우산을 준비하고 최소한의 비를 맞으며 한 여름을 보내왔으므로 비를 맞고 싶어도 비를 맞을 일이 없었다.


비 내리는 예보 없이 귀가하는데 갑자기 온몸으로 비가 들어 닥치는 일.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들.

아, 어.쩔.수.없.음. 그냥 맞지 뭐.


퇴근 길, 몸 하나 있는 그대로 비를 맞으며 귀가한다. 온 몸이 흠뻑 젖은 채로 거리를 걷다 보면 앞으로 닥칠 서러운 감정에 젖는 일도 거뜬할 것처럼 용기가 생긴다.


준비와 대책 없이 벌어진 일 앞에서 나는 젖어왔으므로. 주저앉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빗속을 뚫고 당당히 몽땅 젖어 헤쳐왔으므로.


손에 우산이 없는 날. 비를 도무지 피해갈 수 없는 날. 비를 맞는 것이 대책. 내가 좋아하는 대책.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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