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다시 예민해질 무렵이면 나는 여행을 생각한다. 내 생에 여행이 없었다면 지금쯤의 나는 미치광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 날카롭고 예민해지는 성격을 모두 깎아서 차분하게 다듬어준 것은 그간의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침 8시, 잠이 덜 깬 채로 식탁에 앉아 몇십 년 동안 먹지도 않는 아침을 먹게 한 일, 성격이 급한 나에게 천천히 돌아가는 법을 알려준 일, 다음 사람을 위해 세면대를 깨끗이 닦게 했던 일, 같이 자는 친구들이 잠을 깰까 싶어 문을 조용히 닫고 다녔던 일. 예상 밖을 빗나가는 일들이 벌어져도 이다음에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기대하게 해 준 일. 이 모든 행동과 생각은 여행을 통해 길러낸 인간승리와 같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미숙한 내 자아의 절반은 여전히 지난 여행 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도 아직도 나는 여행 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밀폐된 공간에서 우주를 떠 다니는 상상을 하면 조금 이나마 답답하거나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가라앉는다. 내게 여행은 까칠하고 모나는 감정을 원만하게 돌봐주기 위한 처방전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여행을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항에 내렸을 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왔을 때,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강가에 앉아 있을 때 자주 되냈던 말들이 떠오른다.
"나 이제 좀 살 것 같아."
"나 너무 행복한 것 같아."
이렇게 끝내 나를 자라게 하고 있는 건 여행이다. 반대로 당신을 자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답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