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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Apr 01. 2022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글로 밥을 먹고살아야겠다며 기자가 되겠다고 00 일보에 취직한 날, 기자의 사명감은커녕 사수가 알려주는 기자의 세계는 갑의 위치에서 기득권과 권력에 타협하면 어떻게든 출세하고 탄탄대로 밥줄은 끊기지 않는다는 배부른 돼지의 끝판왕이었다.  


그들의 오만한 자세에  심한 모멸감과 불신감을 느낀 나머지, 일찌감치 기자의 세계에 발문을 들이지 않은 것은 오히려 내 건강과 남은 인생을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부패했던 내 사수처럼 언론인이 모두 비단 갑의 위치에서만 권력과 공생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을과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해 진실을 취재하고 사실을 보도해 잘못된 사회를 건강하게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언론인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사회에 뿌려지는 보도를 읽다 보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거나, 권력을 대변하거나, 취재가 아닌 복사에 가까운 글을 퍼 나르는 현상들이 만연했기에 언론인과 보도에 대한 불신은 오래전부터 마음 깊숙이 뿌린 채 나마저도 그들을 왜곡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만약 그때, 기자가 되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기사를 쓰고 있을까, 하는 반문도 가지면서 말이다.


내가 애초에 포기했으므로, 기자다운 기질을 갖고 있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에, 가슴 한 켠에는 활자를 제대로 다뤄줄 언론인이 여기저기 나타나 멋지게 쓰임을 해줬으면 책무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러다 우연히 앵커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손석희의 목소리와 함께 3분 남짓 이어져나가는 그의 원고를 듣게 되었을 때, 그는 내가 갖고 있던 책무를 모두 한 번에 갚아 버렸다.


앵커 브리핑을 처음 목도하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가 쓰는 문장의 구성과 문체. 감성과 논리를 조합해 만들어 사람을 설득하거나 생각하게 만드는 원고 때문이었다.


물론 여럿 기자들과 작가들이 한데 모여 뉴스룸을 구성했다지만 매일매일이 전투였다는 그의 자세를 통해

활자 하나에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지 이제야 체감이 된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든 한 글자 한 글자, 단 한 번도 허투루 쓴 적이 없다니,

원고의 단어 하나하나, 쉼표 마디마다 세련됨이 묻어나 있던 것은 단연 그럴만하다.


지성인으로서 갖고 싶었던 활자를 다루는 능력, 사실과 거짓을 왜곡하지 않은 채 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 그것들 모두 내가 질투하고 동경하며 갖고 싶었던 세계관이다.

이미 누군가는 그럴만한 업적을 이뤄냈으니, 존경이라는 말을 붙여볼만도.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가. 지금에서야 다시 질문해 보는 오늘.

아마도 그것은 나와 이 세게는 무관하지 않다는 것,

내가 하는 일이 어느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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