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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Jul 28. 2022

이제는 아버지에 관해 조금은

이제는 아버지에 관해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아버지를 말하기 전에 아버지를 낳은 할머니 또한 빠질 수 없는 사람이라.


할머니는 살아계실 적에 큰 엄마와 자주 다투곤 했는데 그 다툼의 원인은 할머니는 너무나 꼼꼼하다는 것.


할머니는 저녁이나 새벽이나 잠이 오지 않으면 마치 결백이 있는 사람처럼 청소를 하고 먼지를 닦고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할머니의 손과 큰 엄마의 손이 공동으로 가는 구역에서 늘 마찰이 일어났고 싸움은 서로에 대한 갈등과 불신으로 이어졌다.


그 둘이 싸우면 오랜 기간 할머니는 둘째 아들인 아버지의 집으로 내려와 아들과 딸들의 집을 돌았다.


할머니의 성격은 변하지 않아 밤이나 새벽이나 내 방과 거실의 짐을 정리하고 먼지를 부산하게 닦았다.


한 번 쓴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하며, 어떤 사물마다 제 자리를 부여했다.


말끔하게 정돈된 자리에 더 이상 치울 것이 없고 정리할 것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할머니는 잠에 드셨다.


아버지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네 아빠가 얼마나 꼼꼼한 줄 아니. 얼마나 깔끔 떨고 살았다고. 엄마나 고모들이 내게 하는 말이었다.


엄마가 어지른 것들은 모두 아버지가 치웠고 정리정돈의 몫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것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툼은 늘 정리정돈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가 정리해놓은 것을 송두리째 치워버리고 사는 엄마는 깔끔하면서도 털털하고 아버지와 할머니에 비하면 비할 것이 못되었기에 사소한 다툼이 이어지곤 했다.


요즘은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아주 잦게 청소를 하거나, 쓸고 닦는 것에게, 제자리로 돌아간 물건에게 희열을 느끼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계속해서 버리고 있는데 문득 내가 아버지와 할머니를 닮아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어머니의 털털함까지 물려받아 결백에 가까운 환자는 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간만에 나의 행동을 돌아보며 이제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우 작고 겸손하고 착한 사람으로서 작은 물건 하나에게도 내 손이 닿은 것이 염려스러워 제자리로 돌아가길 원했고, 설령 내 손때가 탄 것들은 누군가는 한 번씩 쓸 일이 있을 것이기에 서랍을 정리하고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나아닌 다름 사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필요 없는 물건들은 애초에 들이지 않으며, 내 눈 안에 있는 것들이나 잘 들이고 닦아서 멀쩡히 유지하고 싶은 공존의 마음이 그들에게는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지.


내 등을 박박 문질러 때를 밀어주던 할머니와 아버지의 꼼꼼함은 소름 돋을 만큼 닮았고 등을 문질러 닦던 속도마저도 비슷했음을.


우리의 영혼이 늘 맑고 투명하게 살 수 없기에 내 것, 내 주변이라도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있기를 바랐던 그 둘의 마음을 이제야 읽는다.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나. 셋의 유전은 속이지 못할 만큼 숨어도 티가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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