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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Jan 03. 2017

남자의 매력, 스타일!

시오노 나나미가 본  남자의 매력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는 독특한 여류작가다.     


그녀는 외교관을 꿈꾸었지만 고교시절 <일리어드>를 읽고 흠뻑 빠진다. 그래서 라틴어를 독학해서 대학 졸업 후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이탈리아로 혼자 건너갔다.  

    

그녀는 로마에 살면서 이탈리아의 역사와 르네상스 시대를 공부했다. 공식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에 몸을 담지 않고 수많은 자료 더미를 헤치며 혼자 고전 공부에 10년 이상을 몰두했다.


로마에서 만난 이태리 의사와 살면서 아들 하나를 얻고 헤어졌지만, 그녀는 평생의 역작인 <로마인 이야기>를 매년 1권씩 15년 동안 썼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는 한마디로 시오노 나나미라는 여자가 ‘괜찮은 남자들을 통해 본 로마의 역사’다. 사료에 충실하되 사료가 없는 것은 그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역사를 그녀만의 시선으로 다시 보았다.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의 생명을 매력으로 보았다. 매력 있는 남자는 그녀의 표현대로 ‘스타일 있는 남자’다.     


그녀의 관심의 대부분은 ‘남자’다. 그래서 나나미는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자의 세계에 관심이 없다. 내가 여자이니까,  나의 관심은 남자다. 남자의 세계에서도 특히 가장 남성적이라 할 전쟁에 관심을 쏟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녀가 쓴 책에서 로마의 역사도 멋진 남자들이 차례차례 나타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이야기로 그려낸다.      


피카소가 “나는 여자가 있기에 그림을 그린다.”라고 했듯이 시오노 나나미는 나는 남자가 있기에 그들이 지나간 발자취인 역사를 쓴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


귀족출신 자제가 다니는 학습원대학 출신인 녀는 대학시절 남자를 보는 눈에 대해 이야기한다.


“30년 전 대학 여자 동급생들이 생각하는 결혼상대란 재벌(오너)의 아들이거나 도쿄대 법학부 아니면 게이오대 경제학부, 사법고시나 외무고시, 행정고시 합격자였다. … 나는 그녀들보다 내가 훨씬 더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폭이 넓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민이라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훨씬 더 좁았다. 일류대학 일류학부에 입학하는 것이나 외교관이나 변호사나 관료가 되기 위한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은 두뇌가 있고 공부하는 방법만 알고 있으면 대부분 남자들에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품위 있는 행동이라든지, 유머 감각이라든지, 절묘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모든 일에 대처하는 능력은 시험으로 측정될 수 없는 자질이다. 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하다는 말이다. 대학 시절 나는 동급생들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것을 남자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녀의 남자를 보는 눈은 처녀시절에도 남달랐던 것이다.               


시오노는 요즘의 인텔리 남자들이 섹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본질이 아니라) 보강 정도밖에 안 되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인텔리 남자들)에겐 하찮은 것을 하찮은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없다. 무슨 일이 터졌을 때 그럴듯한 이유를 얼마나 잘 생각해내느냐에 전력을 집중한다. 또 욕망은 있으나 그것이 콩알만 하다. 정치가가 뭐라 부추기면 창피할 정도로 홀랑 넘어가고, 재계의 어느 위인이 접대해준다고 하면 기생보다 먼저 뛰어간다. 기생은 화대라도 받지만 인텔리는 하루 저녁 얻어먹을 뿐인 것을. (밥 한 끼에 넘어가는 인텔리를 보면)이런 궁상이 어디 있을까. 그들이 무언가 자기 맘의 것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어 권력이 필요하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이용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건 봐주기 힘든 꼴불견이다.”      


그러면서 지식인들은 지금 세상의 어디가 잘못돼 있는지에 대해 비판을 하라고 하면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는 구체적인 제안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도자와 지식인의 차이다.      


그녀가 말하는 매력있는 남자, 스타일이 있는 남자는 무엇일까?     


“인간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없다. 따라서 법률로 다룰 수 없고, 종교로 가르칠 수도 없다. 개개인이 자기한테 좋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일뿐, 만인 공통의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은 아니다. 이것은 라틴어로는 '스틸루스'(stilus), 이탈리아어로는 '스틸레', 영어로는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중요하지 않아도 자기한테는 그 스타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손을 대면 자기가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시오노가 좋아하는 남자란 한마디로 ‘스타일이 있는 남자’다. 스타일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다. 강한 신념을 가리킨다. 깊이 있는 인격이 자신도 모르게 배어 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남자다.      


시오노는 ‘남자들에게’에서 ‘멋있는 남자가 되기 위한 전술’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1. 우선 자기 나이를 언제나 머릿속에 분명히 박아둘 것.  

2. 자기 나이와 공존공영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할 것.  

3. 억지로 젊은 척하지 말 것.  

4. 자연스러울 것.  

5. 어느 한 곳에 포인트를 둘 것.  

6. 사랑을 할 것.  

7. 상냥할 것.  

8. 청결할 것.  

9. 피로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 말 것.  

10. 섹스는 아흔이 되어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  

 

마지막 전술. 똑똑한 척하는 여자가 쓴 남성론 같은 것은 읽지 말 것!       


시오노 나나미가 말하는 스타일 있는 남자라는 건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상태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윤리, 상식 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 독자적이고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참된 용기를 가진 자라고 해도 좋다 ▲궁상스럽지 않은 사람. 육체적으로 멋있지 않아도 비참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면 곤란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성에 부드러운 눈을 돌릴 수 있는 사람. 속된 말로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라, 진짜 휴머니스트를 말한다.


시오노 나나미를 쓴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는 한마디로 ‘승부를 걸어야 할 때 거는 남자’가 스타일 있는 남자, 매력적인 남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남자를 현실에서 만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시오노는 자신의 ‘이상향’을 지금은 세상에 없는 두 남자라고 말한다. 미국의 영화배우 게리 쿠퍼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다. 시오노가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게리 쿠퍼와 카이사르에겐 많은 공통점이 있어. 비쩍 마른 몸에 키가 크고 볼에는 세로로 주름이 잡히고 꼿꼿한 자세에 몸놀림이 우아하고 유머도 있고 광신적인 점이 하나도 없어. 하지만 근본적인 점에서 달라. 쿠퍼는 ‘위대한 평범’을 가진 사람이지만 카이사르는 ‘위대한 비범’을 지닌 사람이야. 그런데 만약 이 두 사람이 엄마에게 프러포즈를 하면 어떻게 할까. 쿠퍼는 성실한 사람이니까 그의 프러포즈는 결혼을 의미하고 평생 평온과 행복한 생활을 약속해줄 거야. 그런데 카이사르는 결혼을 정치적 계산으로 하고 게다가 플레이보이로도 유명한 사람이야. 그와는 두 달 정도가 고작일 거야.”      

하지만 시오노는 두 남자가 결혼신청을 한다면 “설령 두 달이라 해도 카이사르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게리 쿠퍼


카이사르, 우리에게는 영어식 표현인 시저가 더 익숙하다.


두 달 동안 정열의 불꽃을 피웠다가 스러진다 해도 그 행복을 평생 갖고 사는 여자도 있는 것이다.

인생을 밋밋하고 평범하게 사느니 괴테의 10번째 첩으로 살겠다는 여자처럼.


시오노는 평범을 거부해서 이태리 의사와 일찍 결별했을까. 그래서 남은 정열을 책에다 쏟았기에 <로마인 이야기>가 만들어진 걸까?         


문명의 탓일까? 남자의 매력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향기를 잃은 꽃처럼, 매력이라는 생명을 잃은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버려지고, 남자를 우습게 아는 여자들이 갈수록 더 늘어나는지도 모른다.                 




추신:          


시오노가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한 동기는 ‘지력, 체력, 경제력,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 민족보다 열세에 있던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제패한 대제국을 1000년 넘게 경영한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바로 그 ‘의문하는 힘’이야말로 시오노에게 세상과 사람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갖게 했다.      


시오노의 글을 쓰는 태도에서 경이롭게 볼 수 있는 것은 일관성과 집중력이다. 조직에 매인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에라도 묶여 자기절제를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철저히 혼자다. 웬만한 인내력이 없이는 힘든 작업을 지속할 수 없다. 시오노는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글을 쓰기 위해 서재로 건너갈 때는 마치 출근하는 사람처럼 정장을 차려입는다는 그녀였기에 장장 15년에 걸쳐 15권의 ‘로마인 이야기’를 써냈으리라. 그 사이 나이는 50대 중반에서 70세가 됐다. 그동안 여름휴가 한 번 안 갔다고 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 못할 일이 무엇일까.


시오노가 위안부에 대해 망언을 한 것알지만, 이에 대해서는 작품과 달라 다루지 않았다.이글의 목적이 시오노의 평전을 쓰는 게 아니기에.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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