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 내가 만든 심연과 미로에서 길을 잃지마라
한 힐링클리닉 센터 의사는 이런 말을 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일 문제가 아니라 대개 ’ 결혼문제‘이다.”
결혼한다는 게 정말 무서운 일일까?
20대든 30대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흔히 결혼에 대해 환상과 고민이 많다. 내가 결혼해서 정말 잘 살 수 있을지, 또 결혼생활이 행복할지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럼 결혼할 상대는 있느냐고 물으면 아직 없다고 대답한다. 결혼 상대도 아직 없는데 결혼을 두려워하는 마음, 결혼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마음 한편으로는 세상에 자신만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오지도 않은 남자(여자)에 대해 결혼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공포는 어떤 사람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편벽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카프카는 글 쓰는 건 자신이 있었지만, 결혼에 대해서 엄청난 공포를 가졌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결혼생활이 어쩌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래서 카프카는 두 번의 약혼을 하고 파혼을 하였다. 다시 연애를 하며 결혼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결혼하지 못했다.
요즘의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결혼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다른 것에는 다 자신이 있어 하면서도 자신이 결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상대가 자신에 대해 계속 만족해할까, 결혼 후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이것은 경제적인 문제와는 전혀 다른 심리적인 장벽이다.
물론 불행한 결혼보다는 편안한 독신, 비혼이 더 낫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어디에서 왔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는 있다. 소심한 카프카는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비하감을 느끼며 구타 속에서 성장했다. 가정에서 위로받거나 격려받지 못하며 자란 비정상적인 가정환경과 이때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열망하고 행복한 결혼을 동경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이 없어도 결혼은 할 수 있다. 결혼하는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집안의 번영을 위해서, 혼기가 되었기에 등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결혼이든 사랑이 없는 결혼은 사실 ‘불행한 거래’가 될 것이다.
21세기 사회의 특징은 여권의 신장이다. 여자의 학력이 높아지고, 일자리도 많아지고, 이에 따라 여자의 경제력도 커졌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오히려 여자들은 결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젊은 나이일 때 결혼하면 이거 저거 따지지 않는데, 나이가 들면 그럴수록 주변과 비교하면서 자신은 늦게 결혼하는 만큼 “저런 사람 만나려고 여태까지 튕긴 거야?”라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배우자의 조건을 더 따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30대 후반이 넘어가면 여자는 대개 결혼하고 싶어도 적절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 혼자 살게 된다. 가깝게 지낸 결혼한 여자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이 남편이나 아이를 대화 소재로 하기 때문에 또 멀어지게 된다.
‘남들에게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결혼할 대상을 생각하다 보니 사실 사랑의 상대를 만나도 진전이 잘 안 된다. 유행가 가사에도 있듯이 사랑과 결혼의 적령기는 없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자신감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데는 늘 환상이 끼어든다. “나는 그(녀)를 잘 안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라는 믿음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실망할까 봐 결혼하지 못한다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알고, 내가 원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그 믿음은 대개 반드시 깨진다. 사람에 따라 시간의 길이만 차이 날 뿐이다. ‘사랑의 환상’은 언제가는 깨지기 마련이다. 데이트 때는 단정했지만, 결혼 후 그 남자가 발을 씻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녀의 맨 얼굴은 남자가 데이트를 할 때 본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랑은 단점을 보면서 위기를 맞는다. 콩깍지는 반드시 벗겨지는 것이 사랑의 서글픈 법칙인 것이다.
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진정으로 알아가려고 새롭게 노력할 때, 사람은 한층 더 성숙해 지고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알려고 할수록 오히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사랑을 했기에, 남자(여자)라는 심연에서 허덕이고 그 미로에서 불면의 밤을 지새며 방황하는게 사랑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에 자주 실패하는 것은, 내가 상대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사랑에 실패했던 것은 나쁜 상대를 만나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왜 나는 나쁜 남자(여자)만 만나게 될까’하며 운명을 원망한다면 이제는 자신을 한번 조용히 들여다봐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사랑할 사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인생을 회피하는 사람은 이번에 만난 사랑에서 생긴 문제를 새로 만나는 다른 사랑으로 덮거나 지우려 하지만, 사랑을 성숙시키는 사람은 오히려 사랑을 통해 자기를 발견한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삶을 찾아 떠나서 찾지 않고 스스로 채워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소설가 이화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란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다. ‘남자(여자)’라는 별에 닿으려고 애를 쓸수록 ‘나’라는 어둠 컴컴한 행성에 불시착하게 되고 마는 것이 사랑이다. 상대를 알아가려 할수록 나는 상대를 모르고 도리어 ‘내 밑바닥’에 닿게 된다. 사랑이란 상대의 캄캄한 심연에, 걸어도 걸어도 도착이 불가능한, 고향이라고 착각하는 타향에 자기를 던지는 행위’이다.
사랑을 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도 결혼에 대해 특별히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 당신보다 적게 배운 여자들도, 더 예쁘지 않은 여자들도 더 어린 여자들도 다 결혼해서 잘 살아왔기 때문이다. 당신이 고민해야 할 것은 자신이 결혼에 적합한 여자라는 고민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인생이 결혼하여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결혼을 안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당신의 결혼을 두고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묻는 주변의 사람이나 관심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정말 결혼할 원하고 있느냐'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내 인생의 연극을 이끄는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극 전체가 달라진다. 당신의 인생은 주변에 보이려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이 주인공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결혼이든 일이든 어떤 것을 중시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여야 한다. 그건 나이가 마흔이든 쉰이든 중요하지 않다. 결혼하기로 생각했다고 한다면 나만의 사랑을 찾으면 된다.
결혼은 해도 무섭고 안 해도 무서운 일이 아니다. 결혼의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안하고 사랑조차 못하고 사라지는 내 인생이 더 무서운 것이다. 사랑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 스스로 만든 심연과 미로에 허덕이지 마라
추신:
대문과 본문의 그림은 여류화가로는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한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입니다. 본문은 법륜 스님, 가야마 리카의 글을 참조해 다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