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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Apr 25. 2017

3김은 돈 쓰는 방법도 달랐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 뇌물과 선물 5

정치권에서는 ‘촌지’라는 말 이외에  90년대 이후 ‘오리발’이라는 이름이 통용되었다.


오리발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속담에서 유래되었다.  금품수수를 했지만  이를 부인한다는 뜻과 함께 오리발은 ‘최소 100만 원짜리 수표 5장은 돼야 한다’는 뜻에서 그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리발을 가장 화끈하게 준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으로, 그는 민정당 총재 시절 의원들을 수시로 청와대로 불러 모아 수백만 원씩 ‘하사금’을 주었다고 한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최소 10배는 되리라.  


김영삼 대통령은 돈이 들어오면 봉투째 비서진에게 넘겼다. 야당 총재 시절, 측근이나 형편이 어려운 의원들에게 매달 2,3백만 원의 지구당 운영비를 부정기적으로 주었다.  의원들이 외유를 떠날 때도 2백만 원 정도의 여비를 주었다고 한다. YS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 돈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를 하면서 자금압박에 시달렸다. 71년 대선 당시 자기를 지원했던 최고의 소주회사인 삼학소주가 선거후 세무조사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자금 만드는 것도 조심해야 했고 어렵게 만든 돈을 쓰는 것도 조심하고 아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병풍식 지'다. 병풍은 최소 8첩이상으로 만들어진다. 한 사람에게 자금을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여러 사람에게 분산하여 후원자를 만들면 위험도 분산되고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금을 확보했지만 그래도  DJ는 야당 총재 시절, 재력이 약한 의원들에게는 별도로 불러 자주 돈을 주었다. 그가 야당 총재를 지낼 때에도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만 연간 10억 원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김종필 총재의 오리발 보관 방식이다. 그는 지갑이 없이 바지 한쪽 주머니에는 10만 원짜리 수표를 다른 쪽엔 100만 원짜리 수표를 넣고 다니며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용돈이나 쓰라”며 적절히 나누어주었다. 수표를 접지 않고 쭉 펴서 다니기 때문에 별로 표도 내지 않으면서 상당히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야당의 김원기 원내총무는 어려운 정치인들이 찾아오면 지갑을 꺼내 나눠 쓰자며 반씩 갈라 썼다. 그의 윗도리 반대쪽에도 지갑은 있었다. 그렇게 안 하고서야 찾아오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요구를 도저히 다 받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여당의 김윤환 원내총무는 정치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사무실을 얻으라며 목돈을 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필요하다면  큰돈을 아낌없이 썼다. 사람들의 마음을 안고 갔다. 그래서 명총무라는 소리를 들었다. 김원기 총무와 김윤환 총무는 서로 대화하고 양보하면서 많은 일을 해냈다. 이때가 민의를 수렴하는 바로 국회의 전성시대였다.


YS정부에서 청와대 살림을 맡았던 홍인길 수석도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옛 동지들 뒤치다꺼리에 많은 돈을 썼다. 그래서 그가 한보 정태수 회장에게 돈을 받아 부패의 대명사가 되었을 때 '깃털'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정치를 하다 보면 조직이나 사람관리에 상당한 자금이 소요되는 것을 안다.  화환이 금지되기 전, 결혼식 등 5월에 보내는 꽃값만 중진의원이 5천만 원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여야가 어느 정도 서로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그래서 80년대까지는 국회의원이 받은 돈이 5천만 원 이하면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뇌물로 생각하지 않아 검찰에서는 기소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치자금법이 정비되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후 대선이 격화되면서 서로의 자금줄을 까발리고 공격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어느정도 양해하던 의원들의 정치자금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국민당을 만들었던 정주영 회장은 “가 번 돈은 땀과 눈물에 젖어 소금기가 배어있다. 그래서 정치권의 부패에도 살아남을 것”이라며 창당자금을 썼다.


정주영 회장은 국민당에서  전국의 지구당을 창당할 때 현대 직원을 1명씩 모두 파견하여 자금의 누수를 막고 엄격한 집행을 했다. 지구당에서는 재벌이라 편할 줄 알았더니 기존 정당자금보다 더 쓰기 어렵다고 아우성이었다.


더구나 정주영 회장이 당의 총재가 되어 광화문에서 현대를 운영하듯 새벽같이 열리는 고위당직자 회의는 여러 정치인들에게 심한 몸살을 앓게 했다. 정치는 밤에 사람을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걸 못하게 하니 조직도 마비되고 정보도 적어지고 몸도 근질거리게 된 것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단기간에 치러지는 지구당 창당대회를 모두 참석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다닐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효창운동장에서 치러진 5만 명이 모인 국민당 창당대회에 그는 엄청난 환호와 함께 열광적으로 기립박수를 하는 군중을 보며 처음으로 돈 쓸 맛이 난다고 했다. 그 이후 그가 돈 쓸 맛이 난 것은 소떼를 몰고 고향인 북한을 방문하는 장관을 연출했을 때일 것이다.          


부지런한 특성은 현대건설 출신인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유선방송허가와 관련하여 관계자와 청와대 직원이 술을 먹고 여관방에서 여자와 잠자다 불심검문에 걸린 사건 이후,  참모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하지만 청와대 직원들이 술 먹기 힘든 것은 감찰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부지런한 출근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대통령이 출근하니 실장과 수석도 빨리 나오고, 회의를 준비해야 하는 비서관과 행정관들의 출근시간은 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새벽 6시까지 출근해야 하니 견디기 힘든 직원들은  결국 청와대 앞 효자동에 하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오히려 많아졌다. 기자들을 비롯해 정치권의 인사들과 술이나 밥을 먹으며 민심을 들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가는 길도 방향도 모른 채 무조건 바쁜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더구나 청와대는 세상의 민심을 듣고 갈 방향을 창조적으로 결정하는 곳이지, 동사무소처럼 단순작업을 반복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김영삼 정권 이후 이명박 대통령 때까지 네 명의 대통령을 모시며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행정관은 술 문화는 김대중 대통령 때가 여론수렴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너그럽고 편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초창기부터 술 먹고 실수한 대변인의 방미 스캔들이 터졌다. 그래서 술 먹는 것을 모두  조심했다. 더구나 여성 대통령이라 남자들의 술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를 해 줄지 모르고, 보안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특성상 청와대 직원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자칫하면 정보유출의 진원지로 찍혀 ‘촉새’로 의심받을 수도 있었다.


언론보도라는 사건이라도 터지면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그대로 끝장난다는 생각에 비서실 직원들이 스스로 조심하기에 박근혜 정부는 훗날 밝혀진 최순실과 십상시가 아니더라도 민심과 유리되기 쉬운 여건을 만들고 있었다.


대통령 대신 민심을 듣고 일을 할 사람이 비서실인데, 그 직원들이 알아서 몸보신을 위해 술 마시는 걸 꺼리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움츠려 들고 있으니 여론수렴과 야당과의 소통은 누가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잘 쓰는 말은 ‘하극상’과 정보의 사전 유출로 보도가 되었을 때 나오는 ‘색출하세요’ 일 것이다. 신문에 보도된 내용 때문에, 기자에게 소스를 제공한 정보 유출자를  “어느 촉새가 나불거려서…”라는 말을 대통령이 했다.


그 이후 참모들은 언론 접촉을 극도로 기피했다. 그 전이라면 몰라도, 집권 이후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언론과의 불통을 대통령은 자초했다. 잠시는 편했지만, 결국은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최순실 사태'는 결국 예고된 참사였던 것이다.


대통령이 늘 기자들과 만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이 보내는 냉정하고 살벌한 눈빛, 이른바  ‘여왕의 레이저’는 언론을 침묵시키고 참모들을 침묵시키고 민의를 침묵시키다 어느 날 폭풍과 벼락, 해일이 되어 그녀를 덮쳤다. 정권이 대화를 거부하면 그 복수는 나중에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직 파면'이라는 교훈으로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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