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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기혁 May 02. 2017

재테크는 운칠기삼


운수 좋은 날 (현진건)


인력거꾼 김첨지에게 행운이 불어닥친다. 아침부터 손님을 둘이나 태워 80전을 번 것이다. 그 돈이면 며칠 전부터 앓아누운 아내에게 그렇게도 원하던 설렁탕 국물을 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를 한 학생이 1원 50전으로 장거리 운행을 부탁한다. 연이어 닥친 엄청난 행운에 신나게 인력거를 끌면서도 그는 빨리 돌아오라 채촉하던 아픈 아내 생각에 내심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한 불안함을 감추고자 오히려 그는 손님 하나와 또 흥정하여 벌이를 한 후, 그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하여 길가 선술집에 들른다.

얼큰히 술이 오르자, 그는 아내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떨치려 술주정을 하면서 미친 듯이 울고 웃는다. 마침내 취기가 오른 뒤에야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들어온다. 무서운 정적이 감돈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이의 젖 빠는 소리만 난다. 어쩌면 이 침묵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대문에 들어서면서 괜히 소리를 지르며 허장성세를 부린 것이 그것이다. 김첨지는 문을 왈칵 연다. 땀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김첨지는, “이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을 거냐”고 하면서 발로 아내를 찬다. 반응이 없자 달려들어 머리를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라”고 소리를 지른다. 끝내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눈을 보게 되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다.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아내의 얼굴에 비벼대며 중얼거린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자산관리나 투자법을 배워가는데 있어서 필자가 항상 먼저 이야기 하는 것중에 하나는 ‘재테크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기술적 실력배양이나 지식의 충만함을 이뤘어도 어쩔 수 없는 이 운의 요소를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장기적 레이스에서 결코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주식에 투자를 하여 -실력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기대 이상의 수익률을 올린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사람들은 아주 쉽게 자신의 투자실력을 맹신하게 됩니다. 반대로 투자를 열심히 하던 중에 IMF나 서브프라임같은 국가 재난에 준할 위험이 닥쳐 자산이 반토막이 나게 되면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자 증권사 전화는 불이 나기 시작합니다. 

보험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과거에 들었던 상품의 과도한 적립식형태나 위험보장의 미비가 발생한 것을 알게 되면 당시 자신의 과오보다 상대 설계사의 말만 믿었다는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자산관리란 ‘돈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투자라는건 ‘돈을 불리는 행위’지요. 이 돈을 불리고 지키는데 있어 사실 기술은 큰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테크닉을 지녔어도 그만큼 ‘충분히 벌어오는’ 사람을 이기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렇게 치면 그렇게 벌어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선천적 능력과 재력에서 또 차이가 올것이고, 부자아빠에게서 태어났느냐, 혹은 총명한 머리와 재능을 물려주신 부모를 만났느냐까지로도 이 [운]의 요소는 거슬러 올라갈것입니다. 

결국 ‘운수좋은 날’에서 나온 모든 사건과 즐거움들이 사실은 ‘가장 재수없었던 날’의 반어(反語)로 된 이야기였던 것처럼 선천적 차별을 견뎌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에 의한 차별과 그 다른 출발점은 어찌보면 자본주의가 주는 또다른 반어일지도 모릅니다. 

운의 차이는 비단 이러한 선천적인 차이에서만 존재하는건 아닙니다. 

직장인의 대부분이 ‘나도 한번 투자를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시즌은 주로 연말. 상여금이 나올 시기입니다. 그럼 연말이 다가오면 이러한 [잠재적 투자자]들이 나도 모르게 우르르 생긴다는 것이죠. 반대로 모두가 휴가를 가는 여름 시즌에는 지갑을 소비에 쓰느라 모을 여력이 없어집니다. 즉 금융시장에 몰리는 돈들은 사람들의 ‘라이프사이클’에 의해서도 그 돈의 굴곡이 생기게 됩니다. 소위 이사철에 집값의 동향이나 전세값이 오르는건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알수 있습니다. 자, 그럼 소위 돈이 몰리는 시즌에서 이미 돈을 담가놓고 있는 기관이나 외인, 집주인들은 그렇게 무턱대고 들어오는 돈과 수요들을 어떤 [기술]로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애초에 개인투자와 거대자본과의 싸움은 그 아이템과 실력, 전술에서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1억원을 투자해 집을 샀는데 팔때보니 1억 5천이 되어 있습니다. 5천을 벌었네요. 선견지명이었을까요? 부동산 투자의 귀재였던 걸까요? 그렇지 않지요. 운이 좋았던 겁니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다음 투자때에는 가진 1억5천을 투자해 집을 사면 금새 집값이 또 2억2천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럼 너무 욕심이 많아 보이니까 2억만 되어도 팔아야지 마음먹습니다. 운이 또 도와줄까요? 그건 아무도 알수 없는 것이지만-또 설령 그 운이 다시한번 따라준다 해도 나중에 있을 더 큰 실패에 더 크게 휘청이게 될것입니다- 전문투자자가 아닌 이상 투자한 자본 대비 자신의 기술로 50%이상의 수익률을 목표하는 뻔뻔한 기술만큼은 확실히 형편없는 수준인 셈입니다.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특히 돈관리에서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그 흐름을 익힌다는 것입니다. 그 흐름을 탔을때 운이 더해져 생각지도 못한 수익이 날수도 있는것이고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운이 나빠 기대이하의 수익이나 혹은 손실이 날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건 그 운의 요소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스스로의 대처입니다.


대박난 주식에 다시 한번의 대운이 올것을 믿는게 아니라, 그 대박에 자신의 실력은 얼마였는지 가늠해 겸손해 할 줄 알고, 잘못 가입한 보험구성에 대해 두 번 다시는 헛돈 쓸일이 없도록 인정하는 것이 앞으로의 손해를 줄이고 [좋은 운]을 불러올 수 있는 기술적 보완입니다. 


은행에 가서 상담원과 상담을 할때는 ‘저 사람은 최고의 상담을 해줄거야~’라는 맹목적 믿음이 깔립니다. 하지만 그날 은행원의 머릿속엔 지점에서 할당해준 펀드와 통장 실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지 모를일입니다. 한번이라도 그 상담사의 마음이 온전히 자신에게 쏠리게끔 ‘노력’해보신분이 있을까요? 제가 봤을땐 그게 진짜 스킬입니다. 


때로는, 위 김첨지 아내의 경우와 같은 감당이라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악운]이 여러분에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술에 거나해지나 회피만 한들 그 절망의 크기가 사그러들거나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 커다란 슬픔 때문에 하루종일 하염없이 울고 있었을 아기의 절규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기술은, 그런 와중에도 냉정하고 이성적이게 그 악운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것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는가,
하필 내가 사랑한 이 사람은 경제적으로 비전이 없는가,
나는 죽도록 일하면서도 겨우 벌어 먹고사는데 가진놈들은 어째서 저리 쉽게 돈을 버는가,
어째서 내가 투자만 하면 빨갛게 올라가던 놈들이 시퍼렇게 변해 곤두박질 치는가,
여지껏 열심히 예적금만 반복해왔고 대출금만 갚아가면서 살아왔는데 이게 멍청했던 것인가,
반대로 가족을 위해서 큰맘먹고 투자에 올인했는데 깡통을 차게 생겼으니 죽어 마땅한 일인가...


결과만 놓고 본다면 억울하기 그지없고 사연없는 무덤없는 일들인 셈입니다. 그러니 결과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 지금 이순간에도 자신의 비루한 월급을 한탄하는 사람보다 똑같은 월급에서 한푼이라도 더 절약을 해내어 그 성취감에 도취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단한 마인드죠.
☆ ‘이 펀드 어쩔까요?’라며 남에게 쉽게 칼자루를 내주는 사람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어째서 손해를 보았는지 그 흐름을 좇으려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단코 후천적 재능이자 기술입니다.
☆ 단 한번의 절망에 ‘난 이제 끝났어~’라며 모든 것을 체념한 온실속의 화초가 있는 반면에, 수차례의 빚독촉과 가난의 되물림에도 밝고 긍정적인 미래를 희망하는 잡초들이 존재합니다. 안좋은 환경이 물려주는 최상의 선천적 혜택입니다. 


‘운수 좋은날’이 ‘생애 최악의 날’이 될수도, 정말로 운수가 좋았던 날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 한번의 운이 내 인생을 바꿔줄수도, 도리어 그 한번의 악운이 또다른 ‘나’를 만들어 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로또같은 운들에 나를 맡기려 하지 마세요. 


설령 30%의 영향력 밖에 없는 기술, 마인드라 할지라도 거기에 온힘을 다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사실 할게 없으니까요. 

착실히 기술과 마인드를 쌓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실력에 [대운]이 더해지는 날이 올것입니다.

그래서 “주식투자를 했는데 수익이 200%나 났어~~!!! 근데 투자원금이 십만원이야..” 라고 하는 기술적 불행이 없어야 할것입니다.

암보험만 5개 들었다가 정말로 암 1기에 당첨(!)되어 억대의 보상금을 수령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돈]만 생각하면 대박일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옳은 선택은 암보험 5개가 아닌 고른 보장을 감안한 위험구성이라는 것을 이해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 돈이 부러울지 몰라도, 정작 당사자는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최고로 부러울 뿐입니다.

부동산에서 투자와 투기를 분간못하고, 거주와 투자를 분간하지 못하면 거의 대부분은 금융회사의 대출과 세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헛된 시간을 낭비하게 될것입니다.

돈버는 재미에만 빠져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다면 그 수많은 행복한 부자들이 이야기하는 ‘나눔의 즐거움’에 대해서 결단코 이해하지 못할것입니다. 그또한 악운입니다. 



기술을 쌓으세요. 마인드를 배양하시구요. 나중에 그것이 악운으로 오건 대운으로 오건 그것은 운일뿐 어찌 할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악운조차 운으로 받아드릴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능력이고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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