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고 싶어 쓰는 글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암살’을 리뷰한 유튜브 영상을 우연찮게 클릭했다.
영화 속에선 이정재가
독립군을 배신하고 일본군에 붙은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고자
“해방될지 몰랐다”고 변명하는데.
한 댓글러가 이런 이정재를 두둔하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런 선택을 할 수 있다.
고 의제를 던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동의한다.
아니 동의했다.
뭐 이런저런 변명을 차치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길을 선택하는 편이 쉬울 테니까.
그러던 중 내 마음에 깊이 박혀버린 댓글 하나
독립 운동에 대한 숭고한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언제나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이란 것을 위해 지루하고 긴 싸움에 돌입하려 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만족’에 굴복하고 마는
나라는 인간의 뼈를
산산히 부숴놓는 댓글이 아니던가.
후자는 언제나 쉽고
전자는 언제나 어렵다.
우리는 언제나 이 줄다리기에서 어느쪽으로 말려들어갈지 선택할뿐이다.
그리하여 오늘 한 번 다시.
보이지 않는 선, 희망에 가까운 것을 위한 길고 지루한 것들을 하나씩 이 하루에 담아본다.
조금 더 읽기, 걷기, 쓰기,
배우기,
베풀기,
사랑하기.
이것들을 배신하고 다시금 순간의 안도감, 분노, 쾌락, 편안함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나 쉽다.
허나 극중 이정재가 그 쉬운 길로 들어서며 느꼈을
‘패배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니 다시 한 번 살아보자.
계란으로 바위치듯.
변명이 어울리지 않는 삶을.
추가
(어디에나 스승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