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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계탕 Sep 20. 2024

부자 엄마 가난한 엄마

나에겐 부자 엄마와 가난한 엄마가 있다.


진짜, 진심으로

나를 낳은 가난한 엄마와

호적 상에 부자 엄마가 현존한다.


가난한 엄마는

63년생

키 153cm

몸무게 65kg

거주지 충청북도 시골 마을

지방 여자 고등학교 졸

4남 2녀 중 다섯째

집안 재력 없음

현재 요양원 급식 아주머니로 근무 중

월수입 250만 원


부자 엄마

59년생

키 165cm

몸무게 49kg

거주지 경기도 상급지 (대저택이 즐비한 곳)

학력 학벌 모름

4녀 중 장녀

집안 재력 없었음

현재 OO물류그룹 대표이사

월수입 상상 이상, 추정 불가


이 어찌된 일이냐.

그 옛날. 약 33년 전.

가난한 엄마가 뱃속에 딸애(나)를 임신한 채로 3개월이 넘어가던 시점


꿈이 컸던 아버지는 곁에 있는 가난한 엄마의

천박하고 단순한 성질머리에 질려

그녀를 떠나고 싶어했다.


그렇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그 작은 세상 안에 가둘 수 없었다.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그녀와의 세계를

박차고 나와야 했던 그는,

뱃속 아이의 양육비를 약속하고 야속하게 사라졌다.


정말로, 정말로 그녀의 세계가

그의 날개를 접어두었던 것일까.

헤어짐을 발판 삼은 그의 날개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힘입어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렇게 8년만에 굴지의 물류 기업을 탄생시킨 그.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국민학교 3학년 시절.

그 먼 경남 산골에서부터 꿈틀거렸다.

 

“이렇게 살다간 거지꼴을 못 면한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식당에서 갈비를 구웠던 11살 소년.

낮동안 손님들이 신발을 벗고 올라가

갈비를 구워먹는 평상에 발길이 끊길 때면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청했다.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식당 아줌마들 틈바구니에서

흠뻑 찍힌 쾌쾌한 발자국들에 파묻혀 잠을 청한지

어언 5-6년이 지났을 즈음


제법 사내티가 날만큼 몸집이 커진 그는 곧바로

벌이가 더 쏠쏠한 일을 찾아나섰다.


여느 남자들이라면 꼭 거쳐본다는 그 일.

짐을 나르는 일을 하며 그는 그렇게. 빈틈을 발견한다.


“서비스를 도입하자.

품질을 올려보자.

돈을 벌게 될 것이다.”




그 무렵 그의 옆엔,

이러한 날개짓에 담긴 의미를

전혀 이해 못하는 단순하고 순진한 여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나를 낳은 내 어머니, 가난한 어머니.


그리고 마침내 그 여성을 떨쳐낸 그,

그렇게 시작된 국내 최초 택배 서비스.


단순히 물건을 나르는 행위에 서비스를 도입해

새로운 지평을 연 그의 인생은

약 8년만에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런 그의 인생에 새롭게 합류한 새로운 여성

지금까지 만나온 천박하고 단순한 여성들과는 달랐다.


새로운 그녀는

문제가 있을 때 꽤나 오래

숙고할 줄 아는 여성이었으며,

시시때때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기꺼이 ‘호호‘ 웃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교양있게 굴줄 아는 여성이었다.


허나

이미 한 번 결혼한 전적이 있는 그녀는 마찬가지로

천박하고 꿈없는 전남편에게 질려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 이제 막.

새로운 꿈을 꾸려고 자리잡은

한 남자에게 정착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꿈의 크기가 같은 사람이 만나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이뤄나가는 듯 하였다.




그 무렵 가난한 엄마의 인생은 몹시도 비참했다.

몹시, 몹시도 가난했던 그녀는

성공한 전남편으로부터

서울 변두리 지방에 다방 한칸 열 돈을 받아

뭇 남성들에게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


화장실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시큼한 지하 다방에서 자라나는

어린 딸의 총명함이 야속해질 때 즈음.

그녀는 결심한다.


“아빠에게 갈래?”


8살난 딸애를 붙잡고 다시 한 번 묻는다.


“아빠에게 가볼래?”


딸애는 그때,

자신의 가난한 어미가

얼마나 큰 삶에 무게에 짓눌려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미의 그 천진난만했던 눈동자가 이리저리 그을려

이것이

인생이라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 했다.


그렇다 그녀는 퍽 고단했다.


이 아이를 낳기 전 순진무구했던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느슨하고 평온했는지

이제야 깨닫는 듯 했다.


그녀는 지금,

순진했던 지난 날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총명했던 딸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걸

8살난 애도 알아차릴 법 했으니까.


그렇게.

그간 커피를 판 값으로 딸애의 피아노를 사들려

제 아비에게로 떠나보낸 가난한 어머니.


떠나는 날

이삿짐 차 조수석에 올라탄 딸애의 표정은

운전하는 기사도 놀랄 정도로 차분했다.

사정을 듣고 혹여 아이가 엄마가 보고싶다며 울까.

실컷 사탕을 쟁여두었건만

그런 것들은 이 아이에게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듯 보였다.

그저 차분히,

창밖에 눈물을 훔치는 가난한 어미를 보는 아이.

그런 어미의 모습을 간직히려는지.

그 모습이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선 대저택.

.......


차라리 오지 말 걸.

이 선택을 하지 말 걸.

곧 죽어도.. 내 엄마와 함께할 걸.


대저택에서 펼쳐진 지독한 악연 속에서

시큼한 지하 다방이 더 낫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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