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30대인 작가가 80대 죽기 하루 전 자신을 상상하며 지금 젊은 날 하루하루를 회상하며 써내려가는 미리쓰는 자서전입니다]
50년 전, 2025년 6월 26일 오전 10시
샤워를 마친 내 머리에 퍼뜩 떠오른 문장은 이거였다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당시 나는 탈진해 있었다. 스승이, 책들이 하라는대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내면 저 깊은 곳에 나를 가둔 무언가는 깨질 기미가 없었고,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데에만 급급했다.
참 ㅎㅎ 이 또한 그 어린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치기어린 모방이었겠지.
40대가 넘어가며 저절로 누가 뭘 추천하든, 뭘 가르치든 내 방식만 고수하는 고집이란 걸 갖게 되었다.
어린 나이엔 이런 나만의 고집이 생기길 그렇게도 바랐겄만, 막상 장착하고 보니 분명 좋은 점도 있으나 아쉬운 점도 존재했다.
아무튼, 그때 그렇게 쫓아댄 그놈에 정답.
나는 세상이 주입하는 정답에 반기를 들며 나만의 정답을 찾으려 이리저리 안테나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애초에 정답이란 단어가 자체가 들어맞지 않는 게 인생이었음을.
그냥, 그냥 사는 거였다.
사랑하는 이들을 기꺼이 오늘 하루 더 사랑하면서, 좀 더 많이 웃고, 좀 더 나를 아껴주고, 좀 더 예쁜 생각을 하며.
그때 만난 그 스치는 인연들이 50년이 지난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걸 생각하면, 미워하지 말고. 그저 기꺼이 보듬을 걸. 오늘 당신을 만나 그 하루를 잘 꾸려갔음에 감사할 걸. 그 아득했던 얼굴들이 이제야 떠올라 야속하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50년 전 어린 내가 기꺼이 잡으려 했던 그런 것들. 그런 게 사실은 필요가 없었다. 내것이 아니라고 시기 질투할 것도 없었고, 내가 가졌다고 자만할 것도 없었다. 그런 것들은 그냥 흘러가는 것들이었음을.
내가 붙잡아야 했던 건 그때 그 하늘의 모습.
장마가 찾아오는 사이 잠깐 비춘 해.
그 해가 비춰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들.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불쑥 불쑥 끼어드는 현실이란 놈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도 그리 문제될 게 없었다.
내가 어떻게 마음 먹는지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나를 둘러싼 상황들. 나는 그저 내가 짠 대본대로 움직이는 연극을 할뿐이었다.
그날은 9개월간 함께한 여름방학 같은 프로그램 작가 노릇을 끝내는 날이었다. 그토록 지겨운 것들이 끝을 두고 보니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낱 9개월의 일상도 끝에서 보면 이리도 아름다운 기억인데, 인생은 어땠으랴.
그렇게 또 하나의 경력을 마무리하고
그날 밤, 나는 어김없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도 안 하면 나의 하루는 정말 엉망일 거야. 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던 계단 오르기는 어느새 20일째.
어제까지 20층을 겨우 겨우 빠르게 헥헥 거리며 올라가던 나였다. 빠르게, 빠르게 올라가서 헤치워버리고 싶었던 하루하루의 계단 운동.
오늘은 그냥 천천히, 아이유의 <하루 끝>을 들으며 아주 천천히 올라보았다.
그런데 그날은 공기가 다른 게 아닌가... 심장은 뛰었지만 발걸음은 가볍고, 짜증이 절로 나오는 특유의 힘듦은 완벽하게 사라진 그날. 너무나 가뿐하게 35층을 올랐다.
“....나만의 속도가 있구나”
‘속도보다 방향’이라며 다그치는 책들이 무색하게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압력은 또 다시 속도를 내라고 나의 30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속도도 방향도 내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지내던 차. 오롯이 혼자서 나만의 속도를 찾아내버렸다.
생애 큰 전환점을 맞은 그날이 그저 다른 날과 다름 없는 평범한 날 중 하나였으리라곤 생각 못 했다.
그렇게 그날부터, 나의 평범한 모든 날들이 찬란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