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6. 27 격동의 금요일

by 삼계탕

[현재 30대인 작가가 80대 죽기 하루 전 자신을 상상하며 지금 젊은 날 하루하루를 회상하며 써내려가는 미리쓰는 자서전]



그날은 3년 전 그만둔 회사에서 신축 사옥을 올려 놀려가던 참이었다. 살짝 흐린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옷. 나를 처음 가족처럼 품어준 이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약각의 설렘, 아쉬움을 가지고 그곳으로 향했다.


마치 친정집과 같은 편안함. 누군가는 이상하게 보겠지. 이미 퇴사한 곳에 3년 뒤에 찾아가는 일이 흔한가?


어쩐지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내가 이곳의 손을 놓지 않고 좀 더 옆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리웠다. 역시나, 그곳은 지나치게 역동적이기 보단, 진득하게 사업체를 이끌어가는 안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큰 대박은 없지만 늘 같은 사람, 같은 일들의 반복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리 튀고 저리 튀고싶어 하는 내가 웬일로 1년이 넘게 근속한 걸 보면 알만하다. 이 따듯하고 진중한, 안정적인 회사에 몸을 뉘었던 20대를 뒤로 하고...


나는 보다 역동적인 새로운 회사에 스스로 몸을 담가놓고 사실상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다 치더라도 너무 했다. 나는 과연 그곳이 내가 뿌리내려 자라날 수 있는 곳이 맞는지.. 계속 의심하며 뿌리를 내리지도, 그렇다고 뽑지도 않고 어정쩡한 자세로 있었다.


남탓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 당시 나의 문제는 내가 회사에 존재하는 이유를 ‘누군가의 인정’으로부터 찾았다는 것이다.

팀원 중 다른 누군가가 사장에게 자신의 장점을 어필할 때면 불안했다.

내가 독차지한 사장의 인정과 사랑이 저 이에게로 돌아가면 어쩌지.. 참으로 찌질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내 어미 아비를 탓했다.


“어릴 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나를 가진 상황에서 헤어졌다. 꿈이 많고 하나만 보는 맹목적인 남자와 덜 배우고 지혜롭지 못한 여자는 결국 파국을 맞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뱃속의 아이에게 전해졌다.


바라지 않았던 아이.


그렇게 자라난 인물이 사회에서 그늘없이 인정에 목 말라하지 않고 스스로 꿋꿋하게 서 있는 건 굉장한 난이도를 요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부모를 포함한 남탓에서 벗어나자는 깊은 자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과정은 험난했다.


예전처럼 자기 연민과 증오, 불안에 푹 빠져 살면 당장에 감정은 고통스러워도 변화라는 더 큰 과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시간이 해결해주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에 나를 내맡기지 않고, 그 파괴적인 생각에 있는 나를 끄집어내 지금 당장. 더 나은 양지로 끌어올리려 하는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낸 것이 미리쓰는 자서전.


적어도 공감력이 뛰어난 내가 80세 죽기 직전 나를 상상하며 오늘을 회상한다면, 불안과 망상에 빠져 힘들어 하던 젊은 날까지 아름답게 끌어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날 오후.

나를 근래 어지럽게 했던 역동적인 회사로 복귀했다.


대표님과 나는 곧바로 이제 찍어 올려야 하는 대본을 두고 옥신각신 해야 했다.

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그와 그의 날카로운 피드백에 정서적으로 탈진해버린 나.

다시 한 번 물었다.


“새로운 작가 구하실래요?”


“아니, 아니라니까-! 이건 너밖에 할 수 없어요.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고”


늘 대본으로 옥신각신한 끝에 승리하는 자는 그였다. 왜? 그의 말이 더 합당했으니까. 나는 사실 아직 그의 기대에 못 미치는 스스로의 실력에 진이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팽팽했던 긴장감을 뒤로 하고 급한대로 나와 같이 수정한 대본으로 촬영에 돌입했다.


마무리 단계에서 나를 보는 그의 눈에서 느껴진 한 마디


‘나는 너를 진심으로 아껴,

나는, 네 머리채를 잡고 끝까지 갈 거야’


음 그래.


당장 가야할 길은 멀어도 당신은 이미 나에게 마음을 내어줬구나.

마치 지금까지 거쳐온 회사 대표들이 그랬던 것처럼, 매사 진심이 엿보이는 나의 모습에 기꺼이 나를 아끼기로 하였구나. 그래, 이게 나의 자산이구나.


촬영을 마치고 그에게 말했다.


“옆에 꼭 붙어 있을게요”


‘대표 당신의 관점은 탁월해요.

당신의 그 시각을 대본에 녹이는 작업은 나에게 큰 자산이 될 겁니다.

잘 가르쳐 주세요’


그간, 내가 내 작품에 부렸던 알량했던 자존심, 아집이 깨어지고 한 번 더 자라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불같은 하루가 연봉 30억을 향한 미래에 연료로 쌓여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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