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titl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C Jan 02. 2017

강박에 시달리며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항상 효창공원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새해 벽두부터 지금까지 지나도록 자리에만 앉아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흔했고 쉽게 또 자괴감에 휩싸이게 된다. 언제나 이렇게 내적갈등을 일으키다 결국 뛰쳐나간다.


처음 달리기를 하겠다며 나오게 된 계기도 비슷했다. 가슴이 너무 답답했고 뭐라도 해야겠어서 무작정 뛰쳐나왔다. 이 주변에 공원이라곤 이곳 뿐이었다. 잘 갖춰진 트랙을 기대했다. 하지만 구불구불한 경사로의 짧은 산책로 뿐이었다. 트랙없다고 달리기를 못하냐며 결국 효창공원을 둘러싼 좁은 경사로의 도보길을 세바퀴 뛰는 것으로 나의 코스를 만들었다. 


이 코스는 사실 뛰기엔 썩 적합하지 않다. 3/4의 오르막길과 1/4의 내리막길로 이루어진 코스다. 앞에 사람이 있으면 몸을 기울여서 피해가야 할정도로 길이 좁다. 공원을 둘러싸고는 주차장이 있는데 큰 트럭과 화물차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덕분에 좁은 둘레길은 트럭의 그늘에 가려 어두침침하고 기사들이 지르는 노상방뇨에 지릿내가 나곤 한다. 대개 집에서 용산경찰서를 지나 언덕에 위치한 빌라촌을 넘어 효창공원에 이르기까지를 워밍업으로 하고 효창공원의 둘레를 세바퀴 뛰고나서는 다시 언덕길의 빌라촌을 걸어 돌아온다. 그 코스가 대략 6km다.


언젠가부터 이 코스를 멈추지 않고 완수하는 것은 나를 확인하는 의식처럼 되버렸다. 나에 대한 자괴감에 휩싸이고 나면 항상 이곳으로 달려나왔다. 이런 곳을 달리는 것은 나름의 쾌감을 줬다. 갖춰지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에서 극복해 냈다는 스스로의 의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6km의 경사로는 항상 벅찬 거리다. 두바퀴째부터 숨이 가빠오면서 무리가 오는데 그걸 이겨내고 세바퀴를 완성했을 때 성취감이 생겼다.


요즘은 사실 이런 성취감이 무색할 만큼 어떤 강박증을 앓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뛰고나면 성취감이 뿌듯했던 것도 옛날이다. 이젠 힘들게 뛰고나면 어딘가 체력이 떨어진 것 같은 불안감에 다시 휩싸인다. 매일매일 해야 한다, 이제는 네바퀴 다섯바퀴를 뛰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을 받는다. 끊임없이 할수 있다는 확인을 받아야지만이 불안해지지 않는 존재가 된 느낌이다. 효창공원을 달리는 것은 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다시 불안을 야기한다. 


이쯤 되면 이 불안이 병인가 싶다. 효창공원을 달리는 것으로 나를 확인하다가 이제는 코너에 몰려 그것만이 유일하게 나를 확인하는 수단이 되어버린걸까. 오늘은 지난 근 일주일간의 휴가동안 뭐 하나 제대로 끝낸 것이 없다는 사실에 또 자괴감에 빠졌다. 그럴 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만 커진다. 그러다가 또 미친놈처럼 뛰어나가 효창공원을 달린다. 달리면서 '이것 밖에 안돼?'라고 중얼거린다거나 하는 것들이 과연 무슨 도움이 됐던 걸까. 


올해의 시작을 다시 이런 식으로 시작하게 되어 유감이다. 시작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았지만 기분은 개운하지 않다. 그래도 효창공원은 나의 마지노선이다. 매일 달려야한다면 매일 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새해에는 생각을 그만하고 좀 더 움직이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주산성에서, 걷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