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의 이유에 답하려는 시도
내 손에 있는 들려있는 커피를 집어던지고 싶었다. 집 앞 카페서 부터 주차장까지 그 애는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뒤돌아섰다. 그 애는 가면서 온갖 말들을 뱉었다. 화가 나서 여러 차례 붙잡았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뿌리쳤다. 그녀가 차를 타자 그 앞에 드러누울까 했다. 설마 나를 밟을까. 그 애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조금 무서웠다. 한참을 고민하며 서 있다 그녀 옆으로 가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문을 잠가버렸다. 기가 막혔다. 내 앞을 스치는 차 문 유리에다 커피라도 집어던지면 좋을 것 같았다. 왠지 지저분한 끝인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아름다운 이별따윈 없었다. 대개 연애의 끝은 구질구질하고 지저분하다. 커피를 집어던지면 극적일 뻔 했는데 그러면 그녀가 내려서 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좀 심한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뭔가 남았지만 해소되지 않는다. 빠져나가는 차는 마지막으로 덜컹 소리를 크게 내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숨을 크게 쉬며 "xx, x같네.."라고 내뱉었다. 그 애가 아니라 상황이 그랬다. 난 이 상황이 참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헤어지는 게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잡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잡았고 결국 지저분한 결말을 만들고 말았다. 그때 헤어졌으면 미련만 남았을 것이다. 그 애도 내게 참 미안했을 것이다. 우리 둘 다 이젠 그러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장면이다.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은 네번 정도 울리다 끊어졌다. 끝이구나. 새로 산 담배곽을 뜯어냈다. 슬프다거나 괴롭진 않았다. 그저 머리 속에 오늘 일들이 자동 재생되고 있었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과거를 돌이키면 슬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나는 왜 편안한지. 우리는 왜 헤어진건지. 무엇이 안맞았는지. 왜 안맞았는지. 왜 안맞는 부분을 맞춰갈 수 없었는지. 그 애는 어떤 사람이고 나도 어떤 사람이라 그런건지. 가장 가깝게 나의 관계를 상담했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걔도 어쩔 수 없었나봐." 그렇게 말했다. 그 형과 몇마디 농담을 주고 받았다. 편하게 웃었다. 헤어진 건 맞는데 며칠안에 마무리를 하는 연락이 올거라고 했다. 그럴 것 같았다. 술을 먹어볼까. 근처 바로 갔다. 추천을 해달라는 말을 하고 진 토닉을 먹기로 했다. 주문하고 있는 너무나 평온한 내 목소리가 다시금 내가 괜찮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방금 지저분한 끝을 맺은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여전히 담배를 물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헤어졌다는 말을 해줬다. 문자 한통이 왔다. "나를 나쁜년이라 생각해도 상관없어 그동안 고마웠어 진짜 안녕" 마지막으로 떨쳐내듯 쓰여진 것 같았다. 그렇게 진 토닉 한잔을 비우고 담배 한갑을 태워냈다. 난 괜찮았다.
집에 와서도 머리 속에 영상이 멈추질 않았다. 무미 건조하게 재생되고 있다. 뭔가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가 좋다. 청소를 좀 했다. 침대에 누워 마지막 답장을 보내줘야 했다. 나도 받아들였다는 걸 알려줘야했다. 삼십분 정도 붙잡고 있다가 "어쩔 수 없었나봐.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이라 답장을 보냈다.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티비에 연결했다. 뉴스룸 시즌3를 틀었다. 재밌었다. 목이 조금 아파져서 배개를 가랑이 사이에 하나 끼고 옆으로 누웠다. 슬슬 졸려왔다. 아직 열두시도 안됐다. 내일 출근이다. 그렇게 잠들어버렸다. 많은 물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돌려봐야 할 기억들이 쌓였다. 그렇지만 그 날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 마주할 수 있을 때 꺼내봐야 했다. 내가 두려워했던 그 감정들이 밀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억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괜찮은 것 같은데 생각이 깊어지면 다시 안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그럴 것 같은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모른다. 지금은 괜찮다. 내가 정말 괜찮은지 알아야 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는 왜 괜찮을까' 부터 '우린 왜 헤어졌을까'까지 짚어내야 한다. 나는 그걸 전부 알고 싶다. 이젠 물어볼 사람이 없다. 남은 건 기억뿐이다. 서로 관계지어지지 못한 지난 날들의 기억을 재구성해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날은 그래서 이만 자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