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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Oct 16. 2023

3. 깜지야 미안해

김깜지

(이 글 앞부분은 '2. 김깜지'와 겹치는 내용이다. 그보다 몇 년 전에 썼던 것이라 그런지 오늘 쓴 '김깜지'보다 더 생생하다. 겨우 2, 3년 사이에 기억이 많이 사라졌다.)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지난 1시였다. 고양이 용품이 우리 집에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밖에서 기르던 고양이를 방에서 데리고 잘 수도 없는 일. 급한 대로 화장실 욕조에 넣어두기로 했다. 내가 베푼 최고의 호의는 욕조 바닥이 차지 않도록 신문지를 깔아주는 정도. 화장실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문을 닫았으나, 당시 깜지는 욕조 벽을 기어오르지도 못했다. 혼자 욕조에 가두고 불도 끄고 그렇게 첫날을 보내게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깜지에게 미안하다. 지금까지 깜지에게 미안한 일은 딱 두 번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첫날 욕조에 혼자 방치하다시피 재운 것이 하나이고, 이후 중성화 수술을 한 것이 둘이다.


깜지가 우리 집에 온 다음 날. 그날의 최고 우선순위는 깜지를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일이었다. 아들이 품에 안고 자가용을 탔으나, 깜지는 심하게 울어댔다. 그럴 만도 하지.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 하지만, 엄마 품도, 형제들 곁도 떠나 자가용으로 한 시간 거리를 떠나와서, 가족들 냄새라고는 흔적도 없는 곳에 왔는데, 이 식구들이 어떤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고, 밤새 깜깜하고 딱딱하고 차가운 곳에 혼자 가두어 두더니 또 어디론가 데려간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깜지는 아들 품에서 바들바들 떨며 계속 울어댔다. 병원 간호사가 물었다. 이름이 뭐냐고. 아들은 깜지라고 했다. 내가 옆에서 성도 붙여 주었다. '김 깜지요' 아뿔싸 잘못했다. '문 깜지'라고 했어야 했다. 아무래도 우리 친정 쪽이 우생학적으로 우등한 것 같으니 말이다. 보호자 이름도 물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아들이 자기 이름을 대었다. 마치 정말 자기가 깜지 아버지 인양. 그리고 한 달이었다. 아들의 보호자 노릇은. 이후로 깜지에 관한 모든 것은 우리 여자들, 나와 딸들의 손으로 떨어졌다. 


동물 병원 원장님의 능숙한 솜씨로 고양이를 다루었다. 그의 손등과 팔은 고양이한테 할퀸 자국들로 성한 데가 없었다. 청진기로 진찰도 하고, 진드기 약도 발라주고, 심장 사상충 예방접종에 체중도 재었다. 1.3kg. 태어난 지는 5, 6주 정도 된 듯하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라고 했다.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고등학교 때, 아빠가 광에 쥐가 많다고 옆집에서 고양이를 데려왔다. 며칠만 있게 한다고 했는데, 나는 고양이가 다가올까 봐 바짝 긴장해 있었다. 여름이라 모기장을 치고 잤는데, 밤에 뭔가가 내 발을 스쳤다. 순간 고양이가 떠올랐다. 나는 그대로 비명을 질렀다. 옆에서 자던 온 가족이 놀라 깨었다. 알고 보니 고양이는 근처에도 없고, 모기장 자락이 발에 스친 것뿐이었는데, 그 난리를 친 것이다. 아빠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고양이를 옆집에 다시 데려다주었다. 이런 내가 고양이를 돌볼 수 있을까? 고양이와 같이 살 수 있을까? 같이 안 살면 안 살지, 같이 살면서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양이가 생리하면 그건 또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집에 오니 딸들이 바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고양이는 생리 기간이 되면 심하게 우는데, 그 소리가 아파트 옆 집에서도 곤혹스럽게 들린다고 했다.  그래서 공동주택에서 키울 때는 중성화 수술을 필히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6개월이 지나니 가끔 소리가 이상해졌다. 때가 된 듯했다.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고양이를 많이 키워본 친구는 계속 키울 자신 없으면 중성화 수술하지 말라고 했다. 중성화 수술한 고양이를 다시 길냥이로 살게 내보냈더니, 다른 길냥이들이 왕따를 시키더란다. 아휴... 이런 이야기 듣고 나니 내보낼 수도 없다. 심사숙고해야 했다. 결국 수술하고 키우기로 결심했다. 결혼 결심만큼이나 책임감이 느껴지는 결정이었다. 그날 병원엔 큰 딸이 함께 갔다. 깜지 데려오는 일에 가장 반대했고, 그때까지 깜지를 만지지도 않았던 딸인데, 중성화 수술하는 깜지가 너무 안쓰러워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마취도 하고, 배를 갈라야 하고,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자궁도 들어내는 수술을 깜지에게 말도 없이 해야 한다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또 수술 후에 병원에서 하룻밤 잘 수도 있다는 글을 보았다. 그건 또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 시간이겠는가... 수술 후 집으로 데려가라고 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무 기운 없이 축 늘어진 깜지를 보니 마음이 무너졌다. 내 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켜고 그 위에 깜지를 눕혔다. 유산이나 자궁 수술 후에는 산후조리처럼 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람에 관한 이야기지만, 고양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힘들기는 매한가지겠지. 몸조리는 제대로 시켜줘야 할 것 같았다. 그날 처음으로 깜지는 내 방, 내 침대를 허락받았고, 그날 이후로 내 침대는 곧 깜지의 침대가 되었다. 중성화 수술. 깜지에게 미안한 두 번째 일이었다. 이제 깜지에게 미안할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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