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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Oct 20. 2023

2. Tea House 찻집

Tea Story

차의 첫 경험은 '1. 차의 계절이 돌아왔다'에서 언급한 한복디자이너의 북촌 숍에서였다. 그때 맛본 황차와 제대로 갖춘 다구의 경험이 너무 좋아 이후로 다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찻집은 인사동 골목 작은 찻집이었다. 친구 생일 축하로 인사동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사 후 2차로 커피 대신 차를 마셔보자고 했다. 이제 막 다도에 발을 들인 내가 친구들을 움직여 카페 대신 찻집을 찾게 했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저녁 식사를 하는 사이 어둠이 깊어졌고, 바람이 차가웠다. 친구들 머릿속에 그리는 찻집은 한 가지였나 보다. 나중에 찻집에 들어가서는 여기가 바로 자신이 생각한 찻집이라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인사동 깊숙한 곳에 기와 처마가 서로 닿을 듯한 좁은 골목이었다. 전면이 유리창으로 된 아기자기한 가게를 발견했다. 차를 판다는 글이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어떤 차를 판다는 것일까. 차를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는 찻집인지 포장된 차를 판다는 말인지 반신반의하며  가게 문을 열었다. "차 마실 수 있나요? 저희 5명인데요."  중년의 부인은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찻잔, 차 주전자, 차 등 뭔가 잡다한 것들 가운데 테이블 하나가 간신히 놓여 있는 비좁은 공간이었다. 의자에 착석하자 몸과 몸이 닿을 듯하였다. 우리가 자리 잡자 공간은 더욱 아늑해졌다. 그런데 메뉴판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차를 마시고 싶다고 하니까 공간과 차를 제공하는 듯 보였다. 문 닫는 시간을 물어보니 우리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러도 된다고 하였다. 그분은 우리의 니드를 바로 이해하셨고 주문받지 않고 알아서 좋은 차를 준비하셨다. 작고 앙증맞은 나무 다반에 유리 다구茶具가 준비되었다. 유리 다완茶椀에서 알맞게 우려진 차는 주인의 노련한 감각으로 적절한 시간에 유리 숙우로, 그리고 작은 유리 찻잔에 분배되었다. 차를 따르는 소리는 맑고,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웠다. 깜깜하고 찬바람 윙윙되는 밖과는 달리 찻집 실내는 친구들의 담소로 아늑하고 몽환적이었다.


세 번째 찻집은 둘째와 베트남 다낭 호이안 여행에서 만났다. 호이안에 머무는 3박 4일 동안 매일 같이 호이안 구시가지를 구경했다. 딸이 검색해서 찾아둔 로컬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골목을 누비며 다녔다. 골목 양옆으로 가게와 처마가 늘어서있는 호이안 구시가지엔 화려한 홍등과 옷가게, 장식품 가게 등 재밌는 게 많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막 나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순간 진풍경이 펼쳐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해가 쨍쨍한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지고, 동시에 비닐 비옷을 파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골목을 뛰어다닌다. 그리고 세월네월하면서 구경하던 관광객들은 백인이든 아시아인이든 모두 가게의 처마밑으로 몸을 피하고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재미있다는 미소를 짓는다. 소나기는 금방 그쳤다. 다시 사람들은 골목길로 풀려나왔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다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순간 내 눈에 띈 것이 바로 그 찻집이다. 베트남 전통가옥처럼 보였다. 전면에는 벽도 유리창도 없이 문설주와 기둥만 있고, 안이 다 들여다 보이는 곳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동안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푹신하고 낡은 소파에 앉는 자리도 있고, 홀에 앉는 나무 테이블도 있고 또 높은 마루처럼 신발 벗고 올라가 다다미방 같은 자리에 앉아 마시는 자리도 있었다. 다양한 자리가 운치 있었다. 그곳은 청각 장애인들이 주문받고 차를 서빙하였다. 다다미방 같은 자리에 착석하자 나무 쟁반에 Water, order, bill 등이 쓰인 나무토막이 놓여 있는 쟁반을 들고 직원이 다가왔다.  주문을 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들고, 직원에게 그것을 보여주면 된다고 하였다. 직원들이 듣지 못할 뿐이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손님들은 각자 자기들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찻집은 뭔가 시간이 멈춘 듯한, 묘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영화 'Midnight in Paris'처럼. 우리는 세 가지 차를 한 번에 음미할 수 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블랜딩 차였던 거 같다. 여러 차를 마시고 양이 적어서 각각의 맛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오래오래 기억나는 찻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서 그 찻집을 검색해 보았다. '호이안 올드타운, 청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Reaching Out Tea House'가 떴다.


 

Reaching Out Tea House, 호이안 올드타운


세 번째 기억에 남는 티하우스는 대만 지우펀의 찻집이다. 지우펀은 우리나라 태백과 같은 깊은 산속이다. 예전엔 그곳에 사는 사람이 열 명, 열 가족이어서 十分 지우펀이라 불렸다고 한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을 여기서, 이곳을 보고 구상하였다고 하여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탄광 산업이 활발할 땐, 이곳 지우펀은 광부들의 노고를 풀어주는 객주 같은 곳이었다. 가파른 경사에 지어진 집과 가게는 좁은 계단 골목으로 이어졌다. 이곳에는 대만산 우롱차인 고산차, 아리산차를 파는 가게들이 많았으나, 나의 관심을 끈 곳은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다기들이 진열된 가게와 붓을 파는 가게, 그리고 우리가 찾은 이 찻집이다. 실내는 투박하고 굵직한 나무 기둥과 삼국지에나 나올 듯한 수레바퀴로 만든 찻상이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흰색에 가까운 오래된 숯가루가 수북하고 그 가운데 숯불 위에는 무쇠 주전자에서 물이 끓고 있었다. 중후한 찻집의 기운 때문인지 손님들이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다. 진열된 다구들을 구경하면서 이곳에서 차를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둘이 앉아 차를 마실 수 있게 다구와 물을 준비해 주는데 8년 전에 4~5만 원 정도 했던 거 같다. 사실 가이드가 통솔하는 여행이고, 자유시간을 30분 준 촉박한 여행이었고, 이미 밤이 깊어 서둘러 돌아가야 했기에 차를 마시진 못했다. 못내 아쉬운 나의 속내를 읽었는지, 시음해 보라며 자리를 권했다. 노련한 손놀림으로 우롱차를 권했고, 그때 마셔본 것이 동방미인과 귀희차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던 지우펀의 귀희는 그렇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고, 마실 때마다 나를 귀희로 만들어주었다.


대만 지우펀 차팡(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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