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달리기

1. 아, 그래서 내가 달리게 되었구나

by 어라스님

#1.

얼마하지 않은 나의 달리기를 회상해본다. 지금의 나와 달리기를 시작했을때의 나는 어떠한가.

달라졌다면 어떤 면이, 여전하다면 어떤 면이 그러한가.

나는 왜 달렸고, 또 앞으로 어떻게 달릴 것인지, 언제까지 달릴 것인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내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어봐야겠다.

생각해보니 나는 달리기에 있어서 그리 철학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못했다. 그저 내가 수행자의 신분으로 달리고 있을 뿐이지. 달리기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그리도 주변에 마라톤을 추천하고 열번을 토했었나 싶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내가 해보고 좋았던 몇 가지는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권했던 기억이 있다. 그 중에 한가지를 꼽자면, 어린 시절 비염으로 해마다 고생을 했었다. 그러다가 외숙어른의 권유로 중학교 3학년 시절 단전호흡을 시작하며, 완전히 고쳐졌다. 겨울이면 코 주변과 인중은 벌겋고 하도 풀어대서 늘 손수건이 필수품이었다. 밤이면 잠들기 힘들정도로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며 건조해지는 입술은 갈라지기 일쑤였다.

그런 불치병같았던 비염이 고쳐졌으니 얼마나 신기했던지, 어린 마음에 순진하게도 비염이나 감기에 자주 걸리는 친구들이 있으면 힘들어하지말고, 해보라고 열렬히 권했었다. 그 덕에 나는 교인 동창들에게 사이비 급 대접을 받았다.

그런 경험이 나를 자제하게 했지만, 본성이 어디가던가. 여전히 좋은게 있으면 주변에 이야기하는 나를 지금도 보게된다.

고백하자면, 교회에서 전도하는 마음을 이해할 정도로 나는 주변에 호흡수행을 극찬했던거 같다.

달리기를 대함에 있어서도, 지금 이런 단계가 아닐까?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제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변에서 또 사이비 급으로 대접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러너들이 말하길 달리기에 빠져든 형태가 종교적인듯 하다고 하지만, 진심반 농담반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타종교인은 어떤지 모르지만, 불교수행자인 내 입장에선 절대적인 존재라기보다, 내 삶에 대체제 가운데 하나인데, 가장 뒤늦게 만나다보니, 새롭고 신선할따름이다.

원래 시크한 스타일은 아닌데, 달리기에 대해 꾸밈없이 풀어보려고 하니, 글로는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아무튼 나는 뛰면서 점점 달리기가 좋아져서 누구에게나 소개하고 권하는 시기는 넘긴거 같다. 권유를 자제하려고 한다는 스스로의 평가가 우숩지만, 누구나 경험하면서 겪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아! 지금도 권하고 있으면서 시기를 넘긴거 같다고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투머치 토커인 사람이 말수가 줄었다고 하는 것 같은 착각이랄까…

요즘 마라톤과 더불어 철인경기를 나가기 위해 수영을 배우고 있다.

수영을 하다보니, 또 다른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다 아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나는 쉰둘에 수영을 처음 시작하다보니 생소하고 놀라운 이야기였다.

수영을 오래하면서 비염을 얻었다가, 마라톤을 하면서 다 나았다는 분을 만났다. 아, 이거 뭔가 오버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면서, 호흡하며 달리는 나를 떠올려보았다. 과연 마라톤은 모든 운동의 기틀이면서, 완성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호흡은 역시 생명의 근원이면서, 에너지 자체인 것이다. 호흡만 잘해도, 웬만한 병을 이겨내는 기운을 얻어낼 수 있다. 그것을 강제하는 것이 호흡수행이면서 달리기이다. 여러 유산소 운동이 있겠지만, 긴 시간 호흡에 열중하게 하는 도구로는 등산과 달리기, 자전거, 좌선 호흡수행이 대표적이겠다.

이렇게 보면 공통점이 보이고, 비로소 내가 종교적으로 대하는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 할 거리가 나의 상황과 어울리게 된 것이다.

아, 그래서 내가 달리기에 빠져들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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