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교수로 분한 김수현이 대리 리포트의 짜깁기 내역을 낱낱이 읊으며 전지현을 개망신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드라마 설정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리 낯설지가 않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나 독후감 쓰기, 또 대학 다닐 때 과제 리포트를 쓰면서 짜깁기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있기는 할까? 물론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누군가의 주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그렇게 창의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자성이다.
백지, 또는 컴퓨터 빈 화면을 글자로 채워나가는 일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손이 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허접한 글 한편조차도 어느 누군가가 장시간 노력한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좋은 글이라면 그 노력의 강도가 더하지 않을까? 글이 바라보는 방향이 자기 자신인 경우도 있고, 특별한 대상 또는 일반 대중을 향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엄청나게 훌륭하고 멋진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목적에 맞는 명료하고 간결한 글을 쓰는 것이 핵심이다.
오랫동안 한 켠으로 비켜서 있던 글쓰기가 내 삶 속으로 다시 들어온 건 실로 우연히 계기였다. 현재 근무하는 직장에서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일 한 통이 발단이 되었다. 사실 그날은 한 부하 직원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황이었다. 평소에도 이기적이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이 친구는 그날따라 유난히 공개석상에서 내 성질 머리를 돋웠다. 솟아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누르고 자리에 돌아온 난 차분히 한 편의 글을 써 나갔다. 사실 편지 형식을 빌린 일종의 공개 경고였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제목은 ‘노를 저어가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래 가사를 등장시키고, 배가 험한 바다 물결을 헤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모두들 한 방향으로 열심히 노를 저어가야 함을 언급했다. 그리고 던진 결정적인 한마디. ‘목표하는 방향이 다르고, 불평불만과 트집 잡기의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위하고, 배를 함께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배로 갈아타던가 아님 마음을 바꿔 한마음으로 노를 젓던가 가부를 결정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매주 1회 이메일 보내기로 이어졌고, 내친김에 블로그도 새로 시작하여 열정을 쏟았다. 그게 지금의 브런치로 이어진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매주 1회 이메일보내기를 2019년까지 3년 가까이 꾸준히 했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를 시작하고 보니, 깊이에 대한 갈증과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글쓰기 수업을 찾아 나서게 된 이유다. 열정적인 글쓰기 스승과 동료들을 만나 한동안 쏟아내듯 써내려 가던 시기와 조우했다. 그땐 정말 내 삶과 모든 일상들이 온통 글감처럼 느껴졌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멋진 글이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쓰고 싶은 글을 내 맘대로 쓸 수 있어 좋았다. 굳이 자기 검열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고 심지어 뻔뻔해지기까지 했다. 문맥과 단어는 중구난방이고 글의 흐름도 엉망진창이었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질풍노도와 같은 열기가 조금씩 수그러들고 난 이후에도 글쓰기는 실생활에서 여러모로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가끔씩 고객이나 임직원에게 보내는 이메일은 단순한 업무 그 이상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다. 특히 요즘과 같은 비대면이 강조되는 현실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하다. 해외 고객이나 에이전트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글쓰기는 효율적인 전략 및 마케팅 도구가 된다. 뛰어난 글쓰기 능력의 소유자는 엄청나게 유용한 무기를 가진 것과 다름이 없다. 나는 해외 고객을 상대할 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는 편이다. 전체적인 문장의 구조, 그리고 문맥과 단어 선택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영문과 한글을 반복해서 비교 검토하면서 구체적인 정보와 감정의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힘쓴다.
직책상 월요일 아침 조회를 주관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직원들 앞에서 보통 15분 정도 짧은(?) 강론을 하는데, 여기서도 글쓰기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15분 정도를 기준으로 보면 보통 A4용지로 2장 남짓이다. 이전에는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만들기를 즐겨했었다. 마치 스토리텔링처럼 강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리드미컬하게 펼쳐질 수 있게 했다. 굳이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겠냐는 말도 들었지만, 나로서는 이를 통해 나 스스로도 더 공부가 되고, 정리가 되는 느낌이라 좋았다.
그런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많은 인원이 밀폐된 장소에 모일 수 없게 되면서 한동안 현장의 열린 공간에서 강론을 진행해야 했다. 그러던 것이 거리두기 단계 강화로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이젠 대면 조회는 사라지고, 강론은 핸드폰 메시지로 대체되었다. 처음 시도한 강론 메시지는 길이 조절 문제로 꽤나 애를 먹었다. 원고를 모두 써넣고,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길이가 가늠이 되지 않아 여러 번 시도를 반복해야 했다. 마침내 보냈던 메시지는 한 번으로는 커버링이 되지 않아 결국 두 번에 걸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은 나로 하여금 좋은 글은 ‘목적에 맞는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라는 핵심 전제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굳이 설명과 치장을 위해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사족을 달 필요가 없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나 스스로 핵심을 잡아내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 걸까?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홍신표 지음)에서 어렴풋이나마 그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짧은 글의 대가들이 등장한다. ‘회장님의 메모’의 앨런 C. 그린버그, ‘길을 열다’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알리바바의 마윈 등등. 그들은 짧은 메시지의 위력을 잘 알고 실천한 위대한 인물이자 리더들이다.
짧다고 해서 절대 모자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내공이 축약된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구구절절 풀어대는 글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