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미국은 지역마다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다. 특히 내가 머물렀던 뉴욕은 다양한 길거리 공연 문화가 차고 넘치는 활기찬 곳이었다. 사람의 통행이 많은 길거리나 공원, 지하철 역과 같은 곳에서 연주를 하거나 노래, 또는 춤판을 벌이는 풍경을 접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요란한 타악기를 두드리며 현란하게 몸을 흔드는 젊은 댄서 지망생들이나 감미로운 기타의 음률에 목소리를 얹는 아마추어 가수, 그리고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현악기로 한 번쯤 들어본 듯한 클래식 음악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악사도 있다.
2007년 1월, 워싱턴 DC의 지하철역에서 펼쳐진 어느 길거리 악사의 45분간의 연주가 화제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nOPu0_YWhw) 그런데 그가 연주를 하는 동안 지하철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단 7명 만이 잠시 연주를 지켜보았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근길 걸음을 재촉하며 그냥 지나쳐 가기 바빴다.
조슈아 벨, 그날 그 길거리의 악사는 어마 무시한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듯이 외국에서는 연주를 본 관객들이 박수와 함께 악기 케이스나 현금 깡통에 소액의 현금을 넣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연이 별로였던 걸까? 야구모자를 눌러쓴 조슈아 벨이 연주 후 챙긴 금액이 고작 32달러(원화 36,000 정도)였다고 한다. 45분간 공연했으니 1분에 1달러가 채 안되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2020년 6월 예정되었던 그의 내한 공연 티켓 가격이 R석 22만원, S석 16만원, A석 11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코로나 사태로 아쉽게 공연이 취소되긴 했지만 말이다. 심지어 그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격이 자그마치 350만 달러란다. 원화로 39억이 넘는 거액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 들어보지도 못할 최고 수준의 연주였겠지만 행인들 대부분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아침부터 고상한 음악은 무슨? 난 1도 관심 없다.’, ‘아침 댓바람부터 웬 거리의 악사가 돈 달라고 열심히 사는군.’.... 솔직이 나 역시 그냥 지나친 사람들 중 1인은 아닐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옷 방 한 구석에 이젠 사용하지 않은 첼로 두 개가 있다. 지금은 장성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꽤 오랫동안 사용했던 악기다. 어린 아이들에게 첼로를 배우게 한 이유는 한 가지 악기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감성적으로도 좋고,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취미가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클래식을 좀 안다’ 거나 ‘미세한 음의 차이를 캐치하는 능력이 있다’ 등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아무리 훌륭한 악기에 훌륭한 음악가의 연주를 본다고 한들 ‘그냥 그런가 보다’는 하는 것이지 그 진정한 가치를 분별해 내는 능력의 소유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누가복음 8:9~15
꽤 오래전, 어느 대학에 전문가 특강을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방송국 팀장으로 재직중이었는데, 많은 학생들 앞에서 통찰력을 언급하면서 산삼과 다이아몬드 예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심마니의 눈, 그것도 선택 받은 이의 눈에만 보인다는 산삼이지만 일반인의 눈에는 그냥 잡초일 뿐이다. 그건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가치를 보는 눈을 가지지 못했다면 다이아 원석은 쓸모 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분별력과 통찰력이 있어야 정말 좋은 것,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겉모습보다는 내면과 내실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브랜드나 명성과 같은 겉모습 즉, 껍데기에만 신경을 쓴다. 정작 핵심은 그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명품이 명품으로 인정받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명품을 재테크와 같은 목적을 위해 구입한다는 이들이나, 가격보다 나에게 주는 가치를 우선시한다는 최근의 풍조를 이해를 못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명품으로 도배를 한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게 아닌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어찌 되었건 한 가지는 기억했으면 한다.
‘명품이 사람을 명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품격 있는 사람이 명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