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해고할 수 있는 자’와 다수의 ‘해고당할 수 있는 자’
싫던 좋던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곳, 우리의 직장이다. 이곳엔 크게 보면 대체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YOU ARE FIRED! (당신 해고야!)”에서 관건은 YOU(당신)가 어느 쪽에 서있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그 현실에 따라 상황은 정반대가 되고, 결과는 극과 극이 된다.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파트타임(시간제) 직원이나 일반 평사원인 때도 있었고, 팀장으로 근무하던 시기, 또 그룹 장으로 활동하던 시절도 있었다. 또 개인 사업을 운영했던 경험도 잠시 있다. 나의 이력서 경력 난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신생 벤처기업과 학교도 포함되어 있다. 분야 역시 IT, 교육, 디자인, 방송, 제조, 요식업, 서비스업 등등 꽤나 다채롭다.
생각해보면 정말 다종 다양한 분야에서 생각과 환경이 아주 많이 다른 조직과 사람들을 겪었다. 그중에는 무난하다 평할 수 있는 시절도 있었고, 좌충우돌하며 가슴 졸이던 시기도 있었다. 돌아보면 문제의 발단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경험상 그래도 한국은 정말이지 준수하기 그지없다. 평균 수준을 놓고 보아도 적어도 기본은 한다. 그런데 미국이란 나라는 한마디로 인종 전시장이란 생각이 강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색과 언어뿐 아니라 자라온 환경이나 생각의 스펙트럼이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좀처럼 예측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미국에서는 종신 고용은 상당히 생소한 말로 기억된다. 미국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고용과 해고가 비교적 자유스럽게 이루어진다. 때로는 정말 냉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리해고는 'Layoff' 또는 'Pink Slip'이라는 영어 단어가 사용되는데, 이를 굳이 풀어서 쓰자면 “YOU ARE FIRED!”, 즉 “당신은 해고야”라는 뜻이 된다.
한창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이 해고되었다는 통지를 받아 들면 그 충격이 상당하다. 특히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 가장의 경우나 매달 갚아야 할 집과 자동차 모기지가 있는데 충분한 여유 자금이 없다면 그 강도는 몇 배 심할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기에 매달 내야 하는 모기지(Mortgage)를 갚지 못해 살던 집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거나 타던 차를 뺏기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미국의 해고 절차는 지극히 간결한데, 아침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사과 직원이 와서 해고 통보를 하는 경우도 있고,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 책상 위에서 Pink Slip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컴퓨터 업계에서 일을 했던 내 친구는 매니저와 함께 즐겁게 수다를 떨며 점심 식사를 했던 그날의 기억을 들려 주었다. 식사 후 자리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려 했더니 더 이상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한다. 이상한 마음에 시스템 담당자에게 문의를 했더니 “당신은 오늘 13시부로 해고가 되어 더 이상 시스템 접속이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하더란다. 함께 식사를 했던 매니저를 찾았더니 어느새 자리에 비운 상태였고, 잠시 후 나타난 경비원들의 호위 속에 개인 사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쫓겨나듯이 회사를 나와야 했단다.
그런데 미국 기업에서는 이런 삭막한 해고처리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고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해고를 당하는 당사자들도 크게 반발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 순식간에 해고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보니 자신들끼리 'Pink Slip Party'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자리를 잠시 비우고 돌아와 보니 내 책상이 없어졌다”라는 얘기가 마냥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았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 불황기다. 요즘 같이 한파가 몰아치는 시기라면 모든 직장인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슈에 ‘해고’가 빠지지 않는다. 지금껏 여러 환경에서 다종 다양한 직업과 직위를 거쳐오면서, ‘해고를 할 수 있는 자’의 위치에도 잠시나마 있어 보았다. (실제로 “YOU ARE FIRED!”라는 말을 사용해 본 적도 있다. 딱 한번) 하지만 이제까지의 삶은 주로 ‘해고를 당할 수 있는 자’ 쪽이었다. 현재의 위치도 후자 쪽이다.
그러다 보니 오랜 기간, 나름의 비책이라 할 수 있는 ‘해고를 당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짧게나마 개인사업을 경험한 덕에 양쪽 모두의 시각을 염두에 두고 ‘해고’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디서든 ‘해고’라는 사건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항상 있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자신만의 필살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untouchable이다. 회사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런 키맨이 없다면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뿐더러 심하면 기업의 흥망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이들을 위상은 '해고'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이 키맨들은 '필살기 관리'의 대가들이다. 고용자도 사람, 특히 인재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80:20의 파레토 법칙처럼 20%의 인재가 실질적으로 회사를 먹여 살린다. 당신은 그 20%에 속해 있는 인재인가 아니면 나머지 80%. 그중에서도 회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치는 뒤에서 20%에 속해 있는가? 그 민폐 20%가 해고의 첫 번째 타깃이 된다.
두 번째는
평소에 인맥 네트워킹을 철저히 해 두는 이들이다.
자신이 맡은 업무에서의 비범함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에 더해서 평소 '인맥관리'에도 철저한 이들이 있다. 자기가 속한 산업분야는 당연하고, 더 범위를 넓혀 다양한 네트워크를 해두면 뜻하지 않는 도움을 받을 지도 모른다. 실질적인 문제가 생기기 전에 언제든지 배를 갈아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두라. 기회의 문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열릴 수도 있음이다. 다만 인맥관리를 한답시고 필요 이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엉뚱한 곳에서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은 아무 쓸모가 없으니 좀 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타깃을 정하도록 하자.
세 번째는
스스로 먼저 그만두는 이들이다.
이런 친구들은 눈치가 백 단 이다. 그만큼 계획과 준비도 미리미리 해둔다. 아무런 대책 없이 사표를 던지는 이들은 미안하지만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목표와 방향성 때문에 사표를 던지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고 선수를 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평소 ‘자기관리’에 능한 이들이 잘 쓰는 방법이다. 어쩌면 나도 이쪽 부류를 선호하는 지도 모르겠다. 여러 곳을 경험했었지만 단 한 번도 해고를 당한 적이 없었다. 내가 눈치껏 알아서 먼저 지르는 게 나의 비법 같잖은 비법(?)이다. 그래서 내 책상 설합 한 켠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사표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능력이 부족해서,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이 두려워서, 또는 퇴사 후 당장의 미래가 걱정스러워서……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고 상사나 동료들이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 급여나 복지, 회사 분위기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선택권은 내가 아니라 타인이 쥐고 있게 된다. 그때부터는 상황이 역전이다. 호기롭던 성정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이젠 눈치보기에 더 익숙해진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비록 현실이 힘들고 괴롭고 벅차더라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를 갖는 게 우선이다. 그 마음이 한데 모이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면, 즉 '해고 당할 수 있는 자'의 위치에서 한동안 벗어나기 어렵다면 마음가짐부터 바꿔보자. '해고'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위한 자신만의 비법을 찾아라.
날씨도 춥고, 마음마저 시린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쉼 없이 달려야 한다. 삶은 계속 되야 하는 거니까……
자~ 오늘 하루도 우리모두 파이팅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