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끔은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들어 가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깊은 산속에서, 외진 섬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들.
책임도 없고, 간섭도 없고, 스스로 생존하는 일 외엔 신경 쓸 게 없어 보이는 삶.
그런 모습을 보면, 문득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모든 결정과 사람, 관계와 책임에서 벗어나 그저 ‘나’를 위한 하루를 살아보는 것.
그 안에 진짜 자유가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길게 가지는 않는다.
금세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그게 정말 자유일까?’
나의 자리는 끊임없는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다.
부족한 지식과 능력과 깜냥인 처지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누군가를 이끌고, 때로는 반대를 설득하고, 때로는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특히 요즘 같은 때는 더욱 그렇다.
AI라는 새로운 기술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일의 '속도'와 '방식', 심지어 일의 ‘의미’마저 바꾸고 있다.
나 역시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둥대고 있다.
그리고 그 파도가 내가 속한 회사와 사람을 집어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런 변화 앞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먼저 움직이고, 누군가는 기다리다가 따라간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끝까지 버티며 움직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끊임없이 반대하고 의심하면서도 정작 아무런 시도나 움직임은 하지 않는 경우다.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선을 긋고,
"안 된다", "소용없다", "우린 못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얼마 전, 이런 구절을 보았다.
문어는 항아리에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어부들이 문어를 잡을 때 바닷속에 항아리를 넣어두면,
그 안이 조용하고 안전해 보여 문어가 스스로 들어간다고.
그리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그 항아리는, 문어에게는 덫이 된다.
이 글을 본 순간, 잠시 멈췄다.
혹시 나도, 우리도,
익숙함이라는 항아리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
불편함은 피하고 싶고,
반대는 하고 싶지만 책임지긴 싫고,
새로운 걸 배우기보다 지금의 방식이 낫다고 믿고 싶은 마음.
그 모든 게 ‘안전한 항아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자유는,
그 항아리 바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불편하고, 낯설고, 두렵지만 그래서 살아 있다는 감각이 더 분명해지는 자리.
요즘 나는 그런 걸 자주 느낀다.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나 역시 이 변화의 파도 앞에서 문어처럼 움츠러들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 묻고 또 묻게 된다.
파도를 타야 한다는 말은 참 많이 들리지만
사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지금 내가 항아리 안에 있다는 걸 먼저 알아차리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에게 자주 묻는다.
“지금 너는 어디쯤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