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성을 높이려면 ‘관찰’이 핵심이다
‘상상하지 말라’, ‘열정은 쓰레기다’, ‘팀워크의 배신’…… 최근에 나의 주목을 끌었던 책 들이다.
왠지 책 제목부터 까칠한 것이 나의 은근한 무대뽀(?) 기질을 재촉해 관심이 더 생겨났나 보다. 뭐든 뒤집어 바라보려는 나의 성정 때문인가?
그런데 막상 속살을 들여다보면 어디든 이렇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 바닥이 하루에 300종이 넘는 책들이 쏟아진다는 출판계라면. 일주일이면 1,500종 가까운 수북한 책 더미 속에 파묻히고, 1년이면 2만 권 가까운 책 패총이 만들어질 법도 하다. 그 와중에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서점 매대 위에서 질기게 살아남으려면 무색 무취해서는 어림도 없다.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표지와 제목을 보고 책을 구입한다는 불편한 진실(출판업계 전문가에 의하면 제목과 표지는 5할, 내용은 2할, 지명도가 3할이란다) 앞에서 저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튀려고 무슨 일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책 제목뿐 아니라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가 난무할 법하다.
‘상상하지 말라’의 저자는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이다. 몇개월 전 상공회의소 조찬강연회에 강사로 등장한 그의 첫인상은 ‘앳지 있다’였다. 청바지에 가죽점퍼, 그리고 꽁지머리를 한 모습은 ‘다음’이라는 회사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그의 책에서 그러한 외모 역시 차별화를 위한 전략이었다는 고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게 시작된 강의시간 내내 그는‘관찰’을 역설했다.
‘상상하지 마라, 무엇을 상상하던 실제와 다를 것이니……’
‘좀 안다고 썰을 풀지 말라, 관찰하고 검증하고 합의하라’
‘사물이 아니고 사람을 관찰하라’
‘당신의 상식은 여전히 상식적인가?’
‘보고도 모르는 것을 보라’
……
(송길영의 ‘상상하지 말라’에서)
SNS를 통해 수집된 빅데이터의 위력은 실로 막강했다. 팩트(FACT), 즉 사실에 바탕을 둔 분석과 통찰은 막연하던 추측과 상상에 탄탄한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온라인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로서 트렌드가 어떻게 우리 곁에서 자리를 잡아 가는지 데이터를 통해 명확히 보여 주었다. 좀 더 나아가 패러다임을 예측하고 선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힌트를 제공했다. 과거를 거쳐 현재를 지나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정확성을 높이려면 ‘관찰’이 핵심이다.
미래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꿈꾸던 시대에서,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단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여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진다. 어려운 경제상황이지만 소소하게나마 기분도 내고 싶고, 나를 위한 투자도 하고 싶은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는 1인 가구의 증가와 싱글족의 소비지출이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1인 가구 소비 지출이 12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은 식품, 가전, 가구, 생활 용품 등과 같은 관련 산업의 발전 방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결국 어느 산업이던 타깃에 맞는 제품 생산과 포지셔닝이 대단히 중요하다.
며칠 전 '2016년 트랜드쇼'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브랜드 파워를 가진 명품의 위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얇아진 소비자들의 지갑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에서 현명한 소비자들은 브랜드라는 계급장보다는
가성비를 우선으로 선택했습니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선과 적정이라는 조건으로 선택의 기준을 바꾼 것이다. 이는 대중문화에서 자기만족과 자아도취, 자유로움, 가벼움 등을 의미하는 '스웨그'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무조건적으로 유행을 따라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과 매력을 드러내고 본능적으로 자유로움을 찾는 행위가 바로 ‘스웨그’ 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작금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변환경과 고만고만한 제품군에서 품질이나 가격, 그리고 제한적인 마케팅 전략만으로는 도긴 개긴의 상황이 전개될 뿐이다. 이래서는 차별화가 불가능하다. 이럴 땐 누가 먼저 가치를 선점하는가에 따라 사업의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여기서 가성비란 고객의 마음속에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미 포화된 시장을 벗어나 전략적으로 새롭게 프레임을 짜는 방법도 하나다. 동일한 제품이나 상황이라 할지라도 프레이밍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강의를 듣는 내내,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 약간의 불편함이 자리했다. 문득 ‘나도 이젠 구세대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싶다. 나의 고정관념,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 즉 나의 기득지가 관찰과 상상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쌓인 이해는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으로 켜켜이 쌓여가지만, 때로는 나의 기득지가 지금의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인지한다. 기술과 삶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지난 상식은 어느덧 유효기간을 다하고 있다.”
세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데,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재단하고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이래서야 시대에 걸맞은, 제대로 된 판단이 나올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당신의 지식이 당신을 지켜주었을지 모르지만, 그 지식이 좁고 낡은 것으로 판명 나는 순간 당신의 지식은 회사가 당신을 버리는 구실이 될지도 모른다”
회사가 나를 버리고 안 버리고는 둘째 치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내가 회사나 주위 사람들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시나브로 다가온다.
먼저 비워야겠다. 그리고 끊임없는 학습과 관찰로 데이터를 차곡차곡 채우고, 검증과 변주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BG: 영화 '액트 오브 킬링 The.Act.Of.Killing.201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