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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Dec 19. 2015

무대뽀는 도전이다

달인정신의 김병만

“거기 회원님”

"저요?"

“네. 옆으로 빠지세요.”

갑자기 우왕좌왕하는 분위기가 주위를 감싼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몸이 절로 움치려 든다. 매서운 강사의 눈길을 피해 슬금슬금 발뒤꿈치를 들고 도망가듯 물속으로 몸을 숨기는 순간, 애써 눈길을 외면하던 강사와 눈길이 떡 하니 마주쳤다.


“거기 회원님” 

“헉, 저, 저 말입니까?” 더듬거리며 답변하기가 무섭게,

“네. 옆으로 빠지세요.”

“저기 선생님, 저는 아닌데요……”

그러나 나의 대답은 왁자지껄한 동생들의 축하 목소리에 어느새 묻혀 버리고, 난 하는 수 없이 끌려가듯 옆 라인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호명과 웅성거림이 더 있은 후, 강사의 발표가 이어진다. 

“자, 오늘 옆 라인으로 배정받으신 회원님들은 다음달부터는 마스터반으로 옮겨서 강습을 받으면 됩니다. 나머지 분들은 연수반에서 강습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허걱~! 마스터반이 어디던가!’ 그들은 수영장 내에서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엘리트 그룹이었다. 그들이 뒤집어 쓴 태극기와 MASTER, KOREA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수모는 수영장에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그룹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니……’ 감.개.무.량. 그런데 막상 마스터반으로 소속이 결정되고 나니 기분이 복잡 미묘해졌다. 솔직이 기대보다 걱정이 더 앞섰던 것이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나 잘 할 수 있겠지?’

‘난 잘 할 수 있어, 그럼! ...... 근데 안되면 어쩌지……’




대한민국에서 도전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인물 중에 희극인 김병만이 있다. 지독히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인물이다. 김병만이 평생을 두고 닮기 위해 우상이자 멘토로 삼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다. 찰리 채플린은 가난과 고난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코미디언, 영화감독이자 음악가로 무성영화 시대에 대활약을 한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과장된 제스처와 비애감을 결합한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Comedy)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는 자신의 자전적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다. 채플린의 영화는 무성영화였기에 언어의 차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미국 사회로 밀려 들어오는 다양한 이민자들의 공감을 얻고 한 시대를 풍미하는데 성공했다. 

김병만은 찰리 채플린 식 슬랩스틱 코미디를 자신의 장기인 무술 캐릭터를 접목시켰다. 연극무대와 개그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던 그는 7전8기 끝에 공채개그맨으로 합격하고 ‘아크로바틱 슬랩스틱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그리고 유명 개그 프로그램의 ‘달인’ 코너로 화려하게 그 이름 석자를 알렸다. ‘달인’ 정신이 더욱 가치가 있던 것은 매회 그가 보여주는 새로운 도전이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짧은 방송시간을 위해 그가 흘렸을 땀과 눈물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관객들은 감동하고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주었다.


피겨스케이팅을 버라이어티와 접목한 ‘김연아의 키스앤 크라이’에서는 연습 중 다친 발목 인대 때문에 녹화도중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해 무릎을 꿇고 몸을 지탱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의 우상이자 멘토인 찰리 채플린의 복장을 하고서 말이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진정성은 MC로 참여한 김연아 선수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자극하고 잔잔한 감동을 전해 주기에 충분했다. 진정성이란 내면의 힘이다. 스스로 겪고, 느끼고, 그리하여 진실되이 온몸으로 말하는 것이어야 통할 수 있는 것임을 그는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공중파 방송 중에 갖가지 분야에서 달인이라 칭해지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통사람들이 등장한다. 분야에 관계없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달인들의 모습은 탄성을 넘어 경외감까지 느끼게 한다. 그와 같은 경지는 오랜 기간동안 날 것 그대로의 피땀 어린 노력이 함께 했음에 가능한 것이다.


내가 도전하고 있는 수영도 이와 마찬가지로 ‘근육기억’이 생겨야 레벨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근육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가꾸고 단련해야 튼튼한 ‘근육 기억’이 만들어지고,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자연스럽게 주변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작동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근심 반 걱정 반으로 출발선에 선 나의 마스터반 첫 수영 강습 시간. 

‘첫날이어서 그랬을까?’ ‘아니~ 첫날이니까 그랬겠지?’ 그건 수영강습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은 차라리 군대의 얼차려라고 표현 하는 게 적당할 듯싶다. 강사는 마치 작심하고 ‘이것이 마스터다’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숨돌릴 틈도 없이 우리들을 몰아쳤다. 이미 마스터반에서 강습을 받고 있던 다른 회원들은 유유자적하게 헤엄을 치고 있건만 속도도 늦고 지구력도 딸리는 나는 원위치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이미 출발해 한참을 앞서 가고 있는 다른이들을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 기가 막혔다. 날렵함, 지구력, 유연함…… 확연한 실력 차에 기가 팍팍 죽는다. 이제까지 연수반에서 대충 눈치껏 수영하고 호흡도 넉넉히 돌리고 하던 것과는 레벨 자체가 다르다. 난 그날 반쯤 죽다 살아났다. 어떻게 앞사람을 쫓아다녔는지 기억도 전혀 나질 않는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랐고, 이마에서는 땀이 폭포수같이 흘러내렸다. 게다가 눈아래 다크서클까지 덤으로 얻었다.


첫 강습 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갈등에 갈등을 거듭했다. ‘내려갈까? 아님 조금만 더 견뎌볼까? ……’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 특유의 무대뽀 성정이 유혹하는 대로 한 주만 더 부딪쳐 보자고 마음을 다졌다. 그러던 것이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이제 어영부영 일년 반을 훌쩍 넘어섰다. 여전히 힘들고 아침마다 앞사람 쫓아가느라 헉헉대는 건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요령이 생겨 뺑뺑이 돌다가 눈치껏 대오를 빠져 나와 잠깐씩 호흡을 고르기도 하고, 다른 영법으로 늘어진 간격을 줄이기도 한다. 그래도 전보다는 체력이 좀 올라왔는지 이제 숨 조절이 한결 수월해진 듯하다. 또 지구력도 조금 높아진 것 같고. 내친 김에 올해는 동료들과 3Km 핀 수영대회까지 다녀왔다. 그래서일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특유의 무대뽀 자신감도 조금씩 움찔대고 있다. 언젠가 실력이 쌓이면 나도 1번이 되는 날이 올까? ㅎㅎ 그런데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그건 그냥 야무진 꿈으로만 남겨질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지금도 마스터 3반 중 마지막인 3번째 레인의 제일 꽁지가 변함없는 내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일명 '꽁지마스터'다. 그래도 수영 달인을 향한 나의 도전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조지 레오나르드는 그의 저서 ‘Master Mind(달인)’에서 ‘달인 곡선’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달인의 길에는 우회로가 없다. 즉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비교적 짧은 전력투구와 전진 단계, 그렇게 해서 다소 실력이 상승하면 거의 곧바로 쇠퇴하는 정체상태가 다가와 그대로 지속된다”

 라고 했다. 어느 분야에나 상관없이 실력이란 단번에 느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된 연습과 도전이 전제되어야만 계단을 밟아 나가듯 한걸음씩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대상 또는 어려운 목표에 도전할 때, 누구나 두려움이 앞서는 법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 설령 시작을 했더라도 부정적인 마음이 강하면 과정중의 작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에 단념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달인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달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래서 완벽하게 익숙해 지기 때문에 달인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너무 빠른 결과나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실수를 범한다. 때문에 각종 속성반이나 즉효약, 사행산업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릇된 생각은 비단 특정한 분야만이 아니라 발전과 변화가 필요한 모든 분야와 대상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독소처럼 퍼져있는 조급증과 강박증을 다스리고 목표를 향한 뚜벅이 걸음을 지속해 나아갈 때, 강력한 힘과 능력을 갖춘 달인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자. 혹시 있지도 않은 달인이 되는 지름길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찰리 채플린이나 김병만이 그랬고, 또 수많은 분야의 보통 달인들이 그랬듯이 자신이 목표한 분야에서 최고, 최선이 되고자 한다면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담금질하는 과정을 허투루 하지 않아야 한다. 쇠는 맞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달인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두려움과 한계치를 극복하고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로 점철된 도전의 과정이 있어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

무대뽀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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