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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Oct 10. 2019

사용하지 않으면 녹슨다

Use it, or lose it

용불용설 (USE AND DISUSE THEORY)

이는 프랑스의 진화론자 레마르크의 주장으로,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반대로 사용치 않는 기관을 퇴화해서 점점 기능을 못하게 되고 없어진다는 학설이다.


쓰지 않으면 녹슬고 기능이 죽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다. 자연도, 동식물도, 그리고 우리 인간 역시 뛰어봤자 이 기본 섭리 안이다. 첨단 기계나 기구도 그러하고, 기술이나 기능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몸도 계속해서 쓰고 단련하지 않으면 점차 약해지고 퇴화하게 된다. 뇌기능은 또 어떠한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를 시키지 않으면 세포는 점차 죽어가고,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한다. 그게 치매다.


올해 초, 자전거 사고로 쇄골 부상을 당한 덕분에 본의 아니게 이 섭리를 가슴깊이 되새길 기회가 강제로? 주어졌다. 밥 먹듯 즐기던 여러 운동을 모두 중단하고 나서 점점 흐물흐물해져 가는 이두와 삼두 근육을 바라보며 난 낙담해야 했다. 그렇다고 거창한 몸짱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건강하고 탄탄한 느낌이 좋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젠 근육은 고사하고 앙상한 가지에 하늘거리는 나뭇잎 느낌에다, 팔 움직임까지도 부자연스럽다. 그나마 좀 나아진 게 이 정도다. 한동안 부러진 뼈를 붙인답시고 과한 움직임을 전혀 하지 않았더니 나중엔 제대로 팔을 들어 올릴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녹슬고 퇴화하는 것에 언어 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9월 중순경, 핵심 고객 중 하나인 미국 S사 사장과 부사장이 회사를 방문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점심식사, 오후 5시까지 거의 하루 종일 타이트한 미팅이 이루어졌는데, 다소 부끄러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비즈니스 영어 대화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내 생각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속사포 같이 내뱉는 뉴요커들과의 대화를 놓치기 일쑤였고, 심지어 나의 콩글리쉬 발음에 “What?”이라는 질문을 연거푸 받고 몹시 당황하기까지 했다.


마침내 힘든 하루를 마감하고 나니 많은 생각들이 밀려왔다. ‘그래, 이건 그간의 방심과 나태함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야.’ 다양한 인종들이 넘쳐나는 뉴욕에서 익힌 길거리 영어로 무장한 나는 영어 사용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외국인들을 직접 상대하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거치며 쌓아 올린 내공이 아니던가? 게다가 현재도 하루 일과의 상당 부분이 영어로 이루어진다. 물론 주로 읽고, 쓰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역시 핵심은 듣기(listening)와 말하기(speaking)였다. 어쩌다 한 번씩 이루어지는 국제전화나 컨프런스 콜 정도로 만만하게 여겼던 영어가 당긴 방아쇠에 제대로 혼쭐이 난 셈이다. 역시 자주 사용하며 갈고 닦지 않으면 언어 능력도 녹이 슨다는 기본 이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한글날이다. 직장인으로서 하루를 더 쉴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글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훈민정음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께 감사드려야 할 것 같다. 비록 보잘것없지만 글쓰기를 즐기(려)는 편이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 내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가 되어 좋았다.


수년 전,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회사 임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담아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던 것이 매주 1회 이메일 보내기로 발전했다. 제목은 ‘~~~의 두런두런’. 내용은 신문이나 방송 기사, 세미나 방문, 책을 읽고 난 소감, 회사일과 관련한 개인적인 소견 등 실로 다종다양했다.

그 일을 3년 가까이 꾸준히 했다. 허접한 글 한편을 쥐어짜 내느라 매주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지만 덕분에 글쓰기와는 좀 더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꽤나 익숙해진 후로는 ‘일필휘지’까지는 아니지만 몇 시간 만에 ‘뚝딱’이 가능한 적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슬럼프가 오니 발송 기간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한번 미루기 시작하다 두 번이 되고, 세 번, 네 번 …… 그러다 마침내 여러 이유를 들어 중단을 결심했다.


그러고서도 개인적인 글쓰기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약간의 압박감 내지 긴장감이 있다면 지속성이란 점에서는 분명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해서다. 한동안 손을 놓았다가 다시 시작하려니 새삼 자연의 이치가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넌 이미 녹이 많이 슬었다고……


내 머리와 손, 내 정신과 육체 곳곳에 골고루 퍼져있는 녹을 털어내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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