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관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공원 Dec 17. 2015

무대뽀는 리더십이다

뉴욕공화국의 루돌프 줄리아니

‘한번 가볼까?’

‘아냐 아냐, 너무 위험해…… 중간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

‘에이, 그렇다고 여기서 이렇게 마냥 기다려야 해?’

‘안 그럼 어쩔건데 …… 별수 없잖아……’

‘그래도……’

‘………’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지하철 역의 제일 끝 점에 멈춰서 있다.


때는 1990년 초 가을. 자정이 훨씬 넘어선 토요일 밤. 당시 뉴욕 맨하튼 다운타운에 위치한 빌리지(Village)의 어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나서는 시간은 항상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집이 있던 브루클린(Brooklyn)의 그린포인트역(Greenpoint Avenue Station)까지는 다른 색깔의 지하철 라인을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특히 맨하튼 다운타운을 거쳐 도착하는 브루클린의 환승역에서 집이 있는 최종 목적지까지는 단 한 정거장 밖에 되지 않았으나, 뜸해진 배차 간격과 연계 타이밍 때문에 매번 인적 없는 역에서 졸음과 싸우며 앉아있기 일쑤였다. 야심한 시각, 지친 몸으로 이제나저제나 언제 올지 모를 지하철을 기다리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못 말리는 무대뽀 인자가 또다시 발동을 한 것이었다.


당시 뉴욕의 지하철은 오래된 역사만큼 시설도 무척 노후했고 무엇보다 대단히 지저분했다. 지하철 벽과 통로는 온통 그라피티(graffiti)투성이였고, 빈 병과 신문지 같은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굴러 다녔다. 심지어 술병을 든 노숙자들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있거나, 의자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술인지 마약인지에 취한 듯한 초점 없는 눈빛. 때에 절은 넝마 같은 옷을 걸친 꾀죄죄한 모습을 한 이들은 대단한 악취를 풍겼다. 실성한 사람처럼 혼잣말을 지껄이다 비틀거리며 다가오면 행인들을 혼비백산하여 피하기 바빴고, 구걸을 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시민을 위협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아무데서나 거리낌없이 분비물을 쏟아내곤 했다. 지하철 레일 바닥은 오수와 쓰레기가 넘쳤고 곳곳은 쥐들의 세상이었다. 지하철 몸체도 예외가 아니었다. 철없는 어린 청소년들이나 예술을 표방한다는 일단의 무리들, 자신들의 구역을 표시하려는 갱단 멤버들이 마구잡이 식으로 그려놓은 온갖 그라피티로 인해 열차는 마치 움직이는 거대한 공공 낙서판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그날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지하철 역의 끝점으로 간 나의 눈에는 어둠 너머 저 멀리 다음 지하철역의 불빛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얼마 안돼 보이잖아…… 저 정도 거리라면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너 미쳤어? 중간에 뭐가 있을지 어찌 알아? 그리고 그러고 가다가, 열차라도 오면 어쩔려고 그래?’

‘……’


내 맘속에 밀당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내 두 눈은 거리와 시간을 눈대중으로 체크하느라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인 선 나는 ‘No Trespassing’ (출입금지)라고 되어 있는 노란색 철제바를 넘었다.

그런데 바깥에서 보던 터널과 직접 들어가 본 터널을 달랐다. 지하철 벽을 타고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좁았다. 두발을 간신히 맞대고 서있을 수있는 정도의 공간밖에 되지 않은데다 타원형의 터널 벽면 때문에 몸을 똑바로 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역에서 멀어지면서 주변의 빛도 함께 사라져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터널 특유의 웅웅거림속에 간간히 레일을 타고 들려오는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뿔싸! 너무 서둘러서일까? 좁은 통로를 정신 없이 내달리던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레일위로 떨어졌다. 철제레일과 왼쪽 무릎을 심하게 부딪친 것 같았는데 그 순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수가 온몸으로 튀었지만 그런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끼~익…. 끼~이~익~”


마치 바로 내 등뒤에서 지하철이 쫓아오고 있는 듯한 착각과 기계음 같은 환청이 들리고, 가슴은 폭발할 듯 쿵쾅거렸다. 정신을 차린 난 재빨리 좁은 통로위로 다시 기어올랐다. 바닥에서 통로까지는 꽤 높이가 있어 두어 번의 까치발 시도 끝에 겨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내 몸의 모든 세포와 정신을 모아 좁은 통로에서 다시 떨어지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데 집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다음역의 불빛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아, 살았구나……’ 마침내 출입금지가 쓰인 다음 역의 노란색 철제바를 통과하고서야 비로소 난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영화 ‘베트맨’의 배경이기도 한 고담시티, 뉴욕의 지하철 풍경은 하루에도 수십 건의 강력범죄가 발생하던 1990년대 뉴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하철은 온갖 묻지마 범죄가 수시로 발생하던 우범지대였다. 무법 천지가 따로 없었다. 나 역시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패싸움도 보았고, 한적한 지하철 역에서 어린 강도와 직접 맞닥뜨리기도 했었다.

1994년 새로 뉴욕시장으로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 (Rudolph W. Giuliani)는 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모든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만연해 있던 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했다. 그의 도전을 비웃듯 강력범죄가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96년, 뉴욕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는 우연히 책에서 얻은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지시로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던 그라피티를 지우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그라피티는 뉴욕거리와 건물, 자동차, 지하철 곳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조치에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을 넘어서 이젠 대놓고 줄리아니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심지어 사퇴를 종용하는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강력범죄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 나가고 있는데 한가롭게 청소나 하고 있냐고 손가락질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뜻을 펼쳐 나갔다. 낙서 전담반을 구성해 각종 대책을 수립하고, 무차별적으로 낙서를 해대는 꾼들과 쫓고 쫓기는 전쟁을 벌였다.

주로 거친 불량 청소년들이나 폭력배들이 대부분이었던 이 꾼들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낙서를 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던 스프레이를 허가 없이 구입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스프레이의 구입이 어려워지자 나타난 동전이나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지하철 유리창을 긁어대는 스크레치티(Scratchiti) 대한 대처방안으로 쉽게 긁어지지 않는 특수 유리창으로 전면 교체를 단행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무임 탑승자를 철저히 단속하고, 홈리스와 같은 부랑자들을 지하철 실내와 역에서 쫓아 냈다. 이제 지하철은 더 이상 우범지대가 아닌 깨끗한 교통시설이자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마치 그라피티가 범죄의 원흉이라도 되는 듯 모든 경찰력과 시의 역량을 동원하여 벌인 이 전쟁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라피티 제거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2년 만에 중범죄가 50% 이상 줄어 들었고 1999년에는 중범죄의 75%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실화는 ‘깨진 유리창 이론’의 실례로 세계 곳곳에 소개되기도 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 (Broken Windows Theory)은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에 발표한 이론으로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살던 동네의 지하철 역도 지저분함을 벗고 새롭게 탈바꿈했다. 내가 지하철 터널에서 홀로 쌩난리 드라마를 찍던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청바지와 셔츠에 튄 흙탕물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빨래를 했으나 그 오수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그 자국들은 좀처럼 지워지질 않았고 결국 난 그 옷들을 모두 버려야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무대뽀 뻘짓이었음을 인정한다. "뭐 저런 무대뽀 인간이 다 있어~" 라는 얘길 들어도 마땅하다. 하지만 그때가 아니었다면 내가 언제 그런 미친(?)경험을 해 볼 수나 있었을까 싶어 괜히 헛웃음이 나온다.   


미국이 아닌 미국도시, 뉴욕공화국의 경영자로서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루돌프 줄리아니. 그는 미국의 심장 뉴욕이 911 테러를 당했을 때도 뉴욕시장으로서 또 한번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의 저서 ‘Leadership: 줄리아니-위기를 경영한다’ 에서 그는 리더십의 몇 가지 주요 원칙들을 열거했다. ‘항상 철저하게 준비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과 ‘일을 함에 있어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 ‘늘 작은 것에 힘쓰며’, ‘기꺼이 책임을 떠맡는 것’도 신뢰를 줄 수 있는 리더의 자세라 했다. 또한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보다 높은 목표를 향해 부단하게 조직과 사람들의 에너지가 분출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꿈과 희망을 파는 리더의 역할’을 정의했다.


주변의 온갖 비난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며 조직을 이끌었고, 용감한 동료들과 함께 위대한 결과를 이끌어낸 그의 리더십은 무대뽀 인자의 실체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무대뽀는 리더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대뽀 신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