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이란 오일 & 개스 쇼 참가기
‘오늘, 이란 방문 첫날이다……’
……
……
‘어느새 마지막 날이다……’
그렇게 쓰다만 서두를 계속해서 붙들고 있었던 수일간의 기억이다.
두바이를 경유한 15시간에 가까운 장시간의 비행에다 네 시간 반 정도의 시차 때문에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점도 분명 무시할 수 없었다. 1시간 반 넘게 걸린 지루한 비자 수속에다 호텔까지 또 1시간 남짓, 짐만 내려놓고 바로 박람회장으로 이동해서 전시 준비하느라 진이 좀 더 빠졌다. 5.5~5.8까지 나흘 동안 진행된 박람회 기간동안 실제 행사 운영과 관람객 및 고객들과의 연이은 미팅은 남아 있던 마지막 체력마저 소진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그곳에서 첫날 시작한 이 글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꽤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마무리를 짓게 된 셈이다.
이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다는 ‘2016 IRAN OIL & GAS SHOW’에 전시 참가를 결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 적지 않은 참가비용과 산재한 위험도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 과감히 참가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시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확신은 오랜 시간 이 시장을 바라보고 간헐적이나마 꾸준히 거래를 이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동안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담한 실패도 맛보았다. 수주에서부터 제작과 납품, 대금 수금에 이르기까지 불확실성과 위험은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위험하다고 주저하고 있을 때 우린 실행에 옮겼고, 소기의 성과도 얻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단계로의 도전을 위해 이번 참가를 결정했다.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 길에는 이유가 있다. 그만큼 어렵고 예측 불가한 길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도전 길에는 곳곳에 깊은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다. 하지만 성취는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자의 것임을 믿기에 그 미지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이란 땅을 밟은 때가 지금부터 약 5년 전인 2011년이다. 수주받은 프로젝트와 관련된 발주사 및 엔지니어링 회사와의 미팅 때문이었다. 그때 이 나라에서 받았던 감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채색, 즉 흰색과 검정, 그리고 회색이었다. 건물과 도로, 그리고 무표정한 사람들까지…… 온통 무채색으로 겹겹이 쳐진 장막 같은 곳. 이란은 그렇게 나의 뇌리 속에 남겨졌다. 공항에서 테헤란으로 가던 고속도로 차 안에서 보았던 하늘로 포문을 향하고 있던 전차의 모습도 생각난다.
2011년 당시와 5년이 지난 지금을 비교해 보았을 때 크게 변화를 느끼지 못한 점도 물론 있다. 공항을 비롯한 각종 공공시설의 노후한 상태나 구태의연한 공무원들의 태도는 여전히 마음에 와 닿질 않았다. 도로를 가득 메운 구덕 다리 자동차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매캐한 매연은 여전히 코를 찔렀고, 운전자나 보행자의 개념 없는 질서 의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활기’가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축 열기는 이 도시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증거였다.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기대감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최근 이란의 경제, 금융 제재 해제와 때를 같이하여 오랜 기간 동안 고립을 면치 못했던 이란이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서두르고 있다. 그간 될 듯 말 듯 애를 태우던 핵무기 밀당이 드디어 마무리가 된 것이다. 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이슬람 정부가 들어선 게 1979년이었으니 강산이 거의 네 번 가까이 변할 긴 시간 동안 이 나라의 많은 것들이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이란은 천연가스 세계 1위, 석유 세계 4위의 자원 부국이다. 게다가 중동에서 두 번째로 많은 8,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동 최대의 시장이며, 사우디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맹주이기도 하다. 특히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종교적 이념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1400년간 지속되어왔다. 최근 벌어진 사우디 집단 처형에 반발한 이란의 사우디 대사관 방화사건은 두 나라 사이의 첨예한 힘겨루기 양상을 보여 준다. 두 나라뿐 아니라 예맨, 레바논, 시리아, 터키 등에다 러시아, 미국, EU 등 서방 국가들까지 복잡하게 엮여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세계의 화약고이기도 하다. 이란의 핵 문제가 더 큰 이슈가 되었던 이유다.
그렇던 이란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탈출구가 되어줄 새로운 오아시스로 말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자 결정판이 바로 2016 IRAN OIL & GAS SHOW가 아닐까 한다. 이 행사에는 그간 국제적인 경제제재에 동참하여 어쩔 수 없이 노른자위 시장을 포기해야 했던 세계적인 기업들의 참가가 줄을 이었다. 또한 열강들의 철수로 반사이익을 보았던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업체들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제재 기간 동안 꾸준히 힘을 기른 이란 내수업체들까지 참가하여 판이 더 커졌다. 엄청난 시장과 고객을 향한 본격적인 헤게모니 쟁탈전을 알리는 짙은 전운이 전시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생사를 건 지키느냐 뺐느냐의 전쟁이다. 그리고 난 그 전쟁터에 한가운데 서있다. 나름 결연한 마음으로다……
이란의 날씨는 예상외로 쾌적했다. 햇살은 따갑고, 25~35도 오르내리는 꽤 높은 기온이라고는 해도 조석으로 부는 바람도 선선하고 무엇보다 끈적이는 느낌이 없어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시장 뒤로 멀리 앨브르즈 산맥이 보인다. 눈이 덮인 산 정상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고지대라 1년 내내 흰 눈이 덮여 있단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등반해 보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첫날과 둘째 날은 국경일에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인적이 기대보다는 조금 뜸했다. 하지만 셋째 날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고, 마지막 넷째 날 또한 기대 외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우리 회사의 기존 고객들에게 초대장을 보냈기 때문인지 직접 부스를 찾아와 준 고객들도 꽤 있었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된 핵심 매니저들의 방문은 메일상으로만 대하던 얼굴 없는 관계를 매끄럽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또 수시로 현지 에이전트와 함께 다른 홀의 여러 부스를 돌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주요 업체들과의 즉석 미팅 자리를 마련하였다. 회사와 제품을 홍보하는 데는 역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내에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명확한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진정성을 갖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우선 먼저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정리한 자료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도 필수다. 고객의 니즈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자료를 내보이고 내가 할 수 있음을 강조해야 설득력을 얻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조금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차후에 신속히 대응해 주는 전략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공적인 미팅도 있었고, 다소 아쉬움이 남는 만남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두가 소중한 재산이고 미래의 열매를 위한 씨앗임을 알기에 작은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가 없다. 어느새 사흘간의 박람회 기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시원섭섭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임을 알기에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무수히 많은 숙제를 안고 온 기분이다. 이제 그 숙제들을 하나씩 풀어가야 할 시간이다. 힘들게 뿌린 씨앗에서 싹이 나고 가지를 뻗어 열매를 맺기까지는 인고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자면 한동안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야 할 듯하다. 그래도 순간순간 강렬했던 수일간의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간단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거를 수는 없는 법이다. 해서 짬짬이 틈을 내어 힘겹게 이 글을 마무리한다. 부족한 부분은 언제가 될 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끝으로 사진 몇 장을 올려본다. 현지 에이전트 덕분에 호텔로 돌아가는 시간을 쪼개어 잠시 발품을 팔았다.
얼마 되진 않지만 이곳저곳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