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지상과제는 소통이다
얼마 전, 반가운 얼굴을 맞았다. 병력특례로 수개월간 현장에서 근무했던 친구가 오랜만에 회사를 찾아온 것이다. 원래 집이 먼 남쪽 섬이라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서글서글한 인상에 순박하고 성실해서 애정이 많이 가던 친구였다. 이제 다니던 대학에 복학해서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꽤 괜찮은 학점에다 각종 자격증 취득에도 발품을 팔며 이른바 취업을 위한 스펙 쌓느라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벌써 내년이면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며 선뜻 고민을 내비친다. 무엇보다 영어 토익 점수가 요지부동이라며 한숨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영어란 놈이 골치 아픈 문제인 건 어찌할 수 없나 보다.
말이 나온 김에 생각나는 대로 훈수 몇 마디를 해주었다. 왕년에 나 역시 영어란 놈 때문에 골머리 꽤나 썩혔던 기억이 되살아 난 때문이다. 지금도 영어를 대단히 고급지게 한다고는 감히 말하기 어려우나 어지간한 의사소통에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수준 정도는 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영어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환경에 내던져진 덕분이다. 그땐 영어가 생존 도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바보 취급을 당하고, 말 한마디 못하고 눈을 피하거나 실실 웃기만 하는 멍청이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치열하게 생존 영어를 익혀야 했다.
덕분에 자칭 ‘무대뽀 영어’에 익숙해졌다. ‘무대뽀 영어’의 지상과제는 ‘소통’이다.
소통은 완벽한 문법이나 고급스러운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긴 영어 문장을 폼 나게 주저리주저리 얘기하지 못한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손짓 발짓을 모두 사용하는 바디랭귀지도 좋고, 단어 몇 개를 어겨붙여서 대화를 끌어가도 괜찮다. 짧고 명료한 표현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의사전달을 했다면 이미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핵심은
‘상대방이 뭔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언어 전문가가 아니다. 또 대단한 내공을 갖춘 어학 고수와도 거리가 한참 멀다.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문법이나 읽기, 쓰기를 바탕으로 한 영어 과정을 충실히(솔직히 고백하자면 재미를 느끼지도, 충실하지도 못했다) 거쳤다. 노랑머리 외국인들 앞에 세워 두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지극히 평범하던 내가 영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군 제대 후 미국 유학을 준비할 때부터다. 약 1년 동안,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24시간을 영어에만 올인하며 지냈던 시간. 그 결과로 손에 쥔 토익, 토플 점수와 입학허가서를 들고 희망과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으로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었다.
그러나 전력을 다한 나의 노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산산조각이 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광고학 (Advertising) 수업. 첫 수업 3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강의 시간 내내 귀에 들리는 말이라고는 몇 개의 단어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지나가 그 단어가 맞나 싶어 긴가민가한 정도? 그때의 참담함이란……
우여곡절 끝에 뉴욕으로 옮겨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도 영어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큰 콤플렉스였다.
그렇게 고민하던 영어에 죽을 둥 살 둥 매달린 지 1년 정도가 더 지난 어느 순간이었다. 그 계기는 나도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작해야 짧은 문장이나 단어를 활용한 간단한 대화 정도만 근근이 귀에 걸리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번개에 맞은 듯 상대방의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 그 짜릿함이란…… 귀가 열리니 자연스럽게 입도 조금씩 반응을 했다. 비록 단어나 문장 구사 수준이라 해 봤자 보잘것 없었지만, 그래도 이 경험은 나의 영어학습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그리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또 직장에 다닐때나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할 때도 영어는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항상 고민거리였다. 물론 지금까지도 만만치 않은 넘사벽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도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오랜 시간, 영어때문에 많은 고민을 해 왔고, 영어 학습을 위해 나름 좌충우돌 했던 경험담에서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크게 네 가지 사안에 포인트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어학이란 소통이 목적이다’.
그러자면 상대방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려면 먼저 귀가 열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귀가 열리면 입도 자연스럽게 터지는 법’이다.
문법과 단어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고, 토익이나 토플 점수가 남부럽지 않다고 해도 실제 상황에 부닥치면 식은땀을 흘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방팔방으로 정신없이 흩어지는 단어를 쫓아다니다 보면 ‘이 인간이 도대체 뭐라는 거지?’ 그러면서 서서히 멘붕이 온다. 한번 당황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대책이 안 선다.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이다. 사실 외국인들이 속사포처럼 쏘아 대는 말을 완벽히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상대가 표준 영어로 천천히 말해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만 해도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 각 지역마다 영어 구사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특별히 규정하지는 않는다지만 그래도 표준에 가깝다는 오하이오주(OHIO STATE)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과 동부나 서부, 남부 지역은 영어 구사 방식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는 속도나 강약, 억양, 어감, 슬랭 등등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서 알아듣기가 대단히 어렵다.
더군다나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들이나 병행하는 나라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더 난감한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 종종 여러 나라에서 걸려오는 고객이나 에이전트들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중 인도나 중동 쪽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편인데, 말은 빨리 하는데 반해 특유의 억양(intonation) 때문에 가끔 되묻는 경우가 있다. 또 일본, 중국, 태국 같은 아시아권에서 걸려 오는 전화는 단어나 문장 구사력이 아무래도 좀 서툰 경향이 있어 지레짐작으로 확인해서 말하기도 한다. 미주나 유럽 쪽 정통 영어 구사파들은 그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다. 뭐, 자기 나라 말이니 당연하겠지.
내가 생각하는 귀를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은‘생활화’가 아닐까 한다. 영어권에 가서 살 수 있다면 당연히 발전 속도가 빠르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눈과 귀를 해당 언어와 최대한 가까이하는 것이다. 어학원이나 인터넷, 전화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외국인과 자주 대화하는 환경과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다. 또 예전에 영어테이프나 CD를 주로 활용했듯이, 핸드폰이나 노트북 등으로 수시로 TED나 미드, 유튜브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거나 영어 라디오 방송과 친해지는 것도 권장할 만한 방법이다.
둘째,
‘영어를 대하는 자세 또는 태도다.'
어학을 배우는 사람들 중 가장 습득이 빠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 똑똑한 사람? 당근이다.
-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을 테니 말이다.
-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잘 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좋아한다고 해서 다 잘하는 건 아니니까. 또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잘 해야 하는 것이 영어 아니던가?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등장하겠지만 내가 첫 손에 꼽는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이다.
일명, 약간 ‘무대뽀 기질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상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대충 알아 들었고, 이제 내가 말을 해야 할 순서가 되었다면 과감해야 한다. 어학원이나 외국에 나가보면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쉽게 보게 된다. 당연하다. 나름 머릿속에는 단어랑 문장이 오락가락하는데 도무지 입은 열릴 줄을 모른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으면 화제는 이미 다음으로 넘어가 있다. ‘아~ 난 오늘도 한마디도 못했다~!!ㅠㅠ’
그런데 단어나 문법 실력은 별 볼일 없는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문법도 개판이고, 주어, 형용사, 술어를 제멋대로 이어다 붙인다. 과장된 바디랭귀지는 덤이다. 신기한 것은 이런데도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타인의 눈길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어 실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있다. 물론 제대로 노력을 해야 한다. 아니면 영어실력이 그냥 개판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 기회가 되면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
셋째,
‘어떠한 사람의 지식도 그 사람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은 없다’고 했듯이 어학에서도 다양한 실전 경험이 필수다.
여기서 실전이라 함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의 경험이다. 살아서 팔딱거리는 경험 말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던가? 학교는 그야말로 기초를 익히는 곳이다.
기본 소양과 지식을 배우고, 직장이나 사회로 나가면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교 ESL 코스나 학원에서 배운 영어 지식과 길거리 영어는 또 다르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과 경험이다. 어떤 순간에도 임기응변으로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을 때, 비로소 여정의 한 고개를 넘어서게 되는 것임을 명심하자.
넷째,
'자신의 수준에 맞는 목표를 정하라. 그리고 단계를 밟아 나아가라.'
영어를 사용하다 보면 한계 상황에 부딪칠 때가 종종 있다. 어느 순간은 좀 잘 된다 싶다가도 더 이상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정체 단계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학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근육 기억’이 생겨야 레벨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근육 기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가꾸고 단련해야 제대로 작동을 한다.
나의 경우를 잠시 예를 들면, 어렵게 한고비를 넘고 나니 또 다른 큰 벽이 앞에 서있었다. 그래서 다시 그 벽을 넘기 위해 훨씬 더 노력을 해야 했다. 이는 영어 구사 수준에 다양한 단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걸음마 단계도 있고, 초급, 중급……. 초일류 전문가의 단계까지 마치 피라미드처럼 까마득하다.
사람들마다 수준이나 환경에 따라 방법이나 결과가 다를 수 있다지만, 결코 피해가지 못하는 한 가지 기준은 영어와 같은 어학을 익히는 데는 결코 왕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계단을 밟아 나가듯 차근차근 단계별로 올라가야 한다. 물론 엄청 잘하면 좋겠지만 내 기본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애꿏은 남 탓 할 게 아니다. 좋은 방법을 찾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된다.
지금부터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네이티브처럼 유창하게 고급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또 어떤 분야의 대가처럼 전문 용어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대화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다만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생활,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어울리는 수준을 목표로 잡고 그 수준에 이르고, 또 유지하기 위해 애쓸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필요한 영어 수준을 목표로 잡고, 그 목표를 위해 매진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