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관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공원 Jul 24. 2017

협상 테이블을 장악하는  힘

가치 창출 능력이 있는가?

“This is your last chance. So, please offer your best shot.”


최종 견적가 네고 문제로 방문했던 회사에서 주관 발주처인 이탈리아 회사 책임자가 회의 시작 무렵 우리쪽에게 던진 말이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 협상이 그리 쉽사리 결론지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서늘함과 팽팽한 긴장감이 함께 전해져 왔다.


미국의 석유화학공장 프로젝트에 우리가 공급하는 제품의 최종 가격 협상을 위해 방문한 곳은 중국 북경에 있는 중국 S 엔지니어링사 본사였다. 그 미팅에서 이탈리아 발주처와 중국 엔지니어링사의 대표들은 초반부터 마지막 기회 (last chance)를 언급하며 기선제압에 나서려 했던 것이다. 명함을 교환하고 밝게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누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은 상대를 스캐닝하고 분석하느라 머릿속은 슈퍼 컴퓨터급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들의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고 캡처해서 데이터로 입력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물론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말이다. ‘이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렇다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서로를 탐색하고 분석하는 팽팽한 신경전으로 회의실 공기는 차갑게 내려앉았다.


긴장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사전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나의 카드는 중국어였다. 어설픈 중국어 몇 마디와 회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상적인 화제(이번의 경우는 축구와 한국 드라마, 그리고 음식이었다)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내면 회의실의 공기가 한층 부드러워진다.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도 시의 적절한 농담이나 웃음 코드 하나로 현저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조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전환되어 회의가 진행되면서 다른 조건에서는 원만한 협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역시 결정적인 부분, 가격 인하의 폭에서 서로의 의견이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었다. 예상하고 있던 바다. 결국 치열한 진통 끝에 애초에 언급했던 마지막 기회(last chance)를 얼마간 뒤로 물리는 것으로 최종 합의를 보았다. 결국 last란 실제로 끝이 나야 last인 것이다. 먼 곳까지 와서 결론을 짓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무조건 그들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상대방의 의도와 마지노선을 충분히 파악한 후 마지막 오퍼를 넣을 수 있는 추가 기회와 시간을 확보했다는데 위안을 얻어야 했다.



조직의 직책상 누군가와 협상을 해야 할 때가 수시로 발생한다. 그중에는 회사 운영이나 제품 제작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나 원자재 비용을 산출하고 집행하는 구매업무가 있다. 품질과 납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격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다양한 업체들과 동시다발적으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최상의 조건을 뽑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밀당은 상당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동반되는 일이다. 우선 우리 쪽 요구사항과 그에 따른 몇 개의 업체 견적을 세심하게 비교 분석한 후 핵심 포인트를 잡아낸다. 처음 거래하는 업체라면 상대방 회사나 담당자에 대한 정보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은 밀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처음 몇 마디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다 보면 대충은 감이 온다. 주로 전화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 무심하게 툭 툭 던지듯 내뱉는 말도 실상은 레이더를 곤두세운 채 서로 간을 보고 있는 단계다. 그러다 어느 지점쯤에서 서서히 드리블을 시작한다. 바로 그 지점이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는 꼭짓점이다. 협상 상대나 조건,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른 전략이 적재적소에 활용되어야 한다. 정공법이 사용될 경우도 있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때도 있다. 분명 스릴감이 있지만 참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한번 거래로 끝이 날 관계가 아니라면 매번 너무 몰아쳐서도 안되고 매번 양보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설령 양보를 하는 경우라도 항상 다른 조건이나 다음 기회를 상대방에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서로의 카드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른바 윈윈 전략이다.


또 가끔은 무대뽀 스타일답게 초반부터 막무가내로 우겨대기도 한다. 아예 목표 타깃을 정해놓고 처음부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다. 하지만 이때도 밑도 끝도 없이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비교 근거나 대안을 최대한 준비해 놓고 움직인다. 그래야만 목표에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가끔은 부수적인 조건 부분에서 뜻밖의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런데 소위 이 무대뽀 협상방법은 너무 자주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나의 경우는 아주 가끔씩, 예를 들어 발주 금액이 상당히 크다거나 경쟁 심리를 활용하고자 할 경우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곤 한다. 평소에 되로 주고 결정적일 순간 말로 받는 방식이다. 물론 정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판 자체가 깨지면 안 되니까 말이다. 이러한 무대뽀 협상법이 통하려면 평소에 쌓아둔 인간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 지나치게 업무적으로만 접근하고 일방의 이익만 따지고 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평소에 감성, 즉 인간적인 면을 먼저 다독이고 담당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두면 뜻하지 않는 상황에서 도움을 얻을 때가 종종 있다. 결국 이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은 협상의 연속이며 협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아니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누구나 협상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태아가 엄마의 배를 차는 행동이나 엄마 젖을 달라고 보채는 아기들의 행동도 바로 원초적인 협상 행위인 것이다. 하나둘 나이를 먹고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끊임없이 선택과 결정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협상을 통해 좋은 대안을 제시받거나 선택권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설령 배트나(BATNA)나 조파(ZOPA),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와 같은 협상과 관련된 전문용어를 알지 못한다 해도 한평생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 (물론 용어를 알고 실제로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혀 한층 업그레이드된 협상력은 행복한 삶을 위한 윤활유 역할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디팩 멜 호트라와 맥스 베이저먼은 ‘협상 천재(NEGOTIATION GENIUS)’라는 책에서

'협상 테이블을 장악하는 영향력의 힘은 결국 서로에게 가치를 창출해줄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고 했다. 


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아이디어를 납득시키고, 주저하는 상대방을 설득하고, 확신을 심어주는 능력도 필요하다. 협상력이란 평생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과제이며 개인과 조직, 사회의 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협상력과 관련된 책에서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협상 용어들을 열거해 보았다.


1.    바트나 (BATNA,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 최선의 대안. 즉 현재의 협상이 실패하는 경우, 예컨대 파국으로 끝나는 경우 협상자가 따라야 할 행동지침


2.    유보 가치 (Reservation Value): 협상자가 협상을 중단하는 지점. 만일 상대방이 제시한 가치가 협상자의 유보 가치와 같다면, 해당 협상자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과 최종 대안을 추구하기 위해 그것을 거절하는 것 사이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다.


3.    조파 (ZOPA, Zone of Possible Agreement): 합의 가능 지대. 협상에서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가능 한결과의 집합을 뜻한다. 예컨대 가격이라는 한 가지 문제를 놓고 벌이는 협상에서 조파는 판매자의 유보 가치와 구매자의 유보 가치 사이의 구역이 된다.


4.    우발 사건 약정 (contingency contract): 미래에 특수한 불확실성의 원인이 해결될 때까지 특정 거래 요소를 미정으로 두는 합의 조항. 그러한 조항으로 인해 협상의 양측은 미래에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에 관한 그들의 서로 다른 믿음을 놓고 ‘내기를 걸’ 수 있다.


5.    준거지표 (reference point):  두드러진 비교 자료. 준거 지표 (기준점)는 특정 쟁점이나 제안의 가치와 관련해 협상자가 내리는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    기준선 (anchor): 최초의 제안으로 제시하는 숫자로서, 상대 협상자의 주의와 기대치를 집중시키며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7.    조건부 양보 (contingent concessions): 협상에서 상대방의 특정 행위에 따라 성립되는 양보로서, 상대방이 그들의 의무를 다할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백히 하기 위해 보상 방식으로 표현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좌충우돌 영어 학습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