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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Dec 14. 2019

2:8의 법칙과 등급 리스트

나는 과연 몇 등급일까?

미국 대학원생들은 학위를 받기 위해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진학을 결정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회생활을 경험하다 문을 두드린 경우가 많다. 은행 대출을 받거나 사회에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입학을 하는 상황이라 목적의식도 뚜렷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병행하는 학생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학생들의 학부 전공이 무지개처럼 다종 다양해서 그 융합과 창조의 끝이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미국 대학원 시절, 동기들 중에 미 주류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 여성 CEO가 있었다. 행동이나 말투 하나하나가 거침이 없고 자신감 뿜뿜인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여러 나라 출신들이 뒤섞여 있는 동기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게다가 한국 후배들까지 잘 아우르는 누나여서 개인적으로도 호감이 많았고, 잘 따랐다. 좀 친해지고 나서는 미국 생활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해주는 것도 좋았다. 가끔 뜻밖의 말로 놀라움을 주기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은 사람을 만날 때 등급을 매긴다”였다. A, B, C…… 실제로 보여준 그녀의 핸드폰과 수첩에는 등급별로 분류된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빽빽했다. 마치 고기 품질 등급 매기는 듯한 그 모습에 기분이 좀 묘했다. 문득 ‘그렇다면 난 과연 몇 등급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긴 CEO로서 수많은 고객과 임직원을 상대해야 하니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듯도 싶었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사실 중 하나가 일명 파레토 법칙이라 불리는 ‘2:8의 법칙은 상당히 정확하다’이다. ‘고객의 약 20% 정도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회사의 매출 분석 결과, 어느 해는 18% 고객이 전체 매출의 93% 가까이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거나, ‘약 20%의 엘리트 직원들이 전체 매출의 80%를 이끌고’, ‘성과의 80%는 근무시간 중 집중력을 발휘한 20%의 시간에 이뤄진다’ 도 이 법칙에 해당한다. 또 ‘통화한 사람 중 20%와의 통화시간이 총 통화시간의 80%를 차지한다’ 거나 ‘20%의 운전자가 전체 교통위반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도서 매출액의 80%는 20%의 베스트셀러가 차지한다’, ‘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른다’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이 법칙을 근거로 인맥관리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정말 중요한 사람은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너무나 자주 그 사실을 망각하고 필요 이상으로 걱정한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0%는 뭘까? 그리고 주변 사람들 중에 20%는 누구일까? 만약 내 인맥에다 2:8 관리 기능을 대입한다면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철저히 비즈니스 관계, 이 사람은 술친구 관계, 이 사람은 꼭 필요한 관계, 이 사람은 있으나마나 한 그냥 그런 관계, 더도 덜도 말고 그렇게 관계를 유지 관리할 수 있다면 머리가 좀 덜 아프려나?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는가에 따라 성공을 판단하는 사회는 피곤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마음 한 켠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불안함과 의문점의 존재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해 보인다. 우리의 1순위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그러니 내 행복의 80%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20%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집중력을 발휘해 봄이 어떠할까? 어쩌면 자기계발 방법도 나에게 잘 맞는 20%의 방식이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학원 선배의 등급 리스트를 본 날, 내가 몇 등급이 되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궁금하긴 하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몇 등급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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