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장 큰 특별함, 세쌍둥이를 만나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질 들뢰즈는 세상에 무엇도 완전히 동일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차이 자체’를 품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겉에서 보기에 동일해 보일지라도 존재를 파고들면 절대로 동일한 것이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르면 동일성의 원리로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입니다.
이것이 ‘아주 개인적인 글’이 흥미로운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아주 개인적인 그 사람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나와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다시 동질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나와는 다른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럴 수도 있겠다'라거나 '사람 사는 거 비슷하다'같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동일시의 과정인데도 위로와 응원을 얻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합니다. 어쩌면 글 읽기의 과정에서 동일시는 내가 타자에게 타자가 나에게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어내는 나'를 통해 비폭력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글로 읽는 동일시는 말하고 듣는 동일시의 과정보다 훨씬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저는 사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글에서 나를 드러내기 겁내는 초보 작가 지망생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용기를 내어 짧은 글 속에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혼인 연령이 사회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시대, 저도 또한 평균적인 나이로 수치상으론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했습니다. 젊음을 최대한 즐겼고,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는 솔로 생활을 청산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 것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임신을 원하는 기혼 여성이 되어보니, 아직은 한창이다 생각했던 내 30대 나이는 아이를 갖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시한부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신혼 2년을 자연임신을 지속적으로 시도했으나 결국 임신 테스트기로 두 줄을 보지 못한 우리 부부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난임병원 진료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난임치료를 받으며 체력적인 이유로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원 구성원과의 유대감이 높고 근무 분위기나 환경이 굉장히 좋았기에 휴직에 들어가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구성원들과의 이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휴직에 들어가며 원 구성원들에게 작은 구움 과자 선물과 함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둘이 되어 다시 돌아올게요.”
난임 휴직에 들어간다고 하자 다들 응원해 주고 빠른 결실을 기대한다고 응원을 보냈던 동료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동료교사 한 분은 제게 “선생님은 쌍둥이 가질 거 같아. 왠지 그런 느낌이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는 그 농담 섞인 응원을 “그럴까요? 쌍둥이도 나쁘지 않네요! 응원 감사해요!”라고 가볍게 넘겼었습니다. 그리고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선생님의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저는 넷이 되었고, 언제 돌아갈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뱃속에 세 명의 아기천사가 한꺼번에 찾아올 줄이야. 그런 건 티브이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