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91 - '가장'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휴대폰 통신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랜 병원생활을 버티고 살다보니 내게도 생겼다.

3G(쓰리 '지')! - ‘지겹고, 지루하고, 지치고...’


하루, 한 해, 십년, 질기게 물고 발목잡는 불행과

안 잡히려 발목빼는 생존게임, 그러다 밀려오는 쓰리 '지' 감정.

그러다 가끔 섬찟해진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남들 앞에서 긍정과 감사로 포장하는 겉모습과,

혼자 있을 때, 내 속을 향해 해대는 불신과 한탄의 이중 모습.


사람들은 내 겉만 보고는 말한다.

'어떻게 그리 쪽박까지 깨지도록 망해도 웃고 죽지않고 사느냐고!'

모르고 하는 말들이다.

돌 위에 돌 하나도 없게 망했다던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벽처럼

다 무너지고 너덜해진 내 속의 또 다른 모습은 보지 못해 그런다.


영상 하나가 스친다.

잘나가던 직장에서 해고되어 남이 먹는 거나 구경하는 사내.

그가 어쩌다 공원 풀밭에서 소지품 들고 노숙하게 되었다.

추워 웅크리는데 누군가 종이박스를 이불이라고 넘겨준다.

이전에 그가 잘나갈 때 음료수를 마신 후 깡통 버리면

곁에서 바라보다 주워가던 폐품수집 아저씨다.


"아침 되면 더 추워, 이거 덮어!"

"당신 여기서 얼어 죽으면 다른 노숙자들이 골치 아파져!"


감사하려는 남자에게 뒤통수 때리는 말 한마디가 서글프다.

고맙다고 느꼈던 배려의 동기가 처참하다.

그런데 금새 따뜻해지고 몸이 녹는다.

드라마 '프라이스리스' 1편에 나오는 장면이다.


도움의 이유가 무엇이던지,

건네는 손이 퉁명하던지 자상하던지 상관없이도 때로는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다.

생존은 그런 것이고, 한 얼굴로 버티고 살기에는 세상이 좀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살아야하기 때문에...,

그것도 한명도 아닌 여러 목숨이 걸린 패밀리가 살아남아야 했기에,

나는 그 패밀리의 가장이었다. 빼도 박도 못하고 맘대로 포기도 못하는.


가장 –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웃음 짓고 따뜻해야 한다. 가족 앞에서 여러 얼굴로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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