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92 - '복구'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사는 게 왜 이리 지겨워..."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날은 머무르는 병동의 화장실 두 곳이 비데가 다 고장이나버렸다.

하나는 아예 고칠 생각이 없는지 철거해버렸다.

환자인 아내는 대장이 마비되어 비데의 도움이 없으면 변을 못 보는데....


위층으로 갔더니 세면장의 호스가 갈라져서 휠체어를 탄 아내의 신발로 물이 줄줄 흐른다.

밖에서는 빨리 나오라고 누군가 연신 두드리고 독촉을 하고,

나는 일주일이 넘도록 떨어지지 않는 기침 감기로 녹초가 된 몸이 자꾸 짜증만 나고 화가 솟구쳤다.


... 이런 날은 이래서 자꾸 아래로 아래로 침몰한다.

‘좋은 게 좋은 거’ 라든지, ‘시끄럽게 하면 뭐가 좋으냐?’ 등

조용한 게 평화다! 뭐 그런 자기변명을 덧붙여 가며 참다보면 더 우울해진다.


슬슬 지겹다.

왜 이러고도 살아야하는지,

무엇이 이 지겨운 생명연장을 노래처럼 흥겹고 꽃처럼 향기 나게 바꾸어 줄 수 있을까?

그러지 않으면 살아도 이게 지옥이지 따로 죽어서 갈 지옥이 있나 싶다.


이럴 때는 대단한 반전의 기적보다 좌절의 가속도를 줄여 줄 작은 동기가 필요하다.

날아가는 화살을 그저 톡 쳐서 방향을 바꾸어 씨익 한 번 웃을 수 있는 뭐 그런 반전의 작은 계기?


‘드르륵!’ 전화 진동이 울린다. ‘누구지?’ 들여다보니 딸래미다.


“응,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여기 참고서 사러 서점에 왔어, 책값도 좀 줘, 밥값도 좀, 나 아직 점심도 못 먹었어...”

“나 못 간다. 시간도 촉박하고, 돈은 통장으로 보내 줄께...”

“나 사진 찍은 거 줄려고 했는데, 친구랑 이미지 사진!”

“그래? 그럼 금방 나갈께! 좀 있다 보자~”


가장 좋아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 된다는 걸 이미 아는 막내 딸이 사진으로 발목을 잡는다.

내가 늘 아이 사진을 보며 행복해 하는 걸 알고 수시로 써먹는다. 뭐 그것도 나의 비타민이니까.


복구 – 살다보면 싱싱한 삶의 이파리를구멍 내는 벌레도 있고 그걸 메워주는 가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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