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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Mar 06. 2019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




누가 만들었을까? ‘긴 병에는 장사도 효자도 없다!’는 말... 혹시 긴 간병에 지친 보호자나 가족이 스스로 만들어서 유포시킨 것은 아닐까? 자신을 위로하고 비난을 덜 받기 위해서. 내가 오랜 세월을 아내를 간병하다보니 그 힘들고 지친 마음이 그냥 와 닿는 정도가 아니라 파고드는 공감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이 넘어가고 또 한 해, 또 한 해... 그러니 찾아오고 물어봐주고 들어주고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이해하고 때론 미안해서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하거나 안부도 물어보기 주저하게 됩니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움츠리는 동안 형제도 친척도 여러 인연으로 만나서 오래 알고 지내던 이들이 하나 둘 멀어졌습니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내가 죽으면 연락은 해야 하나 마나 애매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멀어지고 못 만나게 되는 사이가 두려워 정말 계속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우리 형편을 가능한 꺼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픈 이야기, 돈 들어가는 이야기, 괴로운 심정 등등. 그저 일상적이고 자녀들 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나 하면서 슬슬 회피합니다. 의식적으로. 나를 무거워하고 부담스러워 할까봐 무척 조심하는 게 습관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마냥 모두에게 그렇게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벽을 넘어서 좀 틈이 보이는 사람, 어쩌면 착하고 희생제물이 될 만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쏟아놓듯 해소합니다. 나도 말은 해야 하고 속이 한계점에 도달해 터져죽으면 안되니까 살자고... 미안하지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 상대가 되어주는 몇 안 되는 분들에게는.

(참고로 하나님에게는 하나도 안 미안합니다. 더 심하게 퍼붓고 따지고 때론 원망도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감수해야 합니다. 이유는 딱 꼬집어 명쾌하게 설명할 지식이 없지만 그래도 될 거 같아서요. 제게 이렇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은 당해도 될 거 같아서요.)

가끔은 그렇게 조절을 하고 듣고 보는 분들에 맞춰서 살다가 피로가 훅 몰려옵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꿉니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나는 얼마나 오래 견딜 건데? 스스로 물어보면 답이 나옵니다. 별로 자신이 없어져서...

그래도 보고 싶습니다. 아주 오래 만남을 유지해왔는데 지금은 거의 보지도 연락도 안하고 지내는 몇 분들이 많이. 그저 커피나 맛있는 빵 한두 개 놓고 일상적인 안부도 주고받고, 살다가 느낀 경험도 공감하며 낄낄 박수치고 웃기도하는 그런 시간이 그립습니다. 불행은 나만 힘들게 만들지 않고 내 친구들도 내게서 멀어지도록 불편을 주고 우리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래서 불행일까요?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태복음 19장30절] 늦게 예수님과 진리를 받아들였지만 죽기까지 변치 않아서 오히려 먼저 구원 받아서 천국에는 먼저 입성하고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된다는 비유입니다.

나에게도 늦게 만났지만 정말 소중한 사이가 된 사람들 몇이 있습니다. 수십 년 된 지인들은 떠난 자리를 불행해진 이후에 만난 그들이 메워주고 때론 더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아내가 아픈 이후로 모래땅 같고 흉년 같이 삭막해진 이 삶을 어찌 유지하고 버텼을지 돌아보면 아찔하고 난감합니다. 참으로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예수님은 또 말했습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다가 졸고 기름이 떨어져서 신랑을 놓치고 만나지도 못하며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비유를. 결정적으로 마음 아프면서도 제가 깊이 존경하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극심한 육체의 고통과, 결코 그보다 못하지 않은 외로움으로 십자가에서 죽어갈 때, 숱한 남정네들이 다 도망갔지만 가장 가까이서 지키고 무덤까지 찾아간 것은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한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너무 슬픈 그림입니다.

제게도 그 여인들 같은 참 마음으로 다가오고 머물러 주고 있는 친구들이 그래서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끝까지 남아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은 진짜 친구가 맞습니다. 내가 하기에 달려있기는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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