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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Mar 26. 2019

‘우리가 낮아졌을 때 기억하신 분께 감사하라’

다시 돌아보는 불행속 그때 그 말씀들 5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들어갈 때 사갈게!”

“괜찮아요. 고단해서 졸릴 텐데 그냥 조심해서 잘 오기나 하세요!”  


설 연휴에서 열흘 남짓 더 지난 어느 날, 둘째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피곤한 상태로 운전할 나를 걱정해주었습니다. "고맙다 아들아, 이렇게 많은 짐을 네게 줄지는 몰랐구나. 예전에는 아버지로 경험이 부족해서 잘해주지 못하는 부모였고, 이제는 알 만한 나이가 되니 형편이 안 되는구나."


변이 막혀 버린 아내에게 먹일 오렌지를 사러 강릉 농수산물시장을 들러 기도원으로 돌아오는 길. 일부러 코스를 바닷가로 잡았습니다. 작은 지방도로 가파른 언덕과 내리막길을 돌고 돌면서 천천히 달렸습니다. 이 길의 이름이 '헌화로' 입니다. 정동진에서 옥계로 가는 해안도로 초입 부분.


좀 지나서 깊은 골짜기에 어울리는 작은 어촌이 나왔습니다. 이름조차 '심곡'마을, 한쪽은 절벽과 같은 육지, 한쪽은 푸르다 못해 짙은 바다가 비장함을 풍기는 풍경, 겨울바다의 파도가 낮은 해안도로의 아스팔트로 물을 튕기는 곳도 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낚시를 하는지 구경을 하는지 눈에 뜨입니다.


‘베르디의 아내도 혹 긴 병을 앓았던 것일까?’




▲ 눈물 쏟은 옥계 바닷가 길. 정동진에서 옥계까지 가는 바닷가 도로를 남들은 낚시나 관광하는데 나는 장을 봐서 오다가 차를 한구석에 세우고 울고 지났습니다. 소리는 파도에 묻히고 마음은 절벽에 막히고...


무심코 듣다가 알았습니다. 아까부터 반복되는 차 오디오의 합창이 점점 가슴으로 파고든다는 것을. 때론 소리도 보이지 않는 비수처럼 찌른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석양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고 바빌론 강둑을 걷는 지친 노동자들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 울음 가득 담겼지만 결코 촐싹거리지 않는 묵은 슬픔…. 400년 긴 포로생활과 노역에 지친 민족, 언젠가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과 메시지를 자손에게 대를 물리면서 새기고 새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자꾸만 어른거렸습니다.


[내 마음아. 황금의 날개로/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과/ 향기로운 나의 옛 고향/ 요단강의 푸르른 언덕과/ 시온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오 빼앗긴 위대한 내 조국/ 오 가슴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천사의 하프소리/ 지금은 어찌하여 잠잠한가/ 새로워라 그 옛날의 추억/ 지나간 옛 일을 말해주오/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굳건한 용기를 주리라]


얼마나 그립고 사무쳤을까요? 온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푸른 언덕에서 신께 경배하며 찬양하고 함께 음식을 먹던 시절이! 또 얼마나 고대하고 손꼽아 기다릴까요? 고통과 슬픔이 물러가고 새 기쁨과 노래가 시작될 그 어느 날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해안도로의 난간이 없다면 바다 위를 가로질러 수평선으로 무한히 가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누르며 듣고 또 들었습니다. 베르디는 무슨 고난과 슬픔을 지독히 겪었기에 <나부코>라는 오페라 속에 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같은 묵직한 합창을 담을 수 있었을까요? 지독히 가슴 저리는 긴 여운의 노래를 말입니다. 혹 그의 아내도 긴 병을 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별 추측이 다 들었습니다.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굳건한 용기를 주리라"


돌아오기 싫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산속 기도원의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차를 숙소 앞에 세우고, 오렌지 한 박스를 들고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이걸 다 먹으면 장운동이 좀 나아져서 변을 쑥 보게 하소서! 아멘!' 물건에도 기도하는 습관이 생긴 지 한참 된 내가 우스워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반기는 건 건강한 아내가 아니고, 내가 아무리 싫어도 도망도 못 가고, 뒤돌아 눕지도 못하며 천장만 보고 있어야 하는 사지마비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서 아내는 호흡이 자꾸 거칠어지더니 위험해보여서 결국은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잘못하면 오늘 밤도 넘길 수 없을 만큼 힘들어 보인다는 기도원 원장님과 여러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밤길을 긴급으로 달려서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틀지도 않은 노랫소리가 자꾸 귀에 들려왔습니다. 환청처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굳건한 용기를 주리라]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포기하고 서울로 가라고 퇴짜를 놓은 그 날, 다시 기도원으로 돌아와 그냥 죽자고 보낸 사흘 동안 폐 한쪽이 죽어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과, 그날이 4번째 온 희귀난치병의 재발이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시도하는 사람만이 환경과 운명이 흔들어도 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 냅니다. 그렇게 홀로 서는 법을 배운 사람은 반드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눔과 사랑을 부작용 없이 베풀며 삽니다. 고난 속에서도 뜨거운 온기로 안아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늘 고통의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곁에서 같이 버팁니다.


가는 길이 어둡고 잘 보이지 않을 때, 혹은 지고 가는 짐이 너무 무거울 때, 고향과 집에서 멀어진 객지생활 같은 슬픔이 밀려오면 늘 떠올리는 성경이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수백 년을 외우고 노래로 부른 시편 23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낮아졌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 시편 139편 23절]  

사람들은 처지가 낮아진 사람, 나라, 민족을 멀리합니다. 세상의 인심과 세상의 흐름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낮아지면 머리카락보다 더욱 기억합니다. 아니 낮아져서 고통 의 신음을 지를 때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여러 이유로 고난에 마주치고 낮아졌을 때 어쩌면 가장 큰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가장 큰 행복의 순간을 지나는 중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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