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 내 것이고 낮도 내 것입니다

by 희망으로 김재식


“운동 다녀오나봐요?”
“예! 옥상 몇바퀴 돌고 왔어요”
“에구... 좋겠수, 난 이놈의 다리가 말을 안듣고 얼마나 아픈지 겁나서 못해요!”
“그래도 안 움직이면 더 아프고 오래 간다니 조금씩이라도 하셔요.”
그 말에 워커를 끌며 걷는 아주머니가 확 말을 던집니다.
“내가 그 쪽 만큼만 다리가 성하면 왜 안하겠어요?
시간이 가도 표도 안나고, 밤마다 통증은 심하지, 안 나으려면 콱 죽어 버리던지!”
그동안 아프면서 쌓인 스트레스와 부러워하던 심사가 그렇게 불평처럼 쏟아졌습니다.
“난 멀쩡해보이지요? 난 아줌마가 부럽다고요.
내 머리속에는 빨간폭탄이 들어있는데 꺼내지도 못하고 여차하면 터질까봐 늘 겁나요.
차라리 팔이나 다리 하나 짤라버리고도 죽을 걱정없이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어요.
내가 아줌마 그런 병이라면 감사하겠네요!”
뇌속이 부어 터질지도 모르는 병을 가지고 수술도 안되어 고통중인 분이 그랬습니다.
겉으로 멀쩡해보이는게 다가 아닌 사실을 너무 자주 보고 사는 나로서는 압니다.
한 번씩 더 주고 받다가는 필시 싸움이 되고 둘 다 상처를 후벼파이는 패자가 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그랬습니다.
‘우리는 걷는건 고사하고 앉지도 못하고 남은 시간 보장은 고사하고 죽어가는 중인데...
그것도 당신들처럼 한 두 해도 아니고 십년이 넘도록 병원에 살고 있다고요!’
하지만 그런 도토리 키를 재는 미련한 경쟁이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ㅠ

병원에서 흔히 보는 풍경 중 하나가 그런 관계입니다.
이 사람은 저 사람을 부러워하고 저 사람은 오히려 이 사람을 부러워하는 모순.
다들 내게는 없는 부분이 남들이 가진 걸 보면서 부러워 합니다.
그러나 알까요? 남이 나의 희망이고 소원의 모델인데
정작 그 당사자들은 이쪽을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걸.
알고보면 둘 다 자신은 절망의 덩어리에 불안과 원망,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라는 걸.
과연 누가 나은 것이고 무엇이 정답일까요?

지난 밤에는 악몽을 꾸다가 새벽 3시에 잠을 깨고 아침이 밝아오기까지 뒤척였습니다.
나쁜 사람이 휘두르는 칼을 간신히 피하고 떨어뜨린 그 칼로 도리어 해쳤습니다.
그냥 도망을 쳤으면 좋았을 걸 그 사람이 가진 많은 금과 돈을 빼앗아 뛰었지요.
한참을 도망가다가 철렁 겁이 났습니다.
‘내가 왜 그랬지? 그냥 몸만 피해야 하는 건데 이제 저 사람이 죽도록 나를 쫓아 오겠네 에휴...’
정말 후회막심이었습니다. 평생을 맘졸이며 살피며 도망다녀야하는 짓을 저지른게.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 생생한 공포감과 두려움과 후회, 그것들이 전부 꿈이었다는 사실이!
그게 진짜 삶이었다면... 아마 내 일생은 지옥이 되었을 겁니다.
아침내내 그 생각에 안심하며 마음을 달래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진짜 생시에서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그걸 알면서도 대충 살다가 지옥가는 사람 무지 많다고 그럽디다만)

요 며칠 왜 내가 악몽을 꾸고 잠자리가 어수선해질까 돌아보았습니다.
아마도 지난 두어달 내 주변에 일어났던 슬프고 힘들었던 일들,
그리고 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몇가지 고단한 일정과 작고 큰 걱정거리들 때문같습니다.
난 괜찮다 스스로에게 말은 수십번 수백번 하면서도 마음속은 안그랬나봅니다.
그러다 남의 암보다 내 감기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법칙에 또 빠졌는지도 모릅니다.
다들 행복하고 잘지내고, 아무 걱정 근심도 없고 건강하게 지낸다고 보였나봅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서로를 부러워하고 자신을 좌절과 절망으로 몰아넣는 모순처럼
저도 종종 우울해지고 수렁에 빠집니다.
막상 터놓고 보면 별 차이도 없이 서로 비슷할지 모르는데도 말입니다.
또 한사람의 길만 본다해도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서 전체로는 공평할지도 모릅니다.

형편이 나빠지거나 심사가 안좋을 때는 밤이 오는 것이 무섭습니다.
그러나 밤은 기어이 옵니다. 그것도 하루에 한번씩 빠짐없이 평생을.
비록 밤이 길고 어둡고 외롭다고 낮에도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우울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정상적인 하루를 맞이하고 보낼 수 없으니까요.
우리가 통과할 수밖에 없는 일생이란 바로 그 밤과 낮이 교대로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둘을 차례로 지나가지않고는 절대 단 하루도 앞으로 나갈수 없는, 선택이 불가능한 길입니다.
그걸 인정할 때만이 낮은 낮대로 힘차게 살고 밤은 밤대로 휴식과 나름 유익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만남이 낮이고 이별이 밤 같기도 하고, 성공이 낮이고 실패가 밤 같기도 합니다.
서로 어울려서 신날 때가 낮같고 다들 돌아가고 홀로 지낼 때가 밤 같기도 합니다.
건강할 때가 낮 같고 병들 때가 밤 같기도 합니다. 부유할 때와 가난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둘이 모두 합하여 하루라는 생명의 날이 되고 창조가 완성됩니다.
밤 때문에 낮도 힘겨워지는 삶이 계속되면 우울증에 걸리며 짖눌려사는 불행에 빠집니다.
신앙인은 밤도 낮도 다 하나님이 주신 하루의 부분이며 다 유익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오늘도 가라앉는 밤을 넘기고 새 기운으로 하루를 추스리는 아침을 시작합니다.
나보다 우리보다 나아보이는 복을 누려보이는 분들도 어쩌면 나는 있는데 없을 수 있고
그분들에게는 없는 것이 내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의 희망이 나 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안그렇다 할지라도 누가 대신 견뎌주겠습니까? 이 반복의 시간들을,
혹시 진짜 내가 더 불리한 처지일지라도 누가 대신 살아주겠습니까?
이미 접어든 생명의 길에서...
그러니 밤도 나의 것이고 낮도 나의 것입니다.
흐린 날도 나의 것이고 맑은 날도 나의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나쁜 꿈 안되게 늘 도우시는 분,
주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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