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고난도 녹인다

by 희망으로 김재식


<사랑은 고난도 녹인다>

‘없는 집 밥이 남는다!’

나 어릴 때 어른들이 하시는 이 말씀을 종종 들었다.
가난한 집에 손님으로 오신 분들이 서로 덜 먹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다보니
오히려 밥이 남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밥이 무슨 지니가 부린 요술도 아니고 퍼도 퍼도 샘솟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요술이라면 서로를 먼저 챙기는 사랑의 마음이 부린 요술이다.
물론 예수님이 참석하셨던 오병이어의 그 자리는 진짜 밥이 샘솟았지만.
처음 제공된 음식보다 남은 것이 더 많았으니까!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보다 열배 백배는 더 지극하고 넘쳐서 그랬나보다.

전쟁이나 재난의 징조 앞에서 종종 이런 현상을 본다.
서로 불안한 마음에서 남들이 다 가져갈까봐 먼저 사다보니 생기는 현상.
이른바 사재기 현상. 평상시 소비량이면 모자라지 않을 물건들이
오히려 일찍 동이나버리고 꼭 필요한 사람, 가난한 사람은
생존에 당장 필요한 음식이나 생필품도 구하지 못해 고난을 당한다.
사랑이 너무 모자라 생기는 볼쌍사나운 요술이다.
나만, 나부터 챙기는 심리전에 휘말리면 꼼짝없이 몰아치는 사탄의 광풍.

어느 집에 딸이 둘 있었다.
먹는 욕심이 둘다 만만치 않아서 아버지가 뭘 사오면 늘 다투었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신경전 육탄전도 마다해 보기가 안좋았다.
어느 날 케이크를 사온 아버지는 둘을 불렀다.
“큰 아이야! 너에게 이 케익을 둘로 나눌 기회를 주마,
너 마음대로 나누어라.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자른 케익중 하나를 가질 선택은 너 동생에게 먼저 주는 거다!”
언니는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자기가 더 먹을 방법이 없었다.
한쪽을 크게 잘라놓으면 동생이 그걸 선택할게 너무 뻔했으니.
결국 똑같은 크기로 둘로 나누었다.
경제법칙에 나오는 균형이론을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한 이야기였다.

때론 사람들 사는 세상은 고귀한 사랑의 법칙보다
따분하고 무생물같은 경제의 법칙이 더 정의롭고 효율적일 때도 있다.
욕심과 이기적 심리를 바탕으로 한 슬픈 법칙들이라도.
조금은 인간적인 경제의 법칙을 하나 더 보자.
잃어버린 인간의 품위와 자부심을 그나마 조금 회복할 수 있는 이야기.

갑돌이와 을순이에게 게임의 법칙을 설명했다.
만원을 갑돌이에게 줄 것인데 그 만원을 갑돌이는 나누어야 한다.
을순이에게 주고 싶은 액수대로 주되 을순이가 수용하면 그대로 끝나고
만약 울순이가 거부하면 그 만원은 도로 회수하고 둘은 빈손으로 끝난다.
갑돌이는 고심끝에 4500원을 을순이에게 주었고 을순이도 오케이! 했다.
여러 시험대상들에게 시도한 통계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그런데 갑돌이가 욕심을 부려 2000원만 주고 자기가 8000원을 가진 경우
을순이는 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분해서 거절을 했다.
둘 다 십원도 못가져도 그러는 쪽이 오히려 좋겠다고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이 또한 그 선이 2000원 이하를 을순이에게 줄 때 일어나는 다수의 통계였다.
그 2000원이라도 받으면 이익이고 안받으면 손해인데도 그런 선택을 했다.
감정없이 숫자로만 보거나 욕심으로난 보면 이해가 안되는 반응이다.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면 비록 손해가 나도 거부를 하는 인간의 특성.
다행이랄까? 그나마 무생물 혹은 짐승과 다른 품위를 지키는 면이.
(이 설명은 이완배기자가 경제의속살 프로그램에서 말한 것을 인용했다)

지금은 병든 아내를 처음 만나서 데이트를 할 때 우리는 가난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돈이 모자라
밥은 라면 한그릇으로 나누어 먹기도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결혼 후 세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벌이가 모자라 빚이 앞서갈 때
나는 밤에 벌떡 일어나 잠을 못이루기도 했고 아내는 그걸 보다가 인수해갔다.
수입과 지출을 다 책임질테니 그냥 하는데까지 일하고 건강하게 잠 자라고.
정말 잊어버리고 잘 자고 다시 웃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돈 벌이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 지출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는데 평화가 왔다.
아내의 사랑이 그 짐을 져준 덕분이었다. 사랑은 고민도 녹였다.

내가 아내를 많이 사랑하고 아주 잘해준다고 큰소리 치며 살다가 뒤집어졌다.
아내는 많은 결정을 양보했고 뒷마무리를 감당하며 산 것을 꿈에도 몰랐다.
사랑은 가르치고 통제하고 일방적으로 주는 것으로 완성되는 게 아닌데 몰랐다.
어느날 아내가 세상을 떠난 꿈을 꾸고 절망과 고독으로 통곡하다가 잠을 깼다.
아내가 없으면 못사는 나를 깨달은 후에 내 진짜 사랑이 시작되었다.
육체적 고단함이나 생사의 고통, 투병을 돕는 일이 생색이나 의무가 아니고
다 이쁘고 자발적으로 돕고 싶어졌다.
사랑이야말로 고난도 녹이고 죽음의 두려움도 내어쫓는다는 경험을 했다.
생물학적 수명이 아주 늦은 나이에, 신앙의 연륜도 수십년이 지나서 겨우.
그래도 고맙다. 죽기전에 그걸 알게되고 우리가 고백할 기회를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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