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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Jun 28. 2020

믿음, ‘가능성의 효과’와 ‘확실성의 효과’



경제이론에 ‘가능성의 효과’라는 것이 있다.
0%의 이길 확률인 도박에는 단 한사람도 배팅을 하지 않는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가능성 없는 게임에 돈을 걸지 않을테니까.
그러나 단 1%의 승률로 올라가면 확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배팅을 하고 오히려 1%의 승률이기 때문에
더 많은 배당금이 돌아온다고 기대를 하기도 한다.
로또를 사는 현상이 그렇고 경마의 승률 낮은 곳에 배팅하는 경우다.
이 차이가 가능성의 효과라고 한다.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떠오른다.
비신자가 처음 하나님과 복음을 만나 믿음을 가지게 될 때가 그렇다.
회의와 무신론뿐인 다음 세상에 대한 0%의 생명을 살다가
1%의 가능성을 만났을 때의 그 두근거림, 기대는 정말 효과가 크다.
생활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세상의 모든 색깔이 달리 보인다.
회색에서 칼라로, 플라스틱 꽃에서 생화로!
이전에는 안하던 많은 배팅을 하는 삶으로 바뀐다.
남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누고 사랑하고 기도하게 되는 변화로.

또 하나의 이론은 ‘확실성의 효과’다.
10억의 소송을 하게되는 사람에게 변호사가 두 가지 제안을 한다.
90% 승소를 할수 있는 변호사는 비용이 1억이고
100% 승소를 할 수 있는 대표변호사는 비용이 5억인 경우다.
많은 사람들이 두번째 제안을 선택한다고 이론은 말한다.
앞 제안은 차이는 10%지만 질 확률이 있어서 비용은 1억밖에 안받는다.
뒤 제안은 단 10% 올릴 뿐이지만 확실하기 때문에 비용이 4억이나 올라
절반을 주고 절반인 5억밖에 못받지만 그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선택을 하는 현상이 확실성의 효과라고 한다.

믿음에도 그 이론이 적용된다.
하나님과 천국을 100% 확신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지불한다.
보물이 묻힌 땅을 사기 위해 가진 전 재산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비유처럼.
그러나 믿음이 90%에 머무는 사람은 그 많은 비용과 배팅을 못감당한다.
망설이고 어느 정도 움켜쥔채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혹시... 안될 경우 실패할 경우, 없을 경우의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그런데 이 ‘가능성의 효과’와 ‘확실성의 효과’ 중간에 뭐가 있단다.
1%가 오르거나 10%가 달라져도 효과가 먹히지 않는 현상.
이길 가능성이 40%인 게임에 41%로 올라가도 별 의욕이 더 생기지 않는다.
또 10억 걸린 재판에서 60% 승소 변호사 비용 1억에서 승률 70%로
10%가 올라가는 변호사로 교체하고 비용 4억을 추가하면 펄쩍 뛴다는 것.
도둑놈, 미친놈 욕을 하면서 절대 수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
90%에서 100%로 승률 10% 올릴 때는 기꺼이 추가 4억을 감수하던
확실성 효과가 이 경우에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이 중간의 현상을 이른바 ‘권태기’라고 한다.

믿음의 경우도 권태기가 있다.
어쩌면 상당히 많은 신자들이 그 지대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초기 ‘가능성의 효과’ 뜨거운 시절도 지나고 아직 ‘확실성의 효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늘 먼 발치로 놓고 사는 경우의 삶.
권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간 지대에 사는 사람에게는
사실 두근거리는 열정도 기대하기 어렵고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평안을 누리는 상태도 못들어간다.
40%나 41%나 거기서 거기고 60%나 70%나 비용이 아까운 상태,
성경의 한 구절이 기억난다.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 뱉어 버리기 전에’


* 그저 어린아이가 길 가듯 계속 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너무 계산이 많아 흔들리고 복잡한 길 가는 어른이 싫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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