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의 성자 프란치스코
아침마당 티비에서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 나와서 코로나 전염병 시대에 사람들이 겪는 우울증 진단을 하면서 말했다. 최근 2주를 돌아봐서 ‘이렇게 살면 뭐하나 죽는게 낫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다른 항목과 달리 몇번이던지 몇점이던지 상관없이 무조건 상담을 하시는 게 좋다라고 하셨다.
‘난 자주 그랬는데...살면서 안 그런 사람이 있나?’ 나도 모르게 같이 보던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이내 알았다. 아, 맞다. 그럴 때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안 그럼 잠도 잘 잘 수 없고 몸도 아파지더라. 나도 5년 간격으로 두 번이나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고 벗어 났었다.
우리 병실에는 스무살밖에 안된 아이도 자살 실행에 옮겼다가 심한 후유증으로 치료받고 있기도 하고 나의 아버지는 암과 투병하다 너무 지겨워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 내리셨다. 나도 총각시절 너무 안풀리는 얽힌 실타래 같은 환경이 암담해서 한 번 실행했던 부끄러운 경험도 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기전 이었다.
아내가 국립암센터에서 입원과 치료를 받을 때 같은 병실에 지내던 그 분은 폐암말기였다. 어느 날 그 분은 집의 그릇을 다 정리하며 당시 고3 딸에게 살림을 인수인계시켰다. 그걸 인수받으며 슬프고 괴로워하던 딸의 이야기도 포함해서 자기의 심정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언제 갈 지 모르잖아요? 그러니 미리 정리해야지요. 그리고 남편에게도 말했어요. 나 떠나면 부탁인데 1년만 지나서 재혼해달라고. 내 맘이 서럽고 화나서요. 사실 알지도 못할 텐데도...”
그랬다. 죽음과 싸우는 암 환자들은 ‘내일’이 오지 못할거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당연히 내일이 당연히 온다고 맘 편히 사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생사가 좌우되지 않는 좀 덜한 환자들의 투병 목표도, 소원도 기껏 그들이 아프기 전 그렇게도 힘들다며 불평하고 안달하던 그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참 단순한데 무지 어려운 소원...
그들은 왜 그렇게 힘들어할까? 대부분 그들은 지금 당하고 있는 상황이 쉽게 변하지 않고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일도 오늘과 별 다르지 않을거라는 무한 반복에 빠진 기분이라 좌절하는 것이다. 오늘이나 내일은 다를 것이라고 의욕만 생긴다면, 희망만 있다면 왜 그들이 견디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가난이 갑자기 해결되거나 생활환경, 상대방이 갑자기 변하는 기적이 날마다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 거의 그런 법은 없다. 이 날이 다른 날과 다르기만 하다면, 혹 내일은 오늘과 다르기만 하다면... 죽지 않고 살아갈 것 같은데,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라고 우리는 바라지만 그런 날은 결코 쉽게 흔하게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날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도 날마다 다르게 보는 법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 이란 제목의 글에서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그녀는 그런 마음으로 남들과 다른 세상을 만나고 순간마다 기쁘고 소중한 감정을 가졌고 감사로 날마다 맞이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삶은 특별한 시간들보다 평범한 시간들이 더 많습니다. 은행에서 순서표를 뽑아 기다리고, 식당에서 음식 나오길 또 기다리고,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고, 친구에게서 연락이 오면 문자를 보내고, 결국, 이 평범한 시간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라고. 성경도 비슷한 말을 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특별한 날, 특별한 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괴로운 이유와 가장 행복할 이유가 충돌한다. 어제와 오늘이 반복되어 괴로운데 누구는 그 일상이 가장 바라는 소원이 되는 상황이라니... 그 평범한 시간은 과연 다른 시간과 같은 걸까? 다를까? 우리는 같은 고통, 같은 무거운 짐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반복처럼 이어진다고 느껴서 괴로운데...
어떤 사람은 그런다. 이 세상에서는 단 한순간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과학자도 그러고 사진 작가도 그러고 시인도 그러고 길을 가는 나그네도 그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단 한 번도 같은 시간이 없었고 단 한 번도 같은 풍경도 없었으며 비슷한 날씨와 비슷한 사람을 보기는 하지만 정작 같은 사람도 없는 법이라고. 그렇다면 이 날은 다른 날과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겉으로는 평범하고 똑같아 보이는 날들도 사실은 늘 새로운 날이라면... 날마다 보는 지겹다고 느끼던 주위 사람도 어제와 다르고 남과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라면 어쩌면 좌절과 늪같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성 프란치스꼬가 어느 추운 겨울날 레오 형제와 길을 가며 말했다. “레오 형제여, 작은 형제가 소경을 눈뜨게 하고, 꼽추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죽은 지 나흘된 사람까지도 부활시킨다 할지라도, 그런 것이 완전한 기쁨이 되지 못한다고 잘 기록해 놓으시오." 그리고 이어서 프란치스꼬가 계속 말했다. “천사들의 말을 하고, 전교에 아주 능하여 이교도, 불신자들을 모두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이끌어들인다 하더라도 잘 기록해 두시오. 그런 것이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레오 형제는 몹시 놀라, “사부님, 그렇다면 참되고 완전한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성프란치스꼬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비에 젖고, 추위에 얼고, 진창에 빠져 형편없이 되고, 배고파 기진맥진하여 천사의 성마리아 성당에 도착해 수도원 문을 두드릴 때 문지기가 화를 내며 '당신들은 누구요?’하고 묻고, 그때 '당신들의 형제 두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면, 문지기가 말하기를 '거짓말 마라. 너희들은 사방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속이고 가난한 사람이 구걸한 것을 빼앗아 먹는 두 명의 악당이지? 썩 물러가거라.’하면서 문도 열어 주지 않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깥에서 쏟아지는 빗속에 우리를 밤중까지 내버려둘 때, 그런 욕설, 인정없는 무자비한 대우, 매정한 거절도 우리가 인내로써 달게 받고 그 사람과 맞서서 싸우거나 불평하지 않고 겸손히 애덕으로 ‘문지기가 말한 것은 정말 사실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도록 하나님께서 시킨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레오 형제여! 그것이 바로 완전한 기쁨이라고 기록해 놓으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고, 고통, 모욕, 수치, 불쾌한 것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달게 참아받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른 선물은 자랑거리로 삼을 것이 못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께서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인데 왜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것인양 자랑합니까?’(고린도전서 4,7)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습니다.’(갈라 6,14)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종종 우리네 삶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도 하나님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옷자락도 신발끝도 안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생을 가로질러 살아 간다. 우리네가 걸어가는 날들은 흐리고 비구름 폭풍이 하루 건너 하루씩 닥치는 세상이다. 어느 날 하루도 아무 일 없는 날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날이 다른 날과 다른 이유는 바로 그 고난과 견딤이 우리의 삶을 가장 큰 기쁨이자 자랑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특별한 성공 특별한 행운 특별한 재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과 더불어 동행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없으면 살아 날 수 없는데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증인이다. 우리에게 주신 옆 사람과 자연과 시간과 숱한 순간마다 공급해주신 여러 것들, 그 속에는 얼른 보면 안보이는 하나님의 숨은 손길과 흔적과 존재가 있어서 우리는 산다. 날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달라서 요행으로 즐거워서 날마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고 무한반복처럼 보이는 날들도 새로운 시간이고 새로운 생명임을 알기 때문이고 그속에 하나님이 계심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함께 동행하며 우리를 위해 보여주신 죽음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 날은 다른 날과 다른가? 그렇다! 주가 계셔서 행운이, 성공이 날마다 오는 다른 날이 아니어도 그 어떤 고난과 고단함도 우리를 절망시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