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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Dec 05. 2022

이야기 다섯 - 부자의 그늘




5화 부자의 그늘      


                        

#1...     


동주는 로또를 맞았다. 그리고 딱 석 달 만에 망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평생에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죽는 로또 행운을 맞고도 말이다. 뭐 통계대로면 정상이다. 대박 복권 행운에 걸린 인구의 3분의2, 약 70%가 오히려 불행해졌다고 하니...     


“와! 이게, 이게 진짜야? 믿을 수 없네... 내가 로또 1등이라니~~~~”

“여보, 무슨 소리야? 로또 1등이라니?”

“이리와! 빨리 와 봐봐! 지난주 잔돈을 바꾸려고 산 로또가 1등이 맞았어!”

“정말이야? 장난 아니지? 농담이면 그만해... 나 심장이 벌렁거려 죽을 거 같으니까!”

“이 신문에 난 번호랑 내 복권 번호랑 맞나 당신이 한 번 더 봐! 나도 안 믿어지니까!”

“맞네! 맞아~ 우리 이제 고생 끝난 거야? 엉엉엉!”

“왜 울어? 이 좋은 복이 들어왔는데?”

“그냥... 눈물이 나! 그동안 빚 갚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 생각이 나서!”

“에그... 복이 굴러와도 울고 고생보따리가 들어와도 울고! 눈물이 넘치나보네! 흐흐흐”

“애들 신발 하나 바로 못 사주고 비오는 날 물 새서 젖은 채 오던 거 생각도 나고...엉엉엉”

“그래,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대출금도 좀 갚고 편히 지내보자! 애들 운동화도 새로 사주고~”

“그럼, 얼마나 들어오는 거야?”

“아마... 1등 당첨자 인원이 이번에는 좀 적어서 30억 정도인데 세금 빼고 한 20억? 그런 거 같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등 상금은 농협 본점에서만 지급하는데 거기를 지키던 어떤 기자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인터뷰하더니, 그 내용이 기사로 나가고 말았다. 같은 상금을 타러 온 다른 1등 당첨자처럼 접근하고 축하를 하는 척 이런저런 심정이나 지출 계획을 물었다. 들뜨고 세상 물정에 어리숙했던 동주는 그만 미주알 고주알 털어 놓고 말았는데... 그 기사를 본 주변의 동주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대번에 알 만한 정보였다. 그날부터 동주네는 시달리기 시작했다. 동주와 그의 아내 연지, 그리고 아들들의 친구들, 주변 이웃과 나가는 교회의 성도들까지 죄다 알아버렸다. 처음에는 축하하는 운을 떼고 말을 걸어왔지만 점점 이런저런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투자를 권하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심지어 잘 모르는 사이의 사람들까지 찾아오거나 연락을 해와 도움을 청하곤 했다.     


#2...   

  

“아니, 왜 그런 이야기를 했어? 이 사람 저 사람 시달려서 보통 힘든 게 아니야... 에휴,”

“그렇게 불편한 정도야? 미안해...”

“보는 사람마다 그러니까 이제 누가 축하한다고 말 걸어와도 도망가고 싶어진다니까”

“전혀 생각 못했어, 그 사람이 기자인지도 몰랐지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더더...”

“이사를 가든 지 해야지 여기 계속 살기 힘들 거 같아! 부탁을 안 들어주면 또 욕하고 그래서, 휴...”

“안 그래도 아들놈들 덩치가 커져서 집도 좁고 방도 필요하니 조금 더 큰 전세 집으로 옮기지 뭐, 당신이 알아봐!”

“그럴까? 보증금 조금 더 주더라도 여기보다 방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알아볼게!”     


‘호사다마’ 좋은 일에는 궂은일도 따른다고 했던가? 또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었다. 한 번 좋은 일이 오면 한 번은 안 좋은 일도 온다고 했던가?  그의 아내 연지는 처음에는 그저 전셋집을 조금만 더 큰 거로 알아본다고 부동산을 다니더니... 어느 날 덜컥, 5억짜리 아파트를 사는 거로 계약하고 계약금만도 2천만 원이나 주고 왔다. 부동산에서 보여주는 전셋집들이 낡고 마음에 안 든다며 투덜거리더니...    

  

동주의 아내는 야금야금 간이 커지고 눈이 높아지고 있었다. 긴 세월을 박봉의 남편 월급으로 머리 쥐어짜며 생활을 버텨오던 아내, 아들 둘 중 큰놈이 대학 가면서 지출이 많아지자 부업을 해가며 빚을 갚아 나가던 사람이 큰돈이 들어오자 둑이 무너지고 있었다. 못 입고 못 먹던 온갖 눈 쇼핑 대상들이 집으로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기어이 집을 사는 계약을 하는 큰일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아버지, 저 지금 다니는 학교 너무 멀고 시외버스로 통학 하는 거 힘들어요!”

“그래서? 어쩌려고?”

“저 학교 근처 방을 하나 얻어주던지, 아님, 중고차 하나 사주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방이나 차 둘 다 만만치 않은 지출이 계속 생기는 일인데...”

“아직 2년이나 더 다녀야 하는데 힘들어서 못 버티겠어요! 이제는 돈도 있잖아요!“     


‘그러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 갔으면 좋았잖아!’ 동주는 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좁쌀스럽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큰아들이 거리가 멀어 시간이 없어 알바도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들어가는 모든 용돈이며 책값이며 다 집에서 대주는 게 부담되던 참에 욱! 쌓인 불만도 치솟았다. 하지만 자식과 싸워 늘 지는 쪽은 부모다. 더구나 넉넉히 벌어 오지 못해 같이 고생시키는 가족들에게 늘 기죽어 지내던 동주가 버럭 성질부리는 건 언감생심이라 참고 살았다. 아내 연지의 무너진 알뜰생활 둑과 함께 아들 둘도 씀씀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지출이 많아지고 대놓고 필요한 거, 들어갈 돈을 내놓으라며 요구하기 시작했다. 운동화에서 그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못 했던 동주는 자꾸 구석으로 몰리는 악몽을 꾸는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3...     

  

“형님! 언제 오셨어요?”

“아, 지금 들어오나? 얼른 온나! 힘들었제?”

“아니요 뭐 맨날 하는 일 하고 오는데요. 미리 연락도 없이 어떻게 오셨어요?”

“아, 다름이 아니고... 니가 돈이 좀 생겼다며? 나 좀 도와달라고!”

“무슨 일 있어요?”

“이번에 소 축사를 수리하면서 두 배로 넓혀서 소를 좀 더 들여 놓을라 안카나!”

“지금도 힘드시다면서... 더 늘리면 감당하시겠어요?”

“적으면 더 힘만 들고 수입도 별로 안 된다 아이가! 그래서 늘리는 거라!”

“그런가요? 저는 잘 몰라서...”

“그래서 니 투자하는 셈 치고 몇 억만 좀 대라! 나중에 벌면 이자까지 쳐서 돌려주꾸마!”

“그게... 집사람이 무슨 이사계획을 세웠다고 하던데 한 번 의논해봐야 해요”

“뭐라카노? 니가 가장 아이가? 니가 하자고 하면 안사람이 마 따르는거지 뭔 소리여?”

“그래도 부부는 의논해서 결정을 하는 거라 제 맘대로 안 하며 삽니다”

“마, 됐고! 의논을 하든지 결심을 하든지 니가 알아서 하고! 돈 되면 연락해라!”

“가시려고요?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시지요.”

“축사가 일이 많아 바로 가야 한다. 밖에서 잠도 못 자는 성격 알잖아!”

“알았어요. 의논은 해보겠지만... 집을 옮기려고 어디 계약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쩌면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연락은 드리겠습니다.”

“나, 간다! 나오지 마라!”

“예! 잘 내려가세요!”     


산을 하나 넘으면 산이 또 하나 눈앞에 나타나는 게 우리나라 자연이고 우리 인생과 닮았다더니... 동주는 점점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묵직하고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되는 날이 많아졌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는 걸 본 회사 동료가 걱정하며 괜찮냐고 말도 했다. 다들 부러워하고 축하만 해주는 복 터진 남자라지만 동주에게는 그런 기분만 오는 것이 아님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말하면 배부른 소리, 죽는 엄살 부린다고 빈정거릴 것 같아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속을 태우며 지냈다.     


#4...     


“이게... 뭐야? 이게 왜 식탁에 있어?”

“아! 그거, 이참에 우리 십 년 넘은 차 바꿔야지! 그래서 팜프렛 받아놓았어!”

“아직 괜찮은데... 왜 바꾸려고?”

“뭔 소리야? 점점 수리비는 늘고 여기저기 깨지고 색도 변하고... 궁상이잖아? 돈도 있으면서 그냥 그 차를 타고 다니면. 마침 친구가 차 회사 영업부 다녀서 좋은 가격에 해준대! ”

“왜 그래? 의논 좀 하고 하지... 미리 말 꺼내 놓고 못 사주면 친구도 난처할 거아냐...”

“당신이야말로 왜 그래? 언제 우리가 빚내서 차 사자고 했어? 이렇게 돈이 형편 될 때 사야지, 여차하다가 돈 다 쓰면 앞으로 또 십 년 지나도 못 바꾸잖아”

“형님 올라왔다 간 거 알지? 시골 축사 넓히고 한우 더 들인다고 돈 빌려달라고 했어, 당신하고 의논해서 알려준다고 보냈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만 되고 미치겠다. 왜 남의 사정은 제쳐놓고 다들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지...”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어쩌려고? 형님네가 어디 돈 1-2천 가지고 해결할 문제도 아니잖아? 우리도 대출 빚 갚고 집 잔금 치르고 차 바꾸고... 첫째 아들 대학 마칠 때까지 비용과 둘째 또 대학 가면 쓸 돈을 남겨야 하는데 무슨 남는 여유가 있어? 형님네는 부자면서 우리 돈을 갖다가 사업 늘릴 계획을 세우신대? 참...”

“그래서 말도 못 했어! 나중에 연락드리겠다고만 했지...”

“안된다고 잘라서 말씀드려! 오래 끌면 되는 줄 알고 있다가 더 힘들어져!”

“말처럼 그리 쉽냐? 거절하는 게...”     


차라리... 로또가 맞지 않았으면 더 나았겠다. 동주는 처음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뭔 애물단지도 아니고 고민을 보따리로 가져오는지 속상했다. 교회 식구 중에도 돈 빌려 달라다가 안되자 비난하고 얼굴 바꾼 사람도 있었다. 주변에 사는 이웃 중에도 눈초리가 냉랭하고 크게 한턱 안 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구 잔치라도 벌려서 초대하지 않는 것이 마치 자기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나쁜 사람이라는 듯 섭섭함을 대놓고 표현했다.     


“박집사님! 나 좀 봅시다.”

“예! 목사님!”

“이번에 집사님 가정에 큰 복을 받았다면서요?”

“예! 그런 복권 같은 거 잘 안 사는 편인데 우연히 잔돈이 필요해 바꾸면서 산 게 맞았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틀림없습니다! 그동안 성실히 직장과 신앙생활을 하시는 두 분 집사님 가정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요! 감사하십시오!”

“예, 너무 고맙고 그런 복을 받을 만큼 못 살았는데 싶어 앞으로 더 열심히 살려고요”

“아, 보자는 거는 다름이 아니고..., 이번에 우리 교회 부목사님이 신학대학원 졸업반이고 전도사님 한 분도 신학교 올라가지요! 아시지요?”

“예! 자주 뵙는데 알지요! 늘 웃으며 대해 주셔서 고맙게 기억합니다”

“그 두 분이 집 사정이 다 넉넉지 못해 사실 많이 힘들어합니다. 등록비야 뭐 학교 장학금과 교회에서 일부 대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생활까지 해결은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한 일년만 좀 집사님이 후원을 좀 하실 수 있으면 한 번 결심을 해보시라고요!”

“예, 그랬군요”

“듣는 분이 신앙심이 낮고 대하기 어려우면 내가 말을 안 하는데... 집사님은 충분히 결단하실만한 분이라 편히 말하는 겁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목사님이 방법과 액수를 정해주시면 제가 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복을 받을 때 나눔도 하시는 게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지요!”     


#5...     


“여보, 제발... 제발 가지 말아요!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집을 나가요? 흑흑...”

“동주 아버지! 동주 아버지! 일어나요! 무슨 꿈을 그리 꾸는 거야?”     


동주가 흐느끼며 지르는 소리에 잠을 깬 아내는 동주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꿈이었다. 다행이라고 정신을 차린 동주는 그러나 가슴 한쪽에서 슬픔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홍수로 둑이 터져버린 개울에서 흐르는 급류를 마냥 지켜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황토와 온갖 잡쓰레기가 섞여 떠내려가는 것을 속수무책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어 그냥 발 동동 구르며 지켜보는 무기력한 느낌? 그런 심정이었다. 꿈속에서 아내는 동주와 대판 싸우다 짐을 가방에 싸고 가출하겠다고 했다. 이혼서류는 나중에 보내겠다며 재산의 절반은 자기 것이니 행여 이상한 곳에 빼돌리거나 하지 말라는 당부도 붙였다. 아들들은 멍하니 지켜만 보다가 자기들도 각자 일정한 재산을 달라면서 나가서 독립해 살겠다고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동주는 꿈이 꿈으로 깨어난 게 고마우면서도 요즘 불편한 감정들과 이어져 몰려오는 불길함에 복잡한 심경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여보, 꿈에서 당신과 아이들이 집을 나가겠다고 가방에 짐을 쌌어...”

“에잉? 내가 가출한다고? 무슨 말이야~ 깔깔!”

“더구나 이혼까지 요구하며 싸늘하게 말하는 당신의 표정이 지금도 너무 생생해”

“원래 꿈은 반대라잖아! 걱정마! 아마 이 박씨집 귀신이 될 때까지 질기게 붙어산다는 꿈인가 보지!”     


아내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맑은 얼굴로 깔깔 웃으며 하는 대답에 동주는 맘이 조금은 놓였지만, 그것으로 개운하게 해결은 되지 않았다. 요즘 동주를 짖누르는 불안함, 불편함 그런 이유가 아직 고스란히 그대로 현실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둘 점점 늘어가는 어깨의 짐과 꼬인 미로가 난감하게 느껴졌다.     


#6...     


건강한 사람만이 가던 길을 바꾸어 돌아설 수 있다. 땅의 길이나 인생의 길이나 비슷하다. 운동선수들이 체력훈련을 할 때 달리기를 급히 유턴하는 과정이 있다. 물론 순발력도 있고 유연해야 하지만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빠른 순간에 돌아서서 달릴 수 없다. 늦어지거나 체중과 회전력을 감당 못해 넘어지게 된다. 이 원리는 몸동작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길도 가던 길을 급회전해서 방향을 바꾸어 살려면 정신의 건강이 필요하다. 결심에 따라오는 불안 두려움을 감당하며 남들의 시선과 만류를 뿌리치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회심을 크게 하는 성인들도 이 건강한 힘이 있었기에 타락과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사는 게 가능했다. 동주는 아무래도 이 힘이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에 마주쳤다고 깊이 생각했다. 그로부터 다시 며칠이 흘렀다.     


“여보..., 큰일 났어!”

“무슨 일이야? 큰일이라니?”

“당신 명구씨 알지? 내가 전에 말한 적 있었던 ‘주식 점쟁이’로 불린다는 친구!“

“아, 그 비트코인 투자로 해마다 두 배씩 재산을 늘려간다는 당신 동창? 난 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로 몇 번 들었지!”

“지난주에 그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가진 돈을 통장에 두지 말고 비트코인 투자를 하라는 거야.

내게 돈이 있다는 거, 아는 사람들이 자꾸 빌려주라 기부해라 불편한 요구가 많아 고민한다는 내 말을 듣더니 이자도 안 붙는 은행에 두지 말고 자기 투자하는 곳에 같이 하자고”

“그래서 비트코인을 샀어?”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서 잔액 현금 전부 그 친구가 거래하는 거래소를 통해 투자했지”

“그거... 어제인가? 뉴스에 대판 나오던 그 회사 아냐? 미국에서 망했다는...”

“맞아. 휴... 그 회사 사장이 그 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 투자한 사람들의 현금을 빼내 다른 부동산 주식에 투자하다가 걸린 거야! 국세청과 FBI에서 조사해서 난리가 났어.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모두 팔아치우며 현금 인출을 요구하고 고발하고...”

“그럼...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 돈도 모두 날아간 거야? 설마...“

”여러 방법을 동원해 원금을 회수해보려고 하지만... 이미 폭락중인 비트코인이고 해당 거래소가 파산을 해버려서 마땅한 방법이 없대...“

”그러게... 왜 그런 말에 홀랑 넘어가서 이게 뭐야?“

”좋은 마음으로 좋은 제안을 해준 친구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이런 일은 처음이고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라서“

”우린 이제 어떻게 해? 집 산 거 잔금도 내야 하는데... 못 내면 계약금 다 날아가게 생겼어 휴...“

”내가 횡재 운이 왔다고 좋아했더니 비명횡사 운도 같이 오네...“

”20년 고생 끝에 당신 덕을 보나 했더니...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그냥 내가 땅 파고 들어가서 묻혀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그래도... 그럼 안되지! 죽음의 고비를 한번 넘길 때마다 키가 자란다고 어느 책에서 그랬어. 물론 눈에 보이는 키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키가 자란다는 의미로“

”이 판국에 내 키가 자란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 그냥 그대로 유지나 했으면 좋겠다“

”이거 당하려고 당신이 그 꿈을 꾸었나 보다. 나랑 아들들 집 나가는 꿈...“

”진짜 이혼하고 집 나가게 생겼지? 그럴 거야? 당신...“

”기분은 열 번쯤 그러고 싶기도 하지, 밉고 분하고 바보 등신아! 물어내! 라고 소리도 지르고 싶고…“

”진짜 그래도 할 말이 없지...“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남편 복 없어서 이혼하고 혼자 사는 신세 망친 여자로 보이겠지. 그러느니 가정이라도 온전한 여자로 보이는 게 덜 창피하겠지?“

”그래 주면 너무 고맙지, 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데...“

”원래 당신은 내 짝사랑이었어! 지금도 그렇고! 그러니 다 끌어안고 살아야지 뭔 길이 있겠어?“

”내가 짝사랑 상대라고? 아니잖아! 내가 먼저 좋아하고 결혼도 내가 먼저 신청 했는데...“

”그런 짝사랑이 아니고! 본래 사랑은 짝사랑이 원조고 본질이야! 상대방의 대답 여부나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닌, 나의 절대적 변함없는 결심이고 끝까지 간다는 의미로 짝사랑인 거야! 그러니 진정한 사랑은 짝사랑밖에 없지!“

”에구... 돈 횡재 운은 거품 같고 바람같이 사라져도 당신 행운은 영원한 거네! 복이 따로 있었네...“    

 

#7...     


그렇게 망한 집안의 분위기는 초상집 버금가는 가라앉은 상태로 계속되었다. 가까운 사람들과 이웃과 교회에도 그 소식은 속히 전해지고 사람들은 딱하다는 듯 위로의 말을 모두 날렸다. 어떤 이는 묘한 안도의 미소인지 기분 좋은 사람처럼 다시 다가오기도 했다.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의 심리가 정말 궁금했다. 그 뒤로 돈 빌려 달라는 사람 기부하라는 사람 모두 줄어들다가 아예 없어졌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 당할 어떤 봉변도 짐작되어 더 그랬을 거다. 아내랑 아이들도 짧지 않은 날들을 몸살 앓고 난 뒤처럼 넘기면서 예전의 일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쪼달리고 허리띠 졸라매며 좁은 집에서 씨름하지만 이 정도도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는지.     

”아! 그거 나에게 온 소포야! 이리 줘!“

”뭐 중요한 거길래 마치 뺏어가듯 가져가? 설마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니지?“

”사고는 무신!“     


동주는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가 그 소포를 뜯었다. 안에는 사단법인 ㅇㅇ장학회 이름으로 감사의 편지가 들어 있었고 작은 감사패도 들어 있었다. ‘귀하의 장학회 기금 기부에 감사드립니다’ 라는 인사말과 15억에 가까운 영수증과 세금 처리된 내역 등이 들어 있었다. 동주는 지난주 악몽에 시달리면서 고민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내와 아이들도 변하고 멀어지고 마침내 혼자 살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아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비난하며 섭섭하다고 등지고 떠나 외로워지는 미래의 모습이 서럽고 아팠던 감정도. 그래서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를 로또 복권 당첨의 기회가 너무 괴로웠고 무슨 어두운 근심덩어리로 느껴졌다. 그 그늘은 쓰디쓴 마라의 샘물이나 쓴 뿌리 같아서 빨리 없어지는 것이 더 좋을 것도 같았다. 고민 끝에 동주는 가던 길을 돌아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따뜻한 기회와 희망을 주는 ㅇㅇ장학회를 찾아 집을 나섰다. 일부 사용하고 남은 나머지 금액을 전부 기부했다. ‘적응은 가난할 때는 유익함을 안겨주지만 부유할 때는 적응이 오히려 불행을 안겨 주기도 한다.’ 동주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떠올리며 속으로 혼잣말처럼 되풀이했다.     

”여보, 오랜만에 평안한 주일예배를 참석하네? 몇 달만이야 이 조용한 평안은~“

”그러게, 나도 감사해! 평생 나를 짝사랑해주는 연인의 고백도 들었으니! 하하하!“     


주보에는 오늘의 설교 제목과 성경 구절이 담겨 있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완전해지고자 한다면 가서 네 재산을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청년은 이 말을 듣고 슬픔에 잠겨 돌아갔습니다. 그는 굉장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  마태복음 19장 21~22절 우리말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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