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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Nov 29. 2022

이야기 넷 - 메마른 바다



4화 메마른바다      


                        

#1...    

 

어깨가 다부지고 굵은 팔뚝을 가진 그는 키가 좀 작았다. 조심스럽고 웅크린 자세 때문에 키가 조금 더 작아 보였다. 바다 어디쯤 멈춘 작은 배 위에 그는 느린 동작으로 적응하고 있었다. 자기 눈으로 자기 손이 안 보일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마치 깊은 산속의 공동묘지처럼 적막하고 작은 파도조차 치지 않아서 배를 때리는 철썩이는 소리도 없는, 그래서 조금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바다였다. ‘일이나 하자! 다른 신경 안 쓰려면 그물이나 부지런히 던져야지!’ 그렇게 억지로 자신을 부추기며 던지고 걷어 들이고 던지고 걷어 들이고, 또 던지고 걷어 들이고... 아마도 수백 번은 한 것 같은데 믿을 수 없도록 고기 한 마리도 그물에는 안 들어왔다. 바다와 고기들이 서로 짜고 자기에게 무슨 농간을 부리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해는 떠오르기 시작하고 이제는 어둠의 무서움은 사라지고 대신 이글거리는 분노가 그를 흔들고 있었다.     


“어떤 놈이야? 왜 날 말려 죽이려고 이렇게 고기떼를 쫓아버리는 수작질이야! 나와! 나와봐 이것들아!”   

  

욱! 하고 공연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반석이는 손에 잡히는 쇠파이프를 들고 화를 감당 못하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휘두르고 바닥을 내리쳤다. 그동안 말 못하고 쌓인 묵은 분노들이 괜히 폭발하는 걸 어렴풋 느끼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동시에 바닥에서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 같은 물줄기가 반석이를 향해 뿜어왔다. 마치 바닷물로 샤워를 시키는 것처럼 세게 뿜던 물줄기는 점점 세어지고 소방차의 물 호스 굵기로 커지더니 온몸이 물에 잠기는 섬뜩함이 몰려왔다. ‘아! 근처에 아무도 없는데...’ 순간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다. 금방 허벅지까지 잠기고 허리까지 차더니 이내 작은 고깃배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누가 좀 도와줘요!’ 목이 잠겨서 제대로 말이 안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반석이는 잠이 깼다. 꿈이었다. 배가 파손되어 바다에 수장당하는 무서운 악몽... 그것도 자기 손으로 배에 구멍을 낸 꿈. 식은땀이 등을 적시고 있었다.     


“어이! 양씨 총각! 오늘은 지각을 다하고 웬일이야? 다른 때보다 늦었네? 집에 새댁이라도 몰래 숨겨놓고 사는 거 아냐? 크크”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맨날 나와도 뭔 뾰족한 길도 없는 이놈의 빵 공장! 아예 이참에 때려치우고 나오지 말까 봐요? 에휴...“

“뭔 험악한 소리를 그렇게 해? 이십 년이나 군소리 없이 잘 지켜오던 밥벌이를?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녀! 부정 타면 어쩌려고...”

“이미 이십 년 내내 부정 타서 요런 꼴로 사는 거 아닐까요? 뭐 달라지는 게 있나, 돈 보따리가 쌓이기를 하나... 어떤 사람들은 집 사고 집 팔고, 또 사고팔고, 그렇게 땀도 안 흘리고 잠도 원 없이 자면서 서류만 만져도 떼돈을 벌던 데... 무식하고 가진 거 없는 나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뺑이를 치면서 이십 년을 살아도 요 모양 요 꼴이잖요? 에휴...”

“이 친구 오늘은 뭐가 되게 쌓였네... 왜 무슨 일이 있어? 이따 저녁에 막걸리나 한 사발 하고 풀자고! 오늘은 내가 사줄게. 그러니 일 잘혀!”     


반석이는 이 시장통에서 유일하게 스스럼없이 말 걸고 들어 주는 유일한 사람, 옆집 신발가게 형님께 투정을 부리듯 간밤 꿈의 찜찜하고 답답한 후유증을 쏟아놓았다. 그러면서 천천히 빵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하루 왼 종일 만들 빵의 반죽을 하고 빵틀과 기계를 닦고 예열을 하고 손 가는 일이 많았다. 어느 사이 해가 중천으로 올라왔다.     


“어이! 반석이 총각! 같이 밥이나 한술 먹고 하자고~”

“예! 이거 하던 거만 마저 끝내고 금방 갈게요!”

“어서 와! 뭐 떼돈 번다고 밥 미루고 배고파 가며 일하나!”

“알았어요!”     

옷에 묻은 가루를 툭툭 털면서 신발가게로 들어서는 반석이를 향해 바닥의 빈자리를 탁탁! 치면서 여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침에는 왜 그리 골이 난 거야?”

“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게 죽을 뻔 했구먼요”

“그래? 많이 놀랐겠네. 뭔가 걱정거리가 있었나?”

“걱정거리야 평생을 이고 지고 살지유! 그렇다고 악몽 꾸면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거구만요!”

“그러게, 생전 늦은 적 없고 그런 꿈 안 꾸던 자네가 어쩐 일이지?”

“여태 잘 지낸 게 복 받은 거였지요. 요즘은 사는 게 점점 재미가 없어요...”

“힘들지? 그러니까 빨리 장가나 가! 그래야 재미가 생기지!”

“어떤 여자가 나 같은 일벌레에 돈만 벌어야 하는 노예 같은 남자에게 시집을 온대유? 이젠 틀렸어요”

“자네가 어때서? 벌써 한 이십 년 됐나? 이 시장에 발 들여서 빵 가게 한 지가?”

“그렇지유... 이십 년동안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빵 만들고 팔고... 그렇게 벌어서 정신 놓은 엄마 병원비 간병비 댔지요. 그리고 동생 하나 있는 거 먹이고 키우고 학비 대느라... 참 세월 많이 갔네유!”

‘그러게, 자네 엄니께서 너무 이른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지지만 않으셨어도... 자네가 훨씬 잘 풀렸을 텐데… 아마 그동안 돈 들어간 거만 모았어도 저기 입구에 있는 빌딩 하나는 사고도 남았을 걸?“

”어림잡아도 십억은 넘었을 테니... 사고도 남았겠지요? 근데 아직도 끝이 아니라는 게 더 팍팍하네요...“

”산목숨 돌아가시라고는 못하고... 자네 엄니께서 정신만 있으셔도 아마 다른 길이 나왔을 거야. 어떤 엄니가 자식 인생 말아 먹으면서 오래 살겠다 하겠어?“

”다 제 팔자유... 누구를 탓하겠어요?“

”요즘은 의학 기술도 너무 발전해서 문제야... 약도 너무 좋은 게 많이 나오고. 그러니 쉽게 끝이 안 나지... 에구! 내가 시방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취소! 취소! 퇫퇫!”

”아녀요. 저도 가끔은 그런 생각 솔직히 드는걸요. 언제까지 이걸 감당해야 끝이 날려나 하면서요.“     


반석이는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점점 사는 재미도 없어지고 마지못해 사는 소나 노예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도 없어지고 모두 다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나마 학비 들어가고 먹이고 뒷바라지 한 동생이 같이 살 때는 그 뒤치다꺼리하며 자라는 동생을 보는 재미로 날을 보냈던 것 같다. 그 동생마저 멀리 취직이 되어 떠나고 나니 마치 없는 사람처럼 종종 느껴지기도 했다. ’지 인생 지가 잘 살아주기만 해도 고맙지 뭐...‘ 반석이는 그렇게 동생도 손에서 놓아 보냈다. 그 후로는 마치 갇힌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듯 삭막하게 일만 죽도록 반복하는 날들을 보내며 살았다.     


#2...     


”양반석씨 입니까?“

”예! 그런대요. 어디십니까?“

”아, 여기 ㅇㅇ병원인데요! 잠시만요!“

”엄마에게 무슨 일...있나요?“

”뭐 큰일은 아닌 데... 그동안 양반석님 어머니를 돌보던 간병인이 급한 일이 생겨 그만두고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간병인을 구해서 대체를 해보려고 했는데... 문제가 좀 있어요. 몇 년 사이에 간병비가 많이 올라서 같은 비용으로는 구할 수가 없어요“

”지금 간병비로는 사람을 못 구한다는 건가요?“

”그게... 먼저 보시던 분이 몇 년째 조금씩 오르는 간병비를 한 번도 안 올리고 봐주셨네요. 그 바람에 벌어진 몇 년 치를 한 번에 올릴 수는 없고, 좀 낮은 간병비로 올 분을 구하려 했는데 잘 안되어서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직접 아시는 곳 있으면 좀 구해보시던지, 아니면 부득이 오른 가격으로 새로운 분을 대체 해야할 것 같아서 의논을 드리려고요“

”휴... 제가 알아본들 뭐가 다르겠어요? 그리고 시세가 그러면 할 수 없지요“

”그럼 인상된 금액으로 알아볼까요? 최종적으로 알려는 드리고 진행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주세요.“     


반석이는 전화를 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꿈이 이거였구나... 어쩐지 싱숭생숭하더라니‘ 반석이는 기어이 닥친 꿈 치레가 몸서리치게 미웠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게 지루하고 메마른 사막을 가는 것 같아 힘겨운데 자꾸만 안 좋은 소식들이 들려서 세상이 온통 오르막길만 있는 것 같았다. 죽어라 죽어라고 누가 일부러 자기를 괴롭히려고 그런 것 같아 울컥울컥 분노가 솟을 때는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사소한 사회 범죄 뉴스를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험한 말이 쏟아지곤 했다. ’저런 놈들은 싹 목을 잘라 참수형을 시켜 버려야 해!‘ 라던가 ’저런 부패한 공무원 재벌들은 전부 실어다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이렇게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 어쩌면 엄마가 있는 병원에 따라 입원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도 들곤 했다.    

 

#3...     


”계세요?“

”예! 할머니, 무얼 찾으시나요?“

”아! 제가 이 동네로 새로 이사 왔어요! 제가 빵을 워낙 좋아해서 며칠 전 이사 오면서 여기를 보았어요!“

”지금은 빵이 다 팔리고 별로 없는데... 어쩌지요?“

”괜찮아요! 남은 거 조금만 사고 내일 다시 들르면 되지요! 단골 신고하려고 왔어요!“

”그럼... 골라 보세요“

”이거 이거 두 개씩 주세요!“

”이건 다 팔리고 요거만 남은 거니 그냥 가져가세요! 오늘 일부러 단골로 하겠다고 와주셨으니!“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되지요! 더구나 옆집 신발가게 아저씨가 여기 빵이 맛있다고 추천해주셨는데... 방문 첫날부터 공짜 빵은 안 되잖아요? 하하하!“

”아니, 정말 괜찮아요. 남는 거 좀 찜찜하면 하루 이틀 후에는 버리기도 하는데요. 누가 먹어주시면 고맙지요. 애쓰고 만든 빵인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만드는 빵들이 대부분은 그날에 바닥나고 잘 팔리고 비지만 어떤 빵은 유난히 며칠 내내 안 나가기도 해서 결국은 버리기도 했다. 그런 빵을 누굴 줄 수도 없다. 상한 빵 먹으면 큰일이 나서 그러기도 하지만, 탈이 안 나도 그런 거 준다고 비난 받을까봐 먹으라는 말도 못 꺼냈다. 예상량을 빗나가는 날이 종종 있기에 가끔은 그런 빵이 아깝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 이사 오신 할머니가 가져가면 묘하게도 마음이 홀가분했다.     


”안녕하세요!“

”아, 단골 할머니 오셨어요!

“오늘은 빵이 잘 나갔어요?”

“그런 날도 있고 안 나가는 날도 있고... 뭐 괜찮아요! 그러려니 사는걸요!”

“하긴 모든 일이 다 그렇지요? 잘 풀리는 날도 있고 꼬이고 궂은일만 생기는 날도 있고 그렇지요!”

“근데... 늘 혼자 일하시는 거 같은데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돕는 사람을 못 본 거 같아서요”

“예! 아직 혼자입니다! 어쩌다 보니 늦었고 욕심부릴 상황도 못 되어서요”

“어려울수록 같이 서로 도우며 헤쳐 나가면 더 잘될 수도 있는데...”

“제 사정이 발이 묶여 있어요. 그래서 누구에게 같이 고생하자고 말 꺼낼 수 없어요”

“아직 인생 다 살 나이도 아닌 데 너무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사는 게 재미있으세요? 어떻게 하면 날마다 일찍 일어나도 안 피곤하고, 일하고 싶어질까요? 저는 도무지 사는 재미가 안 생겨서... 사실 결혼이나 돈 버는 거보다 살 의욕이 안 생기는 그게 더 고민이네요”

“맞아요! 사는 재미... 그거 없으면 재벌도 왕도 다 쓸데없지요? 밥맛도 없고 기쁘지도 않고!  그 사는 재미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한 숙제일 수도 있지요!”

“그거 없으니 다 지루하고 싫증 나요. 별로 보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은 것도 없어져요”

“죽지만 않았지 어쩜 그 상태가 지옥 속에 있는 거나 다름없을지도 몰라요...”

“아이쿠, 할머니! 제가 말이 지나쳤어요! 할머니 앞에서 별말을 다 했어요! 건강하시고 오래 사셔야 할 분 앞에서...”

“걱정마세요! 이 할머니는 재미도 있고 할 일도 있고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산답니다! 하하하!”     


얼마나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더니 반석이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표정은 언제나 평화롭고 밝아 보였다. ’너를 힘들게 하는 게 너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던 어느 철학자의 말이 맞나? 왜 자기를 수십 년이나 오래 누르는 이 난처한 형편은 자기를 강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반석이는 아쉬웠다. 이십여 년 세월에 때 묻고 얼룩진 빵 가게의 벽과 여기저기 상처투성이 된 그릇들이 어느 순간은 너무 딱해 보여 울컥 미안한 적도 있었다. 자기도 저 그릇 같이 누추하다는 서글픔도 몰려왔다. 비가 내리는 흐린 날인데도 왜 메마른 사막을 걷는 사람처럼 타는 갈증이 느껴지는지 이상하기도 했다.    

 

#4...     


“형! 미안해요...”

“왜? 갑자기 그런 말은 해?”

“엄마 병원 들렀다가 간호사에게 들었어”

“아, 그랬구나”

“간병인 아주머니 바뀌면서 간병비가 상당히 올랐다고... 내가 많이 못 내서 별 보탬이 안되는 거 미안해...”

“괜찮아! 너나 잘 생활해! 집세 내랴 혼자 살림하랴 만만치 않을텐데, 아프지나 말고!”

“지금 회사가 수출이 부진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직원 줄인다는 말도 나오고... 이 고비를 넘기고 좀 더 벌게 되면 얼른 더 보탤게!”

“알았어! 언제 한번 보자! 시간 나면 와라. 난 가게를 비울 날이 없으니 갈 수도 없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동생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걱정이 다시 몰려왔다. 이상하게 요즘은 계속 빵이 안 나가기 시작하더니 어떤 날은 예상한 숫자의 절반도 못 나가고 재고를 다음 날로 넘기곤 했다. 다음 날은 양을 줄여서 만들었지만 그것마저 안 나가서 더는 유효기간 압박감 때문에 팔 수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단골 할머니가 소개한 고아원과 양로원에 그 빵들을 부담 없이 보내줄 수가 있게 된 후로 맘은 좀 편해졌다. 빵들도 버려지는 것보다 나눠질 때가 더 좋은지 빵이 웃는다는 우스운 착각도 들었다.    

 

“오늘은 얼굴이 더 불편해 보이네요? 무슨 일이 있어요?”

“할머니 오셨어요! 많이 표나요? 그렇게 안 좋아 보여요? 제 얼굴이...”

“뭐 벌레를 씹어 입안에 물고 있는 정도로 보이지는 않지만요! 하하하!”

“사실은... 빵이 점점 안 나가고 줄어들어서 걱정할 정도네요. 돈 쓸 곳은 늘어나고 재료비 물가는 무지 오르는 데 반대로 매상이 줄어드니 에휴...”

그러셨구나. 걱정할 만하네요. 누적되면 문제가 더 커지지요“

”여기서만 거의 이십 년째 하는데 이런 적은 처음인 거 같아요. 제 빵에 맛이 문제가 있는지, 아님, 세상 사람들이 전부 빵 줄여서 먹기로 약속이라도 했는지...“

”음... 그럼 제 생각이 있는데 좀 들어볼래요?“

”뭔데요? 도움 주신다면 뭐든지 들어야지요!“

”혹시 이십 년이나 한 베테랑 빵 기술자에게 이런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괜찮아요! 제 단골이시고 먹는 경력으로는 저보다 빵에 선배고 전문가시잖아요!”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맘 놓고! 사실은 많은 빵 가게들이 비슷비슷한 맛과 모양으로 만들지요. 소비량이 많을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소비량이 줄거나 시장경쟁이 커지면 좀 문제가 생기지요!”

“그런 점이 있지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모양을 좀 더 수제품 느낌이 많이 나는 쪽으로 변화를 주고 재료도 몇 가지는 바꾸시면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모양을 어떻게 바꾸지요? 제 손재주가 그리 좋지는 않아서... 그렇다고 하나씩 붙들고 앉아서는 시간이 너무 걸릴 거고...”

“아, 제가 예전에 교도소와 보육원에 빵 봉사를 할때 사용하던 틀이 몇 가지 있어요. 기본 반죽을 거기 넣고 익히면 사람들 눈길을 끄는 캐릭터 빵이 나오는데 좋아하더라구요!”

“아, 그게 가능하군요! 그럼 좋아하겠네요”

“재료도 지방과 당분을 좀 줄여주면서도 몸에 좋은 고소한 맛을 내는 게 있어요. 기존 재료비보다는 조금 더 비싸게 먹히겠지만 충분히 바꿀만 할 거 같아요.”     


얼핏 들으면 이십 년 된 전문가에게 아마추어가 서툰 조언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마치 수십 년 된 어부에게 여기 그물 던져라! 저기 던져라! 조언했던 2천 년 전의 어느 뭍사람 말처럼... 그러나 반석이는 할머니의 입맛과 빵에 대한 취향을 믿었다. 빵을 행복하게 대하고 빵으로 기쁨을 나누는 마음과 실재 현장을 따라가서 몇 번이나 보았다. 그래서 조언대로 시행하려고 마음먹었다. 작은 시행착오와 적응기간이 있었지만 그 시도는 나비의 몸짓만큼 큰 변화를 불러왔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점차 달라지고 뭔가 단순한 매출액만이 아닌 생동감이 살아나는 변화가.     


#5...     


“구세주 할머니! 대박이예요!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일이 있나요! 저도 놀라고 있어요!”

“구세주? 그건 무시무시하지만~ 하하! 좀 도움이 되었어요?”

“도움 정도가 아니라 빵을 만들어 댈 수가 없어 몇 곳은 예약으로 받아요!”

“잘되었네요~ 도움이 된다니!”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부모님들이 사다 주기를 좋아하고요. 재료를 좀 바꾼 후 먹어본 분들이 이전보다 먹고 난 뒤 속이 더 편한 거 같다고 칭찬을 해줘요!”

“우리 총각 사장님이 열심히 성실히 빵을 만드시니 그런 결과가 오는 거겠지요!”

“우연인지 모르지만... 얼마 전 대기업 빵 제품 몇 가지가 지나친 건강에 해로운 재료를 사용한 걸로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그 내용이 뉴스를 타고 난 뒤 건강한 골목 빵이 주목을 끌었어요. 기존 납품을 바꾼다고 단체급식소에서도 문의가 들어왔구요! 우리 빵이 평도 좋고 재료 검사에서도 좋은 걸로 나왔데요. 할머니 전문가께서 어떻게 미리 아셨나 궁금했어요!”

“그랬군요. 진실은 언제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담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몰라요!”

“근데... 그것보다 제가 더 감동한 다른 큰 변화가 있어요. 사실 그게 너무너무 고마워서... 할머니를 뵈면 엎드려 절을 드리고 싶었어요.”

“무슨 로또를 맞았나요? 그럼 나누어 가져야~ 하하!”

“전에는 일하러 아침에 일어나서 나오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늘 돈을 벌기 위해서 일어나고, 빵을 만들고, 가게를 열고 닫아야 한다는, 순전히 노동의 이유가 그거 하나뿐이었어요”

“많은 사람이 직업을 그렇게 유지하지요? 안쓰럽게도...”

“그런데 제 맘속에 무슨 나무가 싹을 내기 시작했나 봐요. 기쁨의 나무? 의욕의 나무? 뭐 그런 종류가!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고 빵 만드는 일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문 열고, 닫고 하는 것도 힘들지 않아요! 이런 좋은 기분이 제게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진짜 성공을 하시게 되었네요!”

“예! 돈 버는 거 못지않게 재미있어요! 할머니가 연결해 준 고아원과 양로원에 빵을 싣고 가서 줄 때, 좋아하는 얼굴을 보고 고맙다! 맛있다! 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제 마음이 뿌듯하고 신나는지... 예전에는 장사가 좀 안되면 짜증만 나고 모든 게 돈이 좌우했는데 이제는 좀 안 팔려도 더 많은 빵을 나눠줄 곳이 있어서 한편으론 기뻐요! 어느 날은 오늘은 좀 덜 팔려라! 속으로 비는 날도 있더라니까요. 빵이 맛있게 나온 날은요! 하하하!”

“그건 진짜 큰 수확이네요! 그런 일상의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복인데!”

“예전에는 여기 시장의 사람들을 대할 때 저 사람이 내 장사 수익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 둘 중의 하나로 가려서 미리 편견으로 대했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그러니 사람 만나는 것도 한결 편해졌어요. 일부러 꾸며서 웃지도 않고 매정하게 외면도 않구요!”

“앞으로도 배를 채우는 빵만이 아니고 마음을 채우는 빵을 만드시고 나눈다는 행복으로 일하시기를 빌어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빵장수 야곱처럼요! 또 사람을 낚는 베드로처럼~”       


#6...     


반석이는 마치 신부님께 하는 고해성사처럼 그 말들을 할머니에게 하면서 한 편 지난날 자기가 어떤 감정과 표정으로 살았는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든 일이 수익과 성공에만 결부되었고 일의 즐거움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돈만 잡아먹는 아픈 엄마와 돌봐야 하는 동생이 짐처럼 무겁고 자기 인생을 걸고 넘어지는 장애물처럼만 느껴지기도 했었다. 사는 목적도 목표도 사라진 지 오래고 아무 재미도 없이 하루하루 때우는 무미건조한 날들로 이어졌었다. 그때 자기 얼굴을 보며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해보니 더 민망해졌다. 세상에서 없어지고 안 보이면 더 좋을 사람으로 세상 속에 존재했었다는... 그 자책감 미안함은 금방이라도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죄를 지었어요! 남들을 그저 내 기준으로 무시하고 미워하기도 했어요!‘라고 회개라도 할 기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단골할머니라며 자기에게 나타난 분이 그냥 손님이 아니라 자기를 찾아온 천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마른 사막을 헤매는 자기를 오아시스로 데려가고 구해주는 미션을 하러 온 하늘의 천사…     


집으로 돌아온 반석이는 오랫동안 책상 서랍 어딘가에 쳐박아 둔 성경책을 찾아내 먼지를 털어내고 폈다. 세상살이에 지쳐 길을 벗어났던 양 한 마리가 돌아온 듯 먼지 덮힌 성경과 반석이의 메마른 삶은 닮아 있었다. 다시 만난 목자가 반가워 눈물 쏟아지는 양의 심정으로 편 그 페이지 속에는 반석이와 비슷한 지친 어부가 또 한 명 있었다. 밤새 그물을 던지고 허탕만 치고 분노와 좌절로 귀가하는 베드로에게 다시 그물을 던지라고 말해준 이. 그는 메마른 바다에서 새 생명을 보게 하셨다. 다시 살 의욕과 뜨거운 영혼을 안겨주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첫 번째 낚은 사람은 그 자신, 베드로였다는...     


[누가복음 5:4-10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께서 시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물이 깊은 곳으로 나가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려 보겠습니다." 어부들이 그 말씀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들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와서 도와 달라고 손짓했습니다. 그들이 와서 두 배에 고기를 가득 채우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제게서 떠나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베드로와 그 모든 동료는 자기들이 잡은 고기를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이며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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