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습득하면 자유다!”
“기술 있는 자만이 자유롭지!”
“남에게 의지 안 해도 되거든”
요셉은 그렇게 당당했고, 기술을 가지고 남에게 의지안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그냥 ‘착해 빠져서’ 홀로 임신한 마리아에게 아무 소리도 못하는 온순한 남정네쯤으로 말하지만 영화속의 요셉은 그렇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기술을 습득해서 자립해서 살기를 바라며 열심히 일을 가르치는 무섭기조차 한 열정적 목수였다. 오히려 자칫하면 하나님이 아닌 기술이 자유를 준다고 말하는 신앙심없는 사람으로 몰릴 수도 있는 현실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기술과 노동으로 자기의 생을 꾸려가는 사람으로 보였다.
하나님이 선택했다고 믿고, 생애가 통째로 하나님 손안에서 이어진다고 믿는 이스라엘백성이라면 어쩐지 안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렇게 기술에 의존하면 어쩐지 신앙심이 모자라 보이기까기도 하다. ‘자유도, 밥 먹는 것도 오직 하나님께 달렸습니다!‘라고 입에 달고 살아야 주위에서 믿음 좋다는 말을 듣는게 신앙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리아의 엄마도 요셉을 불러내서 결혼해주기를 간청하고 못박으면서 그랬다.
“딸 때문에 눈도 못 감았지 남자 형제가 없잖나”
하나님을 믿는 인간이 남겨진 딸 걱정에 눈도 못 감으면 이스라엘백성, 혹은 믿음좋은 신앙인이라고 못 들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집안에 남자가 없어 무서워 잠도 못 잔다고 요셉에게 넉두리를 한다. 이쯤 되면 뭐 선택받은 이스라엘백성이고 나발이고 다를 게 없어진다. 실재로 이런 말을 늘어놓으면 담임목사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교인들에게조차 엄청 눈초리를 맞는다. 기도 부족하고 믿음 모자라는 사람으로...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하루 24시간을 얼굴만 빤히 바라보면서 밥 달라 물 달라, 나만 지켜주라, 팔다리잡고 발 동동 그러면서 평생을 보낸다면, 그건 하나님 닮게 만든 인간 아니지. 생기를 훅! 코에 불어 넣어주면서 자유롭게 살아라! 축복해주신 하나님 뜻과 다른거지. 기생하며 살거나 독립 못한 인생처럼 되니까...
그러니 하루 중 때로는 하나님 잊은 듯, 나 혼자서도 잘해요!처럼 그렇게 열심히도 살아야 한다. 기술도 배우고 익히고, 남자 없다고 무서워 딸 시집보내려 애도 쓰고! 불신앙으로 매도 받는거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내 인생 내가 대견하게 노력하며 살지 못하는걸 부끄러워 해야하는거다. 어차피 그 꼴 지켜보는 이 투명으로 곁에 종일 있으니...
(본회퍼 목사님은 하나님 없는 듯 하나님 앞에서 성숙하게 살자! 그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