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 3 – 도무지 모르는 사람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바람 속에 실려 오고, 빛으로 옷 입고 오는 이여!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랬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으로 딱딱하게 굳어가는 신앙심을 보다 못한 하나님은 급하게 이 땅으로 내려왔다. 모든 것이 당연해지고 아무 것도 더 이상 목마르게 기대하지 않는 이들의 제사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속상했을까.

잠든 마리아를 깨우고 예수의 출생 동의를 받기 위해 작은 집으로 들어오는 데는 몸보다 편한 방법이 바람이었고 한줄기 빛이었다. 조각같은 미남의 얼굴도 아니고, 우람한 역삼각형 남정네의 쿵쿵 발자국소리로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은 얼마나 까다로운가! 네모로 오면 왜 세모나 동그라미가 아니냐하며 시비를 걸고, 아침에 오면 왜 저녁이 아니냐! 그런다. 사람들이란 한 가지 모습으로 외형을 가지면 나머지 아홉 가지 모습이 아님을 걸고 넘어 지기 일쑤인 못된 습관을 가졌다. 그래서 성육화의 프로젝트는 숱한 의심과 비난의 실험이었다. 안 오면 안온다고, 오면 못 믿겠다고 하는 두터운 벽...


“누구세요?”

마리아는 더구나 혼례도 치르지 않은 처녀, 믿음이 어느 수준이던 잠결에 오는 방문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믿는 단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대상이 아니면 모른다. 보고 만지고 같이 살아도 여전히 모르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혼이 세 쌍에 한 쌍이라던가?)


“어떻게 그럴 수가...”

간신히 무작정 믿자고 마음먹어도 또 밀려오는 언덕 같은 파도. 믿는다니, 그럼 감당도 해야지? 마치 그렇게 밀어 붙이는 걸까? 때론 운명이나 팔자를 더 따르는 사람보다 스스로 결심하는 신앙인들에게 더 큰 고난이 오기도 한다. 남에게 의존하거나 포기하지도 못하는 약점을 후벼파듯 고스란히 온 삶으로 받아내라고 한다.

충격과 결단의 단계를 수용한 마리아는 마침내 평안을 얻지만 그럴 준비가 안된 마리아의 엄마는 끝까지 모른다. 도무지 바람과 빛 속에 누가 왜 오는지를! 인생을 헛 산 게 아닐까? 자주 돌아보는 내 모양처럼...


“마리아, 누구와 애기하니?”

도무지 모르는 마리아의 엄마의 질문, 도무지 앞으로 가지 못하는 나의 질문...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내게 생수를 달라고 했을텐데... 그 분은 그렇게 말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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