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라, 우리 고향 나사렛이야!”
가슴속에는 대신 죽어간 땅의 친구들에게 빚진 마음을 안고, 집을 떠나 살던 시절을 끝내고 부모의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붙을 수식, ‘나사렛 예수’를 이루었다.
날마다 하루가 시작되면 문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도를 들어주소서’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어린 예수는 그렇게 집에서 또 다른 집을 향하여 그리움을 담은 채 차곡 차곡 적응하고 있었다. 아무리 큰 뜻이 앞에 놓여도 작은 몸을 가지고서는 작게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몸으로 사는 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통과해야하는 전지 훈련.
“기술이 있는 사람은 왕 앞에서도 떳떳하다”
“일은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주신거다!”
요셉은 그렇게 세상살이의 기준과, 그 일들이 하늘나라의 뜻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를 생활속에서 말하고 가르치고 또 지켜보아 주었다.
‘사다리는 하늘로 연결되는 도구야!’
요셉의 의미심장한 표현에 빙그레 웃던 예수는 아장아장 작은 다리로 오르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을 향해 마지막 발판까지 오른 예수는 하늘 한 번 보고 땅 한 번 보고, 그렇게 연결을 하고 있었다.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고향. 어느 것도 소중한 집. 마치 예수의 몸속에 담긴 거대한 창조 이래의 우주처럼...
가끔씩 때도 시도 없이, 혹은 이유도 없이 하늘을 보면서 울컥 가슴이 미어지던 순간이 조금 이해가 되어왔다. ‘아, 내게도 떠나온 고향이 있었구나! 저기 저 하늘에...’
“하나님은 모든 것에 우선 한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너희를 실패하게도 버리지도 않으신다!”
어린 예수는 회당에서 경전을 읽고 해석도 했다. 랍비는 참석회중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셉의 아들 예수, 마을의 성인 멤버로 인정하노라!’
그리고 예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슬플 때 괴로울 때 박해받을 때도 기억하라고 했다. 또 기쁠 때도 항상 음미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예수는 기억하고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순간을 말씀과 실천자로 동시에 살았다. 그리고 나중에 그 뒤를 따를 우리에게도 그렇게 요구했다. 슬프고 괴롭고 박해 받을 때 말씀이 하라고 했던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삶으로 살라고, 기쁨이 올 때 춤을 추라고!
그 시간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 말을 랍비와 참석자들이 나누는 그 순간에도 로마의 병사들이 들이닥쳐 음식이고 필요한 것을 몰수해갔다. 안된다는 마을주민들을 종교중독자들이라며 언젠가는 쓸어버리겠다고 모욕적 경고를 남기며, 젊은이들은 분노하며 하늘에 고함을 질렀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언제까지 침묵하시렵니까...”
예수는 기둥 뒤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편치 않은 심정으로,
분명 땅의 세상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과 그 폭력을 당하는 자들 모두를 초월한 높거나 넓은 하늘의 세상에 사는 예수였다. 그럼에도 그 폭력의 현장에서 신음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영혼들은 분명 상처받고 있었고 선악보다 높은 가치조차 흠집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어디서 어떻게 개입하고 바로 잡을 것인지? 그것들이 또 인간에게 준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 ‘자유 의지‘를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예수의 훈련과 적응살이는 끝이 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허둥대며 찾는 마리아에게 조금은 짜증섞인 투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을 것을 아직도 모르시나요?’ 라고 말하면서,
(집에 있으면서 집을 그리워하는 세상살이 외로움을 예수의 말과 표정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