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예수11-길은 닦는 사람의 것

by 희망으로 김재식


죄가 깊어지면 벌이 오고, 폭정이 심해지면 저항을 부르는 것이 자연스런 법칙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법. 고단한 사람들의 신음이 사무쳐 점점 하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습기로 무거워진 하늘은 결국은 비를 내릴 수밖에 없듯 ‘주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이까?’ 하는 기도는 결국 답을 불렀다.


‘예루살렘에 전하라, 속박이 끝났다고! 죄가 사하여졌고 구원이 임박했다고!’

그렇게 랍비들의 경전 낭독이 새로운 시대를 알려주었다. 길을 파헤치고 굽어지게 하는 자들의 죄가 세상에 가득해질 때 한 사내가 들판의 언덕 위에서 소리를 질렀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는 구세주 앞에서 길을 바르고 곧게 하는 선지자. 요한!

길은 삶의 무대이고 생명의 통로다. 앞에서 뒤로 계속 이어지는 끈과 같은 것. 그러나 뒤틀려지고 생사를 위태롭게 하는 못된 자들이 수시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많은 사람들을 울게 하고 좌절시켰다. 참을 수 없는 억울함과 모멸감,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만인이 갈 길을 끊어 놓는 것이다. 그 길을 다시 곧고 바르게 닦으려 온 몸으로, 기꺼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는 선지자는 세상을 구하기 직전에 해야만 하는 예비 작업인 것이다.


“헤롯은 죽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더 심한 죄를 지었다. 동생의 아내와 결혼함으로 모세 율법을 거역했다! 이를 묵과할겁니까? 우리가 고통 받을 겁니다!”

그렇게 헤롯 안티파스와 그의 아내가 된 헤로디아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지팡이 하나와 낡아빠진 옷 한 조각만을 걸친 그가 총칼 군대를 거느린 세상의 권세에게 정면으로 대들었다. 오죽하면 잡아 죽이라는 간통녀 헤로디아스의 말에 ‘냅둬! 사막에서 메뚜기나 먹고 기도나 하는 거지같은 자’라고 했을까.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세례요한의 말이 옳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반역을 선동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위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사탄의 총명함은 선한자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 다만 그 지식을 악용하기만 한다. 정면 승부를 피하고 그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며, 작은 약점을 파고들어 무너지게 하는데 사용할 뿐이다. 역사는 늘 그래서 불행을 거듭하고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선한 사람들이 선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적은 소수의 권력들이 총칼로 억압하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움추려든다. 입을 닫고 행동을 삼가고 뒤로 꽁무니를 빼기도 한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달랐다. 아무런 잃을 것이 없도록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에게서 집인 광야를 빼앗을 수도 없었고, 주식인 메뚜기를 금할 길도 없었다. 명예나 금전, 가족을 위협하는 일 따위도 불가능했다. 오직 그만이 바른 길을 닦을 자격이 있고 용기가 있었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례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는 왕답지 못한 졸렬한 행동밖에 없었다.


“네 권력 따위는 두렵지 않다! 내가 훈계를 하지 않으면 너는 죽게 될 것이고, 신은 그런 나를 책망할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아득한 명령을 이처럼 완전하게 실천하는 길이 있을까? 자기 목숨을 잃게 되는데도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외쳐야 한다는 순종, 순명의 사람 세례요한...

세상의 숱한 죄악과 불의 앞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치명적 약점을 가졌고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는 욕망 때문에 비겁하게 침묵한다. 서둘러 타협하고 합리화하고 뒤로 빠진다. 길이야 망가지던지 파헤쳐지던지 외면한다. 그 길을 계속 가야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데도 말이다.

‘회개하라!’

(자신의 온몸으로, 생명의 피로 길을 닦는 세례요한이 많이 그리운 오늘이다. 그의 용기와 삶이 눈물나게 부러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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