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예수 13 - 예수와 요한의 만남

by 희망으로 김재식



“저에게 세례를 주실 분이...”

물로 몰려오는 회개자들에게 세례를 주던 요한이 깜짝 놀랐다. 목이 메었다. 말을 채 끝내기도 힘들게... 모래 먼지 날리는 광야에서 뜨거운 해와 불편한 바닥을 참으며 사는 것은 기다림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가 오는 날, 세상은 거짓이 힘을 잃고 죄에 억눌린 사람들이 용서함을 받고, 갇힌 자가 놓여서 가족에게로 갈 것이며 귀신 든 자가 평안을 회복할테니!

아픈 삶들이 기쁨을 얻어 함박 웃음을 웃을 상상이 언제나 요한에게 두려움도 몰아내고 불편함도 참게 하였다. 그 주인공이 될 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지금 눈앞에 걸어오고 있었다. 무리들 속에 너무도 평범하게 그 중의 한명으로, 가마도 타지 않고 호위군사도 없이 백성들과 함께 걸어서...

하늘을 통째로 물려받을 하나뿐인 상속자 아들이, 천군천사도 없이 화려한 치장도 없이 거치른 광야로 왔다. 기껏 손바닥만한 땅덩이 하나를 가지고도 득세하고 횡포를 부리는 땅의 조무래기 왕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어이가 없다. 서럽고 억울할 수도 있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른 고난 길. 그 외로운 사람이 가야할 길을 미리 알리고 외치러 온 자신의 모습도 착잡하였다.


어쩌다 이 험한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이 고독한 행군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예수와 요한으로, 뜨거운 눈시울과 목메임이 요한의 가슴을 심하게 두드린다. 헤롯의 총칼과 군대에도 비굴하지 않고, 군중을 쥐락펴락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허세에도 주눅 들지 않던 바위 같고 강철 같던 요한도 속살이 베인 듯 아파왔다. 눈앞의 사람이 걸어갈 길이 보였기 때문에, 또 자신의 목이 쟁반에 담겨 끝이 날 내일이 보였기 때문에...

“어찌 제게로 오시나요...”

“이제 허락하라, 이렇게 함이 합당하다”

그렇게 세상을 바꿀 길의 주인, 자신이 곧 길이요 생명이라고 증언하셨던 분, 진짜 ‘LORD’인 예수는 길을 예비하고 곧게 하러 먼저 일을 시작한 고마운 요한이 또 반가웠다. 이만한 동지와 친구를 또 어디서 만날지 아쉬운 세상.

진리를 품고 사는 이들의 만남에는 긴 말이 필요 없다. 단 번에 알아보고, 또 서로 공감한 그 확신을 목숨걸고 살아가는 것으로 말을 대신 한다.


해피엔딩이었어도 좋지 않을까? 뜻이 이루어지고 해방의 날이 온 다음에도 두 사내가 다 살아남아서 강가에 앉아 웃으며 지난 날들을 이야기로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혹 각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서로 의논하며 의욕을 더 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나 하늘의 계획은 그런 땅의 세상이나 좋아할 손바닥 안의 작은 해피엔딩에 연연하지 않았다. 기어코 마지막까지 뚜벅 걸어가게 하였다.


‘다 이루었다!’ 고 할 때까지...


(그 길을 따라가야 할 조무래기 우리는 생각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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