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을텐 데 베드로, 말씀드려!”
“세리는 예배당에도 못 들어가고 만나서도 안 돼!”
“말했어! 어쩌란 말이야? 마태는 웬수라고 말했는데 예수께선 ‘같이 저녁 들자!’ 그러더군”
베드로는 귀찮게 따라오면서 예수를 설득하자는 다른 친구들에게 신경질을 내면서 말했다.
자기도 예수가 세리 마태의 집에 가거나 저녁을 같이 먹는 걸 말리고 싶었다. 늘어진 고무줄 같던 천상 어부의 생활에 새 의욕과 생기를 준 예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왕따라도 당할까봐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충격이었다. 창부여자들 끼고 술파티나 하면서 도무지 인간 같지도 않고, 더구나 동족이라면 안해야 할 짓을 하면서 사는 마태 같은 세리에게 왜 다정히 대하는지 질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뭔가 잘못 되신거야, 아님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거나...’
그 미움과 혼란스러운 배신감은 몽땅 요한에게 돌아갔다.
“난 너와 달라, 난 사제도 선지자도 관심 없어! 난 그저 가족 딸린 어부라고!”
“너는 처음엔 세례요한! 하면서 따르더니 이제는 그를 왜 여기 데려왔지? 너나 따르라구”
그건 자학에 가까운 신세 한탄이었다.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사람을 친척이나 선후배로 둔 빽도 없는 고기잡이 어부나 하는 주제에 무슨 천국이니 메시아에 관심을 가지고 사느냐 하는 자조... 희망을 품거나 기대를 했다가 도로 무너지는 삶은 일상조차 더 힘들게 하는 법이다. 다시 그물을 싣고 험한 바다로 가서 풍랑과 싸우며 고기나 잡을 것을 떠올리니 공연히 예전보다 곱절은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고.
“저들과 식사를 하면 안 됩니다. 누군지 모르세요? 우리는 율법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도둑 창녀에 무신론자들입니다! 타락한 인생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시다니요!”
베드로와 헤어진 요한과 빌립은 세리 마태의 집으로 향하는 예수를 막아섰다. 말려줄 것을 기대했던 베드로는 심히 흔들리며 화만 내니 어쩔 수없이 자기들이라도 막으려고 했다. 그들의 말대로 하면 정말 상종하면 안 되는 쓰레기 같은 인생들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또 누군가에게 그런 비웃음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랬다. 궁전에 있는 사람들, 그들과 고상한 사교생활을 하며 사는 높은 종교인들은 이들을 더럽고 못 배운데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거지라고 했었다. 대놓고도 하고 속으로도 하고...
그런데 그런 비웃음을 받으며 무시당하는 그들도 또 유대인 혈통이라는 이유, 안식일과 율법을 따른다는 이유로 도 더 낮은 자들에게 식사도 이야기도 같이 나누지 못할 짐승처럼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다니... 낮은 곳 아래는 더 낮은 곳의 세상이 있나보다. 끝없는 층층의 잘난 세상과 못난 세상이 마치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예수가 도착한 그 순간까지는...
예수는 말리는 그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러 왔다!"
"그들이 너희에 앞서 천국에 있을 것이다!"
도둑, 창녀, 무신론자...
명분을 만들고 자발적으로 가져오게 세뇌하여 받는 재물은 도둑질에 안 들어가는 걸까?
들키지 않게 뒤에서, 어두운 곳에서 몰래 하는 간음, 욕정의 발산들은? 그건 좀 나은 창녀일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에 아멘을 하면서도 정작 모든 돈과 자리와 성공여부는 사람들 손에 달려있다고 믿고 사는 것은 무신론자보다 나은 행동일가? 혹 이중배신자는 아니고?
누가 누구를 더 심하게 정죄를 해야할 지가 참 혼돈스럽게 되어버린 이 땅을 지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의 화해‘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