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예수 21 - 가장 낮은 곳의 화해 (2)

by 희망으로 김재식



“조용히!”

문 하나를 통과하여 들어 선 마태의 집 마당은 온통 광란의 놀이터 였다. 불을 피우고 솟아 오르는 모닥불 주변으로 도둑과 창녀와 무신론자들이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떠들고...

또 다른 예수를 따르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율법에 따라 문턱을 넘어 오지 못하고 모두 안쪽 마당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이상한 구경거리라니! 홀로 들어서는 예수를 보고 마태는 깜짝 놀라 웅성대는 자기 집에서 노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설마 올까?’ 했던 그 예수가 유대인들이 저주의 금으로 여기는 세리의 문턱을 넘어서서 들어온 것이다.

“평화가 있으라!”

“내 집에 와주셔서...”

“랍비여 환영합니다!”

목이 메인 세리 마태는 생애 최고의, 최초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묘한 심정, 기쁨이랄지 슬픔이랄지 구분을 하기 힘든 감정.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옷 위에 걸치고 있던 무거운 몇 겹의 사슬과 짐들을 곧 내려놓을 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비켜!”

서둘러 가장 좋은 자리로 예수를 앉게 해드리고 싶은 마태는 먼저 있던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말했다. 지금 마태에게는 자기 집 이 마당 안에서는 예수보다 더 귀한 손님은 단 한명도 없었다. 늘 자신의 깊은 외로움과 열등감을 이겨내고 싶어서 자기 돈을 써가면서 불러들인 그저 그런 손님들 뿐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도 일어나지 말라고 하고 빈 자리로 가서 앉았다. 중심이란 땅이나 의자가 정하는 법이 아니다. 그 중심은 항상 사람이고, 사람의 값어치에 달려있건만 세상은 늘 착각을 했다. 감투나 입고 있는 의상이나 타고 온 차를 기준으로 정한다. 그리곤 가장 중앙이나 가장 높은 곳부터 배정을 해서 앉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예수가 가는 곳이 언제나 모임의 중앙이 되고, 예수가 앉으면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앉으니 저절로 중심이 만들어지곤 했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래요 말씀을 좀... 자자, 자리들을 정리하고 앉아요!”

“아냐! 식사를 먼저!”

오히려 창부와 건달들은 예수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신기하게도, 하지만 마태는 그럴 수 없었다. 감히 방문해주신 예수에게 식사부터 대접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다해서 최고의 손님으로 대접하고 싶었다.

“해주고 싶은 것이 있소!”

“어떤 이들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예수의 이야기는 그 유명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였고, 문밖에는 들어오지도 못하는 마을의 유대인들과 그 사이 혼자 견디지 못한 베드로도 무리들 속에 섞여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기 유산을 미리 받아 나갔다가 탕진하고 죽을 지경이 된 둘째 아들의 고생과 눈물은 마당에 앉아있던 도둑과 창부, 무신론자 세리에게 동질감을 심하게 느끼게 하였다. 마침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 살게 된 지경에서는 미안함과 안도감으로 눈물지었다.


모두가 한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반듯했던 큰 아들의 따지는 불만에 아버지는 달랬다. 죽었다 돌아온 동생을 안아주자는 예수의 사랑어린 호소에 베드로는 그 큰 덩치를 감당치 못하고 울면서 마태의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고 말았다. 자기의 옹졸했던 미움과 예수에게 서운함을 품었던 것을 사과하면서...

그렇게 가장 낮은 곳, 가장 낮은 사람들끼리의 미움과 원수지간은 끝이 났다. 모두가 반목하여 세상을 원수천지의 지옥으로 만들 뻔한 것을 희망과 용서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베드로와 세리 마태와 예수의 세 사람 손이 한 곳에서 잡아지는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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