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79 - '대기만성'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TV에서 전교생이 82명뿐인 학교이야기가 나왔다.

그 학교에서 82명 전원을 단원으로 만들고 오케스트라 연습에 들어갔다.


-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모두가 하나같이 타고난 재능이 있었나?’


보통 상식적인 통계로 보아도 그중에는 분명히 별 가능성이 없는 학생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시간이 갈수록 만만치 않게 실력이 쌓여가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 사람은 가르치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능력이 원래 숨어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세상살면서 우리가 느끼고 아는 상식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그 재능이 낙오와 성공을 좌우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쟁사회를 당연시 여겼다.

그런데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타고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오히려 천부적인 재능보다는 환경이나 가르치는 정성에 달렸다는 말인가?


그럼...나는 뭐가 되지?

타고난 재능이 모자라서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알고 살아온 나는?

또 재능 없는 사람들을 유전적 루저로 바라보며 서민을 은근히 멸시조차 하던 사람들은?

그 학교 학생들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 이런 질문이 안타깝게도 더 많아졌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사람의 소중함이 속도와 성공여부로 판단되는 세상은.

산다는 건 어딘가로 끝없이 걸으면서 포기하지만 않고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려운 걸 ‘고행’, 잘 사는 걸 ‘순항’이라고도 하나보다 받아들이며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이며 그저 멍하니 사는 사람들을 툭툭 치며 통과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 계절, 타인들, 행운, 슬픔...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대로, 제때에 갈 수 있는 존재라면,

아마도 좋아하는 쪽으로만, 좋아하는 것들만 가지면서 살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된다는 건 모두가 안다.

무수히 많은 원치 않던 것들이 아쉬움과 때론 상처를 남기면서 치고 지나 간다.

때론 불행이라고 불리는 예상을 전혀 못하던 것들이 폭력처럼 사람들을 때리고 지나 가기도 한다.

심지어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경우인데도 불구하고 그리 행복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종종 예상했던 결과가 아니거나, 남보다 너무 늦을 때면 우울해지기도 한가.


이런 세상을 지니가면서 우리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 부류는 환경과 기회에 버려진 좌절한 3류 인생으로 보이는 이들을 조롱하거나 상처를 준다.

다른 한 부류는 그런 상처를 입고 피흘리는 이들의 곁에 머물러 주며 다독이고 위로를 준다.


대기만성 – “힘들지? 조금만 더 해보자!”

좌절한 내게 그렇게 말해주며 끝까지 가주는 친구, 가족, 하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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