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아내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좋아했었다는 말은... 지금은 아파서 못 그리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그림은 작품을 만들려면 힘들지만, 표현을 하려면 즐겁다'
아내는 아무래도 후자 쪽이 가까울 수 있다.
무슨 미술을 전공하거나 전시회를 하거나 그런 적은 없으니.
아내는 막내딸을 뱃속에 담고 8개월이 되도록 그림을 그렸다.
비록 상업미술이긴 했지만 진짜 좋아 했다.
꽃그림만 그린 게 태교가 되었는지 태어난 딸아이는 길을 가다가도 차를 세우게 했다.
'아빠 저기 꽃!!' 그러면서,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시골집 한쪽자리에 원목으로 작은 작업실을 만들어 주었다.
작은 침대도 하나 놓고 차를 마시게 조그만 탁자와 씽크대도 달았다.
나중에 나이 들어 일을 그만두면 그림그리는 아내곁에서 보낼 꿈에 부풀어 늘 앉았다 나오곤 했다.
하지만 다 날아가 버렸다.
큰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논밭 야산을 보며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노래 듣고 차 마시는 꿈.
수다를 섞어 이야기하는 게 뭔 대단한 특혜라도 된다고 걷어가나 싶어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병원 선생님께 내가 쓴 간병일기 책을 선물로 드렸다.
큰 국립병원에 전문 의사로 수백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는 의사선생님.
환자들 모두가 고마워하는 아무 것도 부러울 게 없으실 같았던 선생님이 문자를 주셨다.
'요즘 너무 속상하고 어깨가 무거워 다 내려놓을까 하는 약한 생각을 했는데 두 분이 큰 용기를 주셨어요'
몸이 다 망가진 여자와, 부부라는 연좌제로 삶이 다 망가진 남자인 나.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어보이는 남에게 줄 것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 있었다. 더 심한 불행과 더 지독한 버티기로 사는 나날들이 쓸모가 있더라는 낯선 경험.
작은 희망 - 잃은 것은 슬프다. 그래도 천하에 쓸모없는 사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