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떠나려는데 가진 것도 없더라
버리는 것인가 얻는 것인가....
무언가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버려야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두려웠다. 이루어 놓은 것을 버려야 무언가를 시작하고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것인가? 가진 것을 헤아려본다. 가정과 아이, 집과 차, 직장과 사람들, 인간관계, 부와 명성..... 자잘한 것까지 헤아리다보니 버리기 아깝다.
다시 들여다보자. 반쪽뿐인 가정, 아이 하나, 대출뿐인 아파트와 차, 겨우겨우 버티는 직장과 사람들, 마이너스 통장과 자존심 구겨가며 지켜온 이름들....... 손에 쥔 것 없는 허울뿐인 것들에 둘러쌓여 있었다.
감사함과 소중함을 모르는 망언이 아니다. 버리지 못할 것들이 아닐 뿐......
갑자기 찾아온 기회는 손에 쥔 것들을 놓을 것인가 더 움켜쥘 것인가의 갈림길 앞에 나를 놓는다.
인연이란, 기회란 신의 깜짝선물일까. 친구는 지나가는 말처럼 우리 휴직하고 외국 갈까?
장난처럼 자주 해온 말이었는데 그 짧은 한 마디가 내 마음속 끄트머리의 작은 심지에 불길을 당겼다.
와이 낫? 못할 것도 없지~ 가자!!!!
언제나처럼 흐지부지, 유야무야 될 줄 알았지? 이 친구야! 이번은 다르다. 무언가가 움직였으니까.
2018년 9월 어느날 우리는 그렇게 일을 벌였다.
나는 대한민국 지방의 교육공무원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다. 평범하게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 나와 직장 다니는 말 그대로 무난하고 평범한 길을 걸어 온 평범한 사람이다. 15년 넘게 한 번도 학교와 직장을 쉬어 본 적도 없고, 쉴 틈없이 나를 채찍질하고 사회와 환경에 나를 맞춰 귀신처럼 재단하며 그렇고 그런 명성과 적절한 부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돈이야 늘 없는 것이고 직장과 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잠시 떠나면 좋은 것 아닌가. 집과 차는 은행에 돌려주면 된다. 그러고 보니 가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더라. 무언가 거창한 결심을 하고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새로운 것을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내가 이뤄 놓은 것과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안주하고 살았는데 한끝 차이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큰 마음 먹고 모두 버려보려고 했는데 가진 것도 없다........
마음 먹은대로 직장에 2년동안의 육아휴직을 알렸다. 집은 부동산에 시세에 맞게 내어 놓았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과 다음 해에 입학할 학교에도 알렸다. 가족과 친구에게도 알렸다. 그리고 또..... 또...... 신변정리....랄 것도 없네....휴
같은 직장을 가진 동생과 같은 직장을 가진 친구와 나는 그렇게 도원결의 하듯이 버리고 떠나기로 맹세했다. 뭐 버릴 것 없기는 그들도 마찬가지겠지만........우리 모두 휴직과 부동산과 주변통보의 과정을 거쳐 보이지 않는 계약서가 완성되었고, 나름 자존심과 그동안의 명성에 걸맞게 계약파기를 절대 할 리 없을 것이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모험을 이끌었다.
뱉은 말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도화선이 된 말 한마디에 의지한 채 미지의 세계로 들어갔다. 마침 친구의 지인이 호주에 있다더라, 동생은 캐나다를 알아보고 있었다더라, 나는 이왕이면 낭만의 유럽이 낫지 않겠니, 그래도 애들 영어는 하고 와야하지 않겠냐, 아이를 데려가려고? 이사람들아 육아휴직은 아이 동반 하지 않으면 불법이란다. 이럴수가 그럼 영어되는 곳으로 갈까나,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북미영어 아니겠느뇨, 그럼 캐나다 콜일까? 아는 사람 있는 곳이 낫지 않겠니.................이미 시끄럽고 쟁쟁하고 괄괄하고 분분하다.
우리 이대로 잘 할 수 있겠지?